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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Jun 14. 2020

성당 앞 옥수수 아저씨

남들 다 하는 거 난들 왜 못하겠나 싶어서

성당 앞에서 몇 년째 삶은 옥수수를 파는 아저씨가 있었다.

 커다란 압력밥솥 서너 개를 트럭에 싣고 다니며 갓 삶은 뜨거운 옥수수를 팔았다. 서너 개 담은 게 오천 원이니 부담 없는 가격에 맛도 좋아 손님이 줄을 섰다.

트럭이 서 있는 자리는 애매했다. 우회전해서 건널목을 지나 아파트로 들어오는 차량이, 트럭을 지나 성당으로 다시 우회전해 들어가려 차들과 엉기기 일쑤였고 거기에 직진  차량까지 꼬리를 이으면 순식간에 성당 앞은 북새통이 다. 트럭이 시야를 가리니 건널목을 지나는 행인을 칠까 봐 목을 길게 빼고 조심스레 운전해야 다. 장사하기에 목은 좋았지만 사고의 위험이 있어서 바라보기에 늘 불편했다.

그럼에도 옥수수를 찾는 이들은 계속 늘어 어느 부터 일당을 주고 고용한 사람들이 트럭 옆에 앉아 종일 옥수수 껍질을 벗기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성당에 새로 신부님이 부임했는데 옥수수를 좋아하시는지 자주 옥수수를 사거나, 아저씨와 말을 주고받거나, 아저씨 옆에 앉아서 옥수수 껍질을 벗기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물이 급히 필요하면 성당 물을 갖다 쓰라 했데, 성당 마당에 트럭을 세워놓아도 된다고 했데, 중고등부 간식으로 옥수수를 잔뜩 사서 넣어줬데, 소문이 들렸다.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오가는 게 있는 같았다. 


그리고 얼마 후 미사 시간, 고개를 돌리니 옆자리에 옥수수 아저씨가 앉아있었다.

성당에 처음 온 사람들은 대부분 미사를 낯설어한다. 수시로 앉았다 일어서야 하지, 남들이 줄줄 외우기도문을 따라 하지 못해 벙벙하지, 한 시간 반 남짓주일 미사 시간이 지루하기만 하다. 그날, 살그머니 곁눈으로 보니 아저씨는 미사 시간 내내 눈을 감고 있었다. 마치 밀린 잠을 자는 듯.


신부님이 성찬례 감사 도를  때엔 슬며시 깨우고 싶었지만 쉬는 날일 터인  아침 성당을 찾아온 아저씨가 눈 좀 감고 졸면 어떠냐 싶어 내버려 두기로 마음먹었다.




얼마 후 세례를 앞둔 예비신자들이 성지순례를 가는데, 신자인 나도 합류하게 되었다. 순례를 마치면 간단하게 소회를 나누는 시간이 있다. 스무 명 남짓한 예비신자들이 돌아가며 세례식을 앞둔 느낌을 이야기하는데 그날 옥수수 아저씨가 한 말이  잊히지 않았다.

"몇 년간 성당 앞에 있었는데 그 문턱을 넘는 게 그리 힘들었어요. 신부님도 말씀하시니, 에라, 남들 다 하는 거 난들 왜 못하겠나 싶어 용기를 냈어요."


툭 던지듯 하는 말이 말이 평소의 얌전해 보이는 모습과 달라, 이 자리에 오기까지의 갈등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떤 이들에게 성당 문턱은 너무나 높다. 




일 때문에 주일 챙기는 게 힘들어 결국 개신교로 가게 됐다는 친척 언니도 내게는 있다. 단순히 그 이유 때문이었을까? 언니로부터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여러 상황을 떠올렸다.

중산층 화하는 가톨릭을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거기 세다 더라, 바깥에서 교우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전해 들은 적도 있다.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신 예수님을 믿는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터인가 가톨릭은 '살 만한 우리끼리', 혹은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결국 절이든 교회든 성당이든 신앙은 사람을 통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 예수님을 사람은 같은 사람을 통해 희미하게나마 인식하게 된다.




옥수수 아저씨가 세례 받은 지 얼마 후 교통단속은  심해져  이상 트럭을 성당 앞에 세워 둘 수 없게 되었다. 한동안 숨바꼭질하듯 경찰을 피해 성당을 뱅뱅 돌기도 했으나 결국 그는 트럭 장사를 접고 말았다.




옥수수 밭을 통째 미리 사놓고 하는 장사여서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라는 말이 들렸다.

 "큰 일이네."

 

다들 걱정했더니 어떤 이가 이리 말하는 게 아닌가.

"세금도 안 내잖아요. 저 사람이 우리 월급쟁이보다 훨씬 부자예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난,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럼, 바꾸실래요?'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퍼붓는 날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그가 일하는 걸 잠깐 눈여겨본 적이 있다. 압력밥솥의 추가  일정 시간 돌면 그는 불을 끈다. 추에서 김을 빼고 뚜껑을 열면 하얀 김이 쏟아 오른다. 붉게 익은 얼굴로 그는 작은 솔을 집어 든다. 내가 보기에 그건 옥수수수염으로 만든 솔이다. 납작하고 촘촘한 솔로 그는 솥 안의 옥수수를 쓰다듬는다. 뭔가 달착지근한 감미를 덧붙이는지 모른다. 채반에 펼쳐진 보랏빛 옥수수가 첫 김을 날리면 서너 개를 봉지에 담아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재빠르게 건넨다.

아무리 줄이 길어도, 옥수수 익기 전  지나가느라 예약한 님의 차례를 거르는 법이 없고, 채반에 남은 크기가 작거나 아쉬운 모양의 옥수수를 슬그머니 집어넣어 파는 법도 없었다. 그러니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옥수수 장사에 관한 한 프로였다. 트럭 장사를 접은 지 얼마 후 그는 성당 맞은편 상가 귀퉁이에 작은 가게를 열었다.


 성당지날 때마다 길 건너 '옥수수와 호떡'이라 쓰인 간판을 바라보게 된다. 지난번 자리와는 목으로 비교도 되지 않지만, 가게 앞에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 한 두 명이라도 있으면 나는 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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