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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Jun 15. 2020

맨박스(ManBox)에 갇힌 남자들

그러니 힘들지


n번방 사건이 터졌을 때, 그 방을 드나든 유료 회원의 비율을 코로나 19 확진자 비율과 비교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5천만 인구에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를 대략 1만 명으로 계산하면 1/5000의 비율이다.

n번 방의 유료회원을 26만 명이 아니라 1만 명이라 치면(이상하게 처음 보도와 달리 점차 줄어들었다) 비슷한 것 같지만, 거기에서 남자를 대상으로 하고 더 나아가 20대에서 50대까지의 특정 연령으로 압축하면 그 비율은 점점 높아진다. 1/2500? 1/1250?


사건이 한창 매스컴을 타는 와중에도 뉴스에선 '호기심으로 어쩌다 한 번'이라는 말까지 흘러나와  사태 파악을 하지 모하고 있다는 공분을 사기도 했다.


어떤 이들이 그곳을 드나들었을까?

의혹을 가졌을 때 아마 대부분의 엄마들은 슬그머니 우려의 눈길 한 번씩을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아들에게 보내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그런 건 너무 흔한 일이었으니까. 당장 핸드폰으로 신문의 기사 하나 검색해도 온갖 핑크색 만화가 뜨지 않는가.


예전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의아한 생각이 든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밀림을 헤쳐 나가고, 적과 총격전을 벌일 때도 여배우는 왜 저렇게 가슴을 드러낸 옷을 입을까? 남자들은 모두 옷을 입고 있는데.

이유 없는 과도한 노출이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긴 어려운데 어딘지 보기에 불편했다. 상황에 적절치 않아 보였다.





남자들의 이상하게 어색한 태도. 예를 들면 우연히 남편의 직장 동료를 길에서 만났는데, 그가 남편과만 인사하고 옆에서 인사하는 나는 얼굴도 안 쳐다보고 외면하는 경우가 있었다.

"저 사람 왜 저래요?" 하면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걔, 원래 그래." 했다.


그런 경우를 토니 포터는 <맨박스, 2016년, 한빛비즈>에서 이렇게 말한다.


남자다움'의 기준에 따르면 남자는 자신이 사랑하고 아끼는 특정 여성 이외의 다른 여성에게는 무관심해야 한다. 공개적으로 여성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남자답지 못한 행동이다. 8p


그런 거였구나.




지난번 선거에서 국회의원 여성 후보자를 두고 이유 없이 싫다느니, 밉다느니, 하는 말을 남자들이 많이 하는 걸 들었다.


"도대체 다들 왜 그래요?"

물으니, 여성 후보자가 남자에게 대드는 인상이라고 했다.


남자들은 순하고 고분고분해 보이는 여자를 좋아한다나. 딱히 그런 이유는 아니겠지만, 남자들에 의하면 '착하게 보이는' 입후보자가 당선되긴 했다.


"남자 국회의원 뽑을 때는 그러지 않잖아?"

내 질문에 남편은 대답하지 않았다.


맨 박스는 남자라면 언제나 상황의 주도권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 반대말은 '통제 불능'이다. 흔히 여성들의 행동을 얕잡아 부르는 말이다. 46p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울음을 터뜨릴 때, 그들을 대하는 부모의 태도가 다르다.

남자아이는 어릴 때부터 앞일을 준비시키고, 단련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아버지와 윗대, 그 윗대의 아버지로부터 전해진 사회적 훈육 방침이었다. 그러다 보니 여성은 남성에 비해 열등한 존재라는 사고가 은연중에 학습되었다. 이러한 성 차별주의는 여성 폭력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학습된 남성성의 중심에는 모든 상황을 스스로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통제의 반대 개념인 감정적 나약함은 남자다움의 척도 즉 '맨 박스'와 크게 어긋나서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19p


맨박스를 벗어나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남자는 본인이 맨박스에 갇혀있다는 걸 의식하지 못하고 불편해한다. 뭔가 빼앗길 거라고 두려워한다.


무심코 대하는 여성을 지인이라 여기면, 자기의 딸이라 여긴다면, 미래에 딸이 맞을 상황이라 예상해 본다면 남자들은 맨박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작가는 조언한다.


모든 연령의 남성이 다정하고 정중하게 행동하며 모든 여성이 안전한 세상, 남녀평등을 지지함으로 남성들이 얻는 게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기를 저자는 바란다.


토니 포터의 TED 강연 'A Call To Men(남자들에게 고함)'은 모든 남성들이 꼭 봐야 할 TED 강연  Top 10에 속한다는데, 전국의 중고등학교 성교육 시간에 이런 강연을 들려주는 건 어떨까 싶다. 학생들에게 신선한 충격이 되지 않을까?


남자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그럼에도 나는 한동안 옆에 있는 남자에게 이 책을 넘겨주지 않았다. 그동안 이해되지 않았던 행동의 원인을 혼자 곰곰이 들여다보는 게 사뭇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새로 산 전자기기의 작동법을 연구할 때마다 싸우게 되던 것, 이사할 때마다 계약서 작성 후 잘했다, 말 한 번 없이 이상하게 심통 부려 힘들게 하던 것.


“여자들이 혼자 일처리하고 나면 대부분 남자들이 그러더라고요.

부동산 중개인이 말했지.


함께 사는 남자가 얼마나 맨 박스에 갇혀 있는지, 맨 박스 지수를 셈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이라고? 당연히 남자다움에 갇혀 있어야지."

책 표지를 보고 남편이 말했다.


'그러니 힘들지.'





#<맨박스 ManBox>, 토니 포터 각, 김영진 역, 한빛비즈.

#토니 포터의 TED 강연 'A Call To Men(남자들에게 고함)'https://www.ted.com/talks/tony_porter_a_call_to_men?utm_campaign=tedspread&utm_medium=referral&utm_source=tedcom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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