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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Aug 01. 2021

티켓 두 장

데이비드 호크니 전


 페북에 2019년 오늘의 추억이라며 사진 두 장이 올라왔다. 호크니의 아이폰 그림이다. 그해 여름 나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호크니의 전시회에 갈 예정이었다. 아들이 티켓 두 장을 구입해 놓았다고 시간 맞춰 올라와 함께 보자고 했다. 그러고 나서 아들은 소식이 없었다. 전시회 마감 날짜가 다 되도록 물으면 바쁘다고만 했다.


이전에 아들과 전시회를 함께 간 적이 있기에 나는 연락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결국 전시회는 가지 못했다. 아쉬워서 나는 호크니의 아이폰 그림을 찾아서 페북에 올렸다.


지나고 보면 답을 찾게 되는 의문들이 있다.


지난 5월 전화를 끊을 무렵 아들이 내게 사귀는 여자가 있다는 말을 넌지시 꺼냈다. 만난 지 얼마 됐냐고 물으니, “2년 정도?” 말끝을 흐렸다. 반가운 일이었다. 그간 주변에서 소개하는 아가씨들을 만나지 않겠다고 거절하는 바람에  아들은 비혼 주의자로 낙인이 찍혔다. '저러다 홀아비로 늙는 게 아닐까?' 나는 걱정했다.


사귀는 아가씨가 있다니 반갑기는 한 데, ‘만난 지 2 년’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좋게 생각하면 신중한 거지만, 어떻게 그동안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내게 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그렇게 속엣말을 나누지 않는 서먹한 모자였을까? 서운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한 달 후 남편과 나는 아들의 여자 친구를 만났다. 아가씨는 내가 수없이 상상하며 떠올린 타입이 아니었다. 의외였다. 하지만 좋았다. 둘이서 식당으로 걸어 들어오는 모습에 나는 무조건 항복하고 말았다. 젊음의 풋풋한 기운, 살짝 들뜬 분위기, 조심스럽게 오가는 말들, 맑은 표정과 웃음.


그날의 만남 이후 두 달이 지났다. 아들에게 말도 꺼내 보지 못한 나의 서운함은 저만치 마음 한구석으로 밀쳐져 차츰 희미해졌다. 하지만 이따금 형체를 드러내기도 했다.


아침에 페북에 떠오른 호크니 그림을 보면서 문득 깨달았다. 이 무렵에 아들은 여자 친구를 사귀기 시작했구나. 전시회 티켓을 두 장 끊었어도 엄마와 갈 마음의 여유는 없었겠구나.

작년에 아들이 집에 왔을 때 진한 네이비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그게 왜 눈에 들어왔을까? 운동화가 마음에 들어서 나는 아들에게 물었다.


-운동화 어디서 샀니?

-왜요?

-예뻐서 같은 걸로 사려고.

-에이, 운동화는 인터넷으로 사지 마세요. 백화점에 가서 신어보고 사셔야죠.

아들은 운동화 시리얼 넘버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얼마 전 둘이 함께 있는 사진을 한 장 보내달라 했더니, 자전거 타는 사진을 보내줬다. 아들은 여자 친구랑 커플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네이비색 운동화. 나는 얼마나 눈치가 없었던지.

이 일만이 아니다. 그간 나는 계속 아들과 영상 통화를 하고 싶어서 졸랐는데, 이상하게 아들은 영상 통화를 싫어했다. 옆에 여자 친구가 있었을까?


호크니 전시회가 있기 전, 나는 아들과 서울 현대미술관의 마르셀 뒤샹 전을 갔다. 코트를 입었다 벗었다 했으니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이었던 것 같다.


관람하는 내내 아들이 무거운 코트를 들어줬다. 화장실에 다녀오면 핸드백을 들고 기다려 줬고, 피곤해하면 달달한 디저트를 사줬다.

그해 봄 나는 아들 덕분에 무척 호강했다. 그때는 아들과 함께 가는 마지막 전시회인 줄 몰랐다. 계속 그렇게 다닐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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