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아쓰코, 송태욱 옮김, 문학동네
“당시 로마에서 공부하던 나는 전해 여름 런던에서 지도자격인 다비드 투롤도 신부를 만났다. 그는 내년이면 이탈리아로 돌아가니 그때 서점의 동료들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p12
“그러나 1967년 나의 남편 페피노가 세상을 떠난 후, 중국 문화 대혁명의 여파로 유럽 젊은이들을 동요시킨 혁명 운동이 서점에 해일처럼 밀어닥쳐 눈 깜짝할 사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기성의 가치가 하나하나 무참하게 깨져나가고 우정보다 정치가 우선인 악몽 같은 나날이 시작되었다. 서점은 교류의 장보다 투쟁의 장이 되기를 택했고, 사색보다 행동을, 타협보다 엄정함을 택했다. (…) 하버트 마르쿠제와 체 게바라의 이론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누가 치아 테레사의 조용하고 사려 깊은 용기를 기억하고 있었을까?
입구 옆, 누가 놓아두었는지 모를 의자에 앉아 어렴풋이 웃고 있는 치아 테레사. 그것이 일본으로 돌아가기로 한 내가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었다.” p29
“오후 여섯 시가 지나면 하루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 차례차례 서점을 찾아왔다. 작가, 시인, 신문기자, 변호사, 대학교수, 고둥학교 선생, 성직자 등. 그중에는 가톨릭 사제도, 프랑코의 압정을 피해 밀라노로 망명한 카탈루냐 수도승도, 왈도파 프로테스탄트 목사도, 유대교 랍비도 있었다. (…) 그런 이들이 귀가 전까지 짧은 시간을 이용해 신간 서적이며 사회 정세에 대해 내키는 대로 의견을 나눈다. 다비드가 와 있는 날도 있고, 카밀로만 있는 날도 있다. 판파니냐 넨니냐 하는 정치 논쟁이 꽃을 피운다. 공산당원이 기독교민주당 골수분자를 호되게 공격한다. 누군가가 중재에 나선다. 안 그래도 좁은 입구 통로가 사람들로 북적이는 통에 서점 안쪽까지 한참 헤치고 들어가야 하는 날도 있었다. ” p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