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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r 15. 2021

밤, 벚나무 아래에서

나무의 시간



  나무는 잎 하나 없는 가지에 까만 몽우리를 달고 있었다. 까맣게 보인 것은 밤이어서 그런지 모른다. 몽우리는 몸을 열기에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듯 웅크리고 있어서 마치 작고 단단한 검정콩처럼 보였다.


  언제 필까요. 열흘 아니면 보름?

  함께 걷던 이가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꽃은 그때도 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봄이라기엔 바람이 찼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꽃은 어느 날 갑자기 필지 모른다. 삼사일 온화한 바람과 따뜻한 빛을 받으면 나무는 잘 마른 쌀알이 튀밥 기계에서 우수수 쏟아져 나올 때처럼 순식간에 봉오리를 활짝 펼칠지 모른다, 빙그르르 돌면 활짝 펼쳐지는 소녀의 플레어스커트처럼 순식간에 핀 꽃이 가지를 하얗게 덮어버리겠지.


  이 무렵의 나무가 느끼는 봄을 나는 알지 못한다. 며칠 계속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보게 될까? 꽃봉오리가 스치는 바람 한 줄기에 귀를 쫑긋하는 순간을, 따뜻한 햇볕 한 자락을 잡으려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을.


  꽃이 피는 순간은 마술처럼 항상 먼저 도착해 있었다. 나른한 오후 눈시울에 따뜻한 햇살이 아롱거려 무지개를 만들 때, 커튼 틈으로 무심코 내다본 바깥 도로에 햇살이 번져 있을 때, 저만치 앞에 하얀 솜사탕이 풍경화의 소실점까지 늘어서 있을 때 나무는 이미 축포를 터뜨려 놓았다. 그 순간은 유원지에 놀러 나온 사람들이 일제히 폭죽을 하늘로 쏘아 올리는 것과 같다. 펑! 펑! 펑!


  벚꽃은 봄을 알리는 시계다. 꽃잎을 펼치며 나무는 절정의 순간을 맞이한다. 언제가 제일 좋은지 물으면 나무는 아마 ‘이때’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 시간은 짧은 몇 시간일 수도, 제법 긴 며칠일 수도 있다. 짧다고 느끼는 건 내 생각일 뿐이다. 나무는 나무가 생각하는 시간이 있다. 다음 날 예고 없이 봄비가 후드득 꽃잎을 가지에서 떨어내면 나무는 이 정도로 봄을 충분히 누렸다 생각할지 모른다.


  무수한 꽃잎의 난장. 머리카락과 옷깃, 달리는 차의 차창, 가지를 잡고 흔드는 손에 꽃잎은 잠시 들러붙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밤새 나무 아래 세워둔 자동차의 범퍼를 하얗게 덮으며 떨어져 내리는 것이 그들의 본분이다. 새끼손톱 같은 꽃잎이 바람에 부드럽게 휘날린다.


  한껏 아름다움을 뽐내던 벚꽃은 봄비 한 번에 속절없이 사라진다. 이별은 자연의 속성이다. 봄비는 꽃잎과 함께 흘러내린다. 나무를 두들기는 빗물이 둥치를 개울처럼 타고 내린다. 빗물이 꽃잎을 실어 나른다. 무수히 많은 작은 깃발의 행진.


  환락의 시간이 지나갔다. 마치 제대로 사랑을 알기도 전에 섣부르게 보낸 정신없는 사춘기처럼 나무는 꽃잎을 떠나보낸다. 도로에 작은 개울이 생긴다. 돌부리에 걸린 물줄기가 망설이다 방향을 튼다. 도로 옆 홈통에 꽃잎이 애처롭게 매달려 있다. 홈통을 덮고 있는 꽃잎을 빗물이 사정없이 씻어 내린다.


다음 날 눈물 훔친 말간 얼굴 같은 길을 걸으며 나는 어느새 봄이 지나갔다는 걸 깨닫는다. 나무에 매달린 분홍 꽃이 점차 갈색 꼬투리가 되면 나무 아래에서 시끌시끌하던 사람들의 목소리도 잠잠하다. 끝없이 줄짓던 차들도 가뭇없이 사라진다.


  꽃이 이운 나무에 새뜻한 초록 잎이 고개를 내민다. 그 모습이 엄마를 보고 웃는 아기의 자잘한 아랫니 같다. 이 무렵에도 천연스레 매달려 있는 꽃이 있다. 나무는 꽃과 잎을 함께 매단 채 땅속 깊이 발을 뻗는다. 가지는 기지개를 켜고 뿌리는 대지의 봄 물을 힘차게 빨아올린다. 이때는 잿빛이던 가지조차 초록빛이 된다. 나무 안에 작고 가는 시내가 여러 줄 흐른다. 가만히 귀를 갖다 대면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때까지 남아 있던 꽃은 붉은 빛을 띠다가 어느 순간 맥없이 떨어진다. 꽃잎을 모두 떨어낸 나무는 한 뼘 더 자라 있다.


  상처를 덮는 딱지 같은 검은 열매가 나무 아래를 굴러다닌다. 바쁘고 무심한 신발들이 열매를 밟고 지나간다. 도로에 얼룩진 검은 자국으로 사람들은 잠시 나무의 존재를 깨닫는다. 비 몇 번, 햇살 몇 번, 바람 몇 번에 얼룩은 희미해진다. 시간이 모두 지운다.

  뜨거운 햇볕이 사정없이 내리쬐는 여름이다. 나무는 짙은 녹음으로 다시 도로를 덮는다. 사람들이 나무 아래를 찾아든다. 나무가 하늘을 네모, 세모, 별로 만든다. 차가운 바람이 나뭇잎을 물들여 떨어트릴 때까지.


  밤, 벚나무 아래를 거닐며 나는 가지 끝에 점점이 매달린 까만 몽우리에서 분홍과 갈색, 초록과 검정, 주홍과 빨강 빛깔을 떠올린다. 검은 가지를 드리우며 서 있는 큰 벚나무는 묵묵한 겉모습과 달리 한 해를 맞느라 분주할지 모른다. 하나씩 펼치는 꽃봉오리와 만개한 꽃, 분분한 꽃잎, 검은 열매, 무거운 초록 잎, 바람에 쓸려 길가에 쌓일 붉은 낙엽. 잎 하나 달리지 않은 검은 나무 아래에서 나는 이들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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