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인 Jun 14. 2020

2주간 손자 녀석 돌보기

양육에 관한 자신감이 바닥으로 떨어져

"어!"

아주 작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급히 건넌방으로 달려가 보니 녀석이 오줌을 싸고 있는 게 아닌가. 눈을 감은 채 바지와 팬티를 내리고 마치 화장실인 양 이부자리 위에서.

“어… 어…”

말리지 못한 건 오줌발이 너무 세차서 어설프게 말리다간 사방이 오줌 벼락을 맞을 것 같아서였다.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길던지. 시원하게 싸고 난 녀석은 뒤로 벌떡 드러누워 다시 자는 게 아닌가.


‘이 녀석이 진짜 자는 게 맞나?’

눈은 감고 있지만, 아까 분명히 놀라서 지른 짧은 신음으론 분명히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는 게 나의 추리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남편을 불러 녀석을 안아 뒤로 옮기고 최대한 빨리 오줌 고인 매트를 걷어야 했다. 다행히 몇 겹으로 깐 매트가 신기하게 오줌을 그대로 받아들여 아래 이불은 말짱했다.


난 모른 척하기로 마음먹었다. 녀석도 자존심이 있을 테니까. 동생 보기도 그럴 거고.

다음날 저녁 잠자리에 들려는 녀석에게 한 마디만 했다.


“자기 전엔 꼭 화장실 가서 쉬하고 자!”


코로나 감염으로 서울 딸네 집의 아파트 놀이터가 폐쇄되고, 유치원도 쉬게 되었다. 애를 봐주는 할머니가 연년생 두 사내아이를 보살피기는 역부족이라 1주일 예정으로 녀석들이 우리 집에 온 지 사흘째 밤 일어난 사건이다.




“엄마, 아빠,  보고 싶어요.”

첫날밤, 여섯 살 큰 녀석은 엄마와 영상통화를 하며 눈물을 찍었다.

그에 반해 다섯 살 둘째는 좋아라 하며 나만 졸졸 따라다녔다. 그럴 수밖에. 큰 녀석은 우리 집에서 백일까지 있었고, 작은 녀석은 2년을 나와 함께 했으니 우리 집에 익숙함은 같지 않았다.


딸은 아이들이 깨기 전에 출근하고 열 시 넘어서 퇴근한다. 토요일, 일요일도 나가야 한다. 다행히 아이 돌봐주는 할머니가 무던한 편이라 그럭저럭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 우리 집에 온 첫날 큰 녀석은 핸드폰을, 작은 녀석은 아이 패드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아이들이 바깥공기를 마시고 많이 뛰어다니게 하고 싶었다. 큰 애는 한글도 좀 깨쳐서 갔으면 싶었다. 며칠 후 딸은 2주일 맡기고 싶다고 전화했다. 그 정도의 기간은 되어야 뭔가 변화를 줄 수 있지, 순순히 응낙했다.


난, 욕심 많은 외할머니다.




이십 년 전에는 요즘처럼 지하 주차장을 아파트 건물 아래에 짓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 아파트 지하 주차장 위는 사방이 놀이터요, 정원이다. 지은 지 오래된 정원은 높이 자란 나무만큼 숲이 깊다. 여름에도 산책로는 그늘이 짙다. 아이들은 오전에 한글 공부를 조금 한 후 바깥으로 나와 산책로를 걸었다. 걷다가 놀이터가 마음에 들면 놀고, 다시 걷고. 시원한 물이 든 가방을 들고 아이들을 따라다녔다.


아파트 뒤쪽에 강이 있다, 오리랑 고니가 놀러오는.


한글을 가르치고 싶다 했더니 다들 나를 놀렸다.

“그러다 인심 잃지 말고 아이들이랑 놀아주기나 하세요.”


아이들이랑 놀아본 사람은 알리라. 그게 얼마나 힘든 건지.

녀석의 집중력은 아주 짧다. 한글 공부래 봐야, 기껏해야 삼십 분이다. 그다음 책 서너 권 읽어주고 시계를 보면 아직 열시다. 바깥에 나와 산책 한 시간, 들어오면 핑크퐁 유치원을 좀 봐야 한다. 요즘 애들은 어떻게 된 게 자기들끼리 노는 게 없다. 남편은 계속 옛날 우리 자랄 때처럼 하는 게 최고지, 하지만.


바깥에 나가면 노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열두 시 반이면 점심을 먹인다.


“이거 싫어요. 두부 주세요.”

"전, 시금치 안 먹어요."

“김치볶음밥 주세요.”

“라면 주세요.”

"자장면 먹고 싶어요."

두 녀석이 원하는 게 다르고, 일치하는 건 할머니가 한 시간 땀 흘려 만들어 준 밥을 밀어내는 거다.


산책할 때 따준 나뭇잎이나 들꽃을 아이들은 말라도 버리지 못하게 했다. 뜯어준 석류꽃을 애지중지하길래 물에 꽂아줬다.


당연히 난 구박을 시작했다.

“차려준 밥은 불평하지 말고 감사합니다, 하며 먹을 것.”

“다 먹고 나면 잘 먹었습니다 하고 그릇을 싱크대에 갖다 놓을 것.”

“아침 먹고 나면 칫솔질하고 세수할 것, 자기 전에도 물론이고.”


여러 협박과 할아버지에게, 엄마에게, 아빠에게 일러주는 갖가지 가짜 전화. 일종의 신경전이 펼쳐졌다.


"아이들이 뭔가 생각이 복잡하네."

"엄마, 요즘 애들 다 복잡해요."

그런가?


남편이 이른 새벽에 출근했다가 4시면 퇴근해 많이 도와줬다. 애들을 데리고 집 주위 박물관 견학을 시작했다. 곤충박물관을 시작으로 열대식물 박물관, 지질박물관, 화폐박물관, 시민천문대, 대전 과학관, 천연기념물 박물관, 교통안전 체험관 같은 곳.

 다녀오는 시간은 도합 한 시간 반 정도로, 실제 아이들이 관람하는 시간은 이십 분도 채 안 됐다. 하지만 코에 바람 한번 넣고 색다른 걸 구경하는 재미로 아이들은 오전에 말 잘 듣는 어린이로, 핸드폰은 주말에 삼십 분만 하는 어린이로, 받침 없는 글자를 읽는 정도로 변화했다.


그 정도면 됐다. 내 할 몫 다 했으니, 그다음은 지네 부모 몫이지.


짬짬이 영화도 보여줬다. 핸드폰 게임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예전 어느 영화사 대표가 네 살 무렵 첫 영화를 본 이야기를 했기에. 아이들은 '벌꿀 대소동', '오즈의 마법사'같은 영화를 좋아해 다시 틀어달라 나를 졸랐다.


2주째 마지막 금요일은 정말 힘들었다. 전날 종일 혼자 애들이랑 지냈던 터라 인내심이 바닥이 났다. 박물관에서 녀석들은 뭣 때문인지 흥분해서 전혀 컨트롤이 되지 않았다. 작은 괴물 같았다. 둘이서 맘대로 차도를 건너 주차장까지 달려가 버렸다. 작은 녀석에게 화가 나서 흠씬 녀석을 혼냈다. 그러고 나니 감정이 잘 풀리지 않았다. 녀석도 마찬가지였는지 저녁에 다른 일을 핑계로 많이 울었다. 나한테 혼난 때문이란 걸 나는 알았다. 


아잇적에는 감정이 쌓이지 않게 머리로 가슴으로 술술 빠져나가게만 키우면 된다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양육에 관한 자신감이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자책하는 마음이 들어 새벽에는 멀쩡히 자는 녀석을 안아 가슴에 얹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서울에 데려다 줄 때는 길이 막혀서 아이들이 힘들어했다. 하지만 안전벨트에 긴 시간 묶여 있어도 전보다 점잖았다. 예전 같으면 의자를 발로 차고 온갖 투정을 다 부렸을 텐데.

이건 내가 녀석을 혼낸 걸 합리화하는 다.


보내고 돌아온 밤, 글을 쓰려고 컴퓨터를 켰더니 키보드를 몇 차례 두들겨도 화면에 글자가 찍히지 않았다. 녀석이 책상 밑을 들락거리더니 어디 선을 건드렸나? 남편이 오더니 간단하게 키보드의 스위치를 ‘on'으로 켰다.


"뭘 건드렸겠어? 스위치 만진 거지."






작가의 이전글 슈필리움Spielraum, 남자의 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