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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Jun 16. 2020

햄버거 주문하기

기계는 늘 낯설지만



“저 햄버거 맛있어.”

운전하던 친구가 왼쪽 도로변 가게를 내다보며 말했다.


“어느 거?”

도로변에는 빵집을 포함해 햄버거 가게가 최소한 세 개는 된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한 친구는 맛이 불러온 향수 때문인지 잠시 말이 없었다.


잠시 후 우리는 각기 다른 가게의 햄버거로 동문서답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새로 생겼어. 지난번에 베트남 쌀국수 팔던 곳 말이야.”

“ 아, 거기.”

돌아보니 지난 지 한참이라 가게는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오후 햄버거 가게를 찾아갔다. 친구가 기억하던 맛이 궁금해서.

부근에 햄버거 가게가 많지만 나는 들른 기억이 까마득하다. 평소에 즐겨먹지 않는 음식이라는 뜻이다.


가게 문을 열고 스르륵 들어가 카운터에 가서 주문하려니 바삐 움직이던 종업원이 눈짓으로 입구를 가리킨다.


“아, 키오스크!”

“도와드려요?”

“아니요, 할 수 있어요.”


모든 기계는 처음에 낯설다. 하지만 단순하게 반복되는 기능이라 숙달되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익숙해지기까지 습이 필요할 뿐이다.




그리고 어제.

미장원에서 파마를 하고 나니 한시 반이 지났다. 늦은 점심시간.   


혼자 밥 먹기엔 칼국수보다 햄버거가 낫지.

이게 무슨 논리인가 싶지만, 손님 아무도 없을 가게에 들어가 국수 나오길 기다려 후룩후룩 고개 숙이고 면을 흡입하는 모습보단 햄버거 베어 물며 핸드폰 만지작거리는 게 훨씬 여유 있어 보인다.

그러고 보면 늘 하고 싶은 것보다 남의 시선을 중시하며 살아왔는지 모른다. 어느 가게에서도 나를 관심 있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인데. 게다가 이 햄버거를 좋아한다. 여기엔 쇠고기 패티에 상추 한 장, 양파 한 조각 외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다. 아무런 소스도 넣지 않는 단순한 맛이 나는 좋다.


두 번째니, 익숙하게 기계 앞에서 주문을 시작했다.


지난번에 햄버거 시키고, 콜라를 나중에 추가했더니 가격이 비쌌어. 세트 메뉴를 시켜야지. 햄버거 누르고, 감자 누르고, 콜라를 꾹! 영수증은 평소처럼 귀찮으니 취소 꾹!


그런데 잠시 생각이 다른 곳에 가 있어서 주문 출력이 나오는 걸 보지 못했다. 엎드려 있는 작은 종이는 앞사람이 찾아가지 않은 영수증 같았다. 주문 영수증마저 취소했으니 주문이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카운터에 가서 물으니 땀을 뻘뻘 흘리며 패티를 굽던 주인이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희들은 확인이 어려워요.”


나는 다시 기계 앞으로 가서 주문했다. 출력 지를 눈여겨보니 번호가 나란히 두 개 아닌가. 주문 시간으로 보니 이중으로 주문한 거였다.


“취소될까요?”

주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하나는 포장해주세요.”




햄버거를 먹고 있는데 주인이 테이블 옆으로 다가왔다. 너무 바빠서 여유가 없었다며, 못 살펴 드려 미안하다고 했다.

"아니요. 안 살펴줘도 돼요. 잠시 딴생각하느라 출력되는 걸 못 봐서 그래요."

사람들은 나이에 대해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햄버거를 먹으며(물론 여유는 사라지고), 머릿속으로 재빨리 봉지에 담긴 햄버거를 식기 전에 갖다 줄 사람을 수소문했다. 저녁에 먹을 사람은 있지만, 식으면 무슨 맛인가. 지난번에 갖다 줬을 때 남편의 심드렁한 표정이 떠올라 지금 바로 맛있게 먹을 사람을 찾았다.


공무원 시험 준비하러 집에 와 있다던 친구 아들이 떠올랐다. 가는 길에 옥수수도 한 봉지 곁들여 친구에게 안겼다.


잠시 후 날아온 카톡에는 햄버거랑 감자 옥수수 앞에서 양손으로 승리의 브이를 그리며 친구 아들이 활짝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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