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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Sep 22. 2021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덜 소비하고 많이 나누어라!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의 저자 호프 자런은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 지구 진화와 역학센터의 교수이다.  타임이 선정한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올라가기도 한 그녀는 『랩 걸』에서 여성 과학자로서의 삶을 담기도 했다.


초세기 막달라 마리아 복음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물질에 대한 집착은 자연에 대항하는 방향으로 열정을 불러온다.”


좀 더 편안한 삶을 지향하는 인간의 노력은 자연에 순응하기보다 자연에 대항하는 방향으로 이어져 왔다. 발달이라고 부르는 이러한 현상은 지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책은 우리는 누구인가, 생명으로 시작해 식량과 에너지, 인간에 의해 달라진 지구 환경을 과학적인 수치로 설명한다. 맨 뒷장 부록은 70억 명 중 한 명인 우리가 어떻게 하면 풍요로운 지구를 위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방법을 제시한다. 


서두에서 저자는 지구 환경에 대한 과거 과학자들의 주장을 옳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고 말한다.


1969년 노르웨이의 탐험가 베른트 발헨은 북극의 얼음 층이 녹는 것을 발견하고 10, 20년 이 지나면 북미 지역에서 농업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미 해군의 윌터 휘트먼은 비행기로 매달 북극 위를 날고 있지만 얼음이 녹는 그 어떤 증거도 보지 못했다고 발헨의 이야기를 일축했다. 

이런 논쟁은 현재도 마찬가지다. 육식, 에너지원, 탄소 배출, 기후에 관한 논쟁. 당장 지구가 멸망할 것 같은 위기감의 반대쪽에 지극히 낙관론적 시각이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과연 누구의 말이 옳은가? 


20세기 들어서 북극해의 얼음의 두께가 절반 정도로 얇아진 걸 목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북미의 농업에는 변화가 없으니, 발헨의 주장은 맞기도 틀리기도 했다. 휘트먼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누구나 예측보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설명하는 걸 더 잘한다. 사람들은 점차 과학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도록 단련되었다.


2009년 다니던 대학의 학장이 저자에게 기후 변화에 관한 수업을 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사람들은 이미 자신이 무얼 해야 하는지 머릿속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온갖 산업이 24시간 작동하고 있는 현대에 그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그녀에게 맨 먼저 떠오른 건 아침에 타고 온 자동차의 기름밖에 없었다.


투덜대는 그녀에게 동료가 짧게 조언했다.

“그게 바로 너의 일이니까. 닥치고 가서 일을 해.”

 

그녀는 컴퓨터를 켜고 변화에 관한 리서치를 시작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의 인구 증가, 농업, 에너지 사용량의 증가, 그녀는 가장 확고하고 정확한 용어로 세상의 변화를 수량화했다. 학생들에게 추측을 가르치지 않았고, 변화를 가르쳤다. 그러다 차츰 왜 이 일을 하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는 강의실을 벗어나 책을 통해 지구 환경의 변화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마음먹었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과학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언어와 숫자에 공평한 애정을 지닌 작가이자 교사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간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고, 이 세상은 변해 버렸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기원전 1800년쯤 세계 인구는 1억 명 정도였다. 맬서스가 인구론을 발표한 1798년 무렵의 인구는 10억 명이었고, 1848년 존 스튜어트 밀이 “어떤 문명 상태에서도 인구가 너무 많으면 그 수가 줄어들기 전까지는 모두에게 필요한 것을 제대로 공급할 수 없다”라고 할 때 인구는 15억 명이었다. 저자가 태어나던 1969년의 인구는 35억 명이었다가 현재는 70억 명이 되었다.


하지만 위의 사상가들 중 누구도 사회 속 여성의 지위와 여성이 낳는 평균 자녀 수 와의 상관관계에 관심이 없었다. 건강과 기회, 사회 참여에서 성별 격차가 큰 나라의 여성 당 자녀 수는 네 명에 가깝고, 격차가 작은 나라의 경우는 두 명 미만이었다.

그러므로 인구 증가를 억제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지속적인 메커니즘은 성별 불평등의 폐지와 관련이 있다. 성별 격차가 줄면 인구는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전쟁과 자연재해 같은 특별한 요인이 없다면 인구가 현재의 70억 명 정도로 계속 유지될 거라는 의견이다.


19세기 이후 인구는 두 배로 증가했고, 곡물 생산량과 어획량은 세 배, 육류 생산량은 네 배 증가했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헨리 조지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의 결핍과 고통은 필요한 만큼 만들어내지 못하는 지구의 무능함 때문이 아니라 나눌 줄 모르는 인간의 무능함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필요 이상으로 소비하는 바람에 더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갈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인류의 10퍼센트에 의해 이루어지는 엄청난 식량과 연료 소비로 인해 나머지 90퍼센트의 삶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내는 지구의 능력이 위협받고 있었다.

에너지 소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에너지를 지구 상 인간들에게 공평하게 배분한다면 각 사람의 에너지 사용량은 1960년대 스위스 사람들의 평균 에너지 사용량과 비슷하다. 그 무렵 사진을 보면 그리 나쁘지 않다. 사람들이 두터운 울 코트를 입고 정류장에 서 있다. 조금 부족하게 살면 된다는 뜻이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치적 논의는 현실을 뒤집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기반으로 삼지만 실제 뒤집기는 힘들다는 게 저자의 의견이다. 


덜 소비하고 많이 나누어라!


이것이 우리 세대에게 던져진 과제라고 저자는 말한다. 

지구를 살리는 마법 같은 기술은 없다며. 

소비를 줄이는 것이 21세기의 궁극적인 실험이 될 것이라고.


#나는풍요로웠고지구는달라졌다, 호프 자런, 김은령 역, 김영사(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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