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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Jul 11. 2021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스가 아쓰코, 송태욱 옮김, 문학동네



“당시 로마에서 공부하던 나는 전해 여름 런던에서 지도자격인 다비드 투롤도 신부를 만났다. 그는 내년이면 이탈리아로 돌아가니 그때 서점의 동료들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p12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의 저자 스가 아쓰코는 이탈리아 로마로 유학을 떠나, 1960년 코르시아 서점을 맡아서 운영하던 페피노를 만나 결혼했다. 그녀는 13년간 밀라노에 살면서 일본 문학을 이탈리아어로 옮겼다.


1960년대 밀라노 코르시아 서점에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꿈꾸던 젊은이들이 가톨릭 사제이자, 시인인 다비드 신부를 중심으로 모였다. 이방인인 작가는 세계적인 대기업의 주주이며 귀족인 치아 테레사와 어수룩한 도둑 가스토네까지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을 만나 생활하면서 그들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부르주아로 대표되는 귀족이며 기업의 대주주가 가톨릭 좌파 그룹이 운영하는 서점을 후원하고, 서점 동료들이 충절을 맹세하는 중세의 기사처럼 귀족 여인을 대하는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 희한한 모습임에도 슬그머니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저널리스트들은 이들을 가톨릭 좌파라고 칭했다. 가톨릭 좌파의 사상은 멀게는 13세기 중세 교회제도를 쇄신하려 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20세기 가톨릭 좌파는 프랑스혁명 이후 완고한 정신주의에 틀어 박히려 한 가톨릭 교회를 다시 한번 현세에 편입시키려는 운동으로 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에서 최전성기를 맞이했다. 코르시아 서점은 프랑스 가톨릭 좌파의 이탈리아 판으로, 기독교를 기반으로 기존 수도원과는 다른 생활 공동체를 지향했다.


"나에게는 손이 없네

부드럽게 얼굴을 쓰다듬어줄…"


(다비드 마리아 투롤도의 시, '나에게는 손이 없다'  첫머리)


나에게는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없다. (1961-1963) 사진, 마리아 자코멜리.


“그러나 1967년 나의 남편 페피노가 세상을 떠난 후, 중국 문화 대혁명의 여파로 유럽 젊은이들을 동요시킨 혁명 운동이 서점에 해일처럼 밀어닥쳐 눈 깜짝할 사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기성의 가치가 하나하나 무참하게 깨져나가고 우정보다 정치가 우선인 악몽 같은 나날이 시작되었다. 서점은 교류의 장보다 투쟁의 장이 되기를 택했고, 사색보다 행동을, 타협보다 엄정함을 택했다. (…) 하버트 마르쿠제와 체 게바라의 이론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누가 치아 테레사의 조용하고 사려 깊은 용기를 기억하고 있었을까?
입구 옆, 누가 놓아두었는지 모를 의자에 앉아 어렴풋이 웃고 있는 치아 테레사. 그것이 일본으로 돌아가기로 한 내가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었다.” p29



후일 서점은 문화혁명을 외치는 학생들에 의해 급격히 좌경화되면서 봉사자들과 서점과의 관계도 꼬이게 된다. 그렇게 시혜를 베푸는 건 식민지적 발상이라는 비난에 자원봉사자 부인들은 분노했고, 서점은 양분됐다.


사회적으로 격변하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밀라노의 거리 풍경(밀라노 대성당과 나빌리오 운하, 생선 가게, 서민들이 사는 주택 ), 사람들의 낙천적인 생활 모습이 가난한 유학생이며, 이탈리아 남자랑 결혼한 동양 여자의 시각으로 펼쳐진다.


저자가 책의 곳곳에서 떠올린, 나에겐 낯설기만 한 이탈리아 시인과 작가들의 작품을 찾아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자코모 레오파르디, 에우제니오 몬탈레, 프로스페로 메로메. 그들의 작품을 한글로 번역한 게 있을까? 찾아보면 있기도, 없기도 했다. 오래전 책이라 절판이기도 하고.



자코모 레오파르디의 '달에게'란 시를 소개한다.


오, 우아한 달이여, 나는 회상하노라,

해가 바뀌었지만, 고통에 겨워

너를 보러 이 언덕에 올라왔을 때

너는 저 숲 위에 매달려

지금처럼 모든 것을 비춰주었지.

하지만 눈가에 솟는 눈물로

나의 눈에 네 얼굴은 흐릿하고

떨리는 모습이었어, 내 삶은 고통스러웠고,

지금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으니까,

오, 사랑하는 달이여. 그래도 내 고통의

시절을 회상하고 다시 더듬어보는 것은』

나에게 유익하지. 아직 희망은 길고,

기억의 흐름은 짧은 젊은 시절에,

비록 슬프고 고통이 지속되더라도,

지나간 일들을 회상하는 것은

오,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단테 이후 이탈리아 최고 시인으로 꼽히는 낭만파 시인 자코모 레오파르디의 ‘달에게’는 홍대 지하철역에서 마주할 수 있다. 1975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에우제니오 몬탈레의 작품은 2003년 민음사에서 발간한『오징어 뼈』가 있다.



번민


-에우제니오 몬탈레


당신의 손은 건반을 두드렸고

당신의 눈은 알 수 없는 부호들을

종이 위에서 읽고 있었으니,

음악은 온통 고뇌의 소리처럼 들렸다오.

사방의 사물, 짓눌려 무기를 잃고서

제 언어에도 무지한 당신을 보고

유순해지고 있음을 내 알았다오.

말간 바닷물이 덜 닫힌 창 너머로 철렁댔다오.

나비가 도망치듯 추는 춤 파란 사각형 속을 지나쳤고

잎사귀 하나 해님 속에 펄럭였소.

이웃의 어느 것도 제 언어를 못 찾았으니,

당신의 달콤한 무지는 나의 것, 아니 우리의 것.





1971년 일본으로 돌아온 스가 아쓰코는 조치대학 비교문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1989년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만초니가의 사람들』을 번역해 피코 델라미란돌라 상을 수상했다.(이 책의 한글 번역본은 찾지 못했다) 그녀는 1985년부터 자신의 글을 쓰기 시작해 『밀라노, 안개의 풍경』으로 제30회 여류 문학상과 제7회 고단샤 에세이 상을 수상했다. 이후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베네치아의 종소리』,『트리에스테의 언덕길』 같은 서정성 짙은 에세이를 발표했다.  


스가 아쓰코는 1998년 예순아홉으로 세상을 떠났다. 밀라노의 그녀의 친구들도 대부분 살아있지 않다. 하지만 책 속에서 그들은 언제나 함께 있다.


1945년 파시스트 정권과 뒤이은 독일군의 압정에서 해방을 쟁취한 그날의 환희를 다비드 마리아 투롤도는 여름 도심에 내린 소나기에 빗대어 표현했다.



줄곧 나는 기다렸네

살짝 젖은

아스팔트의, 이

여름 냄새를

많은 것을 바란 것은 아니라네

그저 아주 조금의 시원함이 오관에 내리기를

기적은 찾아왔네

갈라진 흙덩어리

돌의 신음 저편에서



“오후 여섯 시가 지나면 하루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 차례차례 서점을 찾아왔다. 작가, 시인, 신문기자, 변호사, 대학교수, 고둥학교 선생, 성직자 등. 그중에는 가톨릭 사제도, 프랑코의 압정을 피해 밀라노로 망명한 카탈루냐 수도승도, 왈도파 프로테스탄트 목사도, 유대교 랍비도 있었다. (…) 그런 이들이 귀가 전까지 짧은 시간을 이용해 신간 서적이며 사회 정세에 대해 내키는 대로 의견을 나눈다. 다비드가 와 있는 날도 있고, 카밀로만 있는 날도 있다. 판파니냐 넨니냐 하는 정치 논쟁이 꽃을 피운다. 공산당원이 기독교민주당 골수분자를 호되게 공격한다. 누군가가 중재에 나선다. 안 그래도 좁은 입구 통로가 사람들로 북적이는 통에 서점 안쪽까지 한참 헤치고 들어가야 하는 날도 있었다. ” p41


#코르시아서점의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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