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 낯설게 보기
시인은 견자見者다. (…) ‘본다’는 것은 지각의 단초가 되는 행동이다. (…) 시인이 드러내는 지각의 특이성은 항시 다르게 보기, 낯설게 보기의 결과로 나타난다. p86
어느 날 갑자기 시가 내게로 왔다. 내가 시를 찾은 게 아니었다. P190
언덕으로 들어가,
거기 대장간을 지어라,
거기 풀무를 만들고,
거기 쇠를 달구고,
망치질하고 노래하라!
-울라브 하우게,「언덕 꼭대기에 서서 소리치지 말라 」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나의 갈증에 바다를 주지 마세요.
빛을 청할 때 하늘을 주지 마세요.
다만 빛 한 조각, 이슬 한 모금, 티끌 하나를,
목욕 마친 새에 매달린 물방울같이,
바람에 묻어가는 소금 한 알같이.
-울라브 하우게,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전문
정말 좋은 시인은 “진실의 전부”가 아니라 사막의 전갈이나 거미의 먹이사냥같이 진실의 작고 구체적인 조각만을 갈망한다. 왜냐하면 “진실의 전부”는 너무나 커서 시의 그릇에 담는 게 불가능한 탓이다. 시는 진실의 작은 부분들, 세상을 뒤덮은 소음과 혼잡도 꺼트릴 수 없는 작은 촛불의 숨결, 악취 속에서 홀연히 노란 장미의 향기 한 점으로 충분하다. 시가 머금은 진실의 조각들은 아무리 작아도 그것이 세계를 향해 발신하는 신호는 미약하지 않다. 그래서 시인은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라고 노래할 수 있다. 171~172p
화살이 과녁을 맞추려면
이리저리 둘러갈 순 없다. 하지만 좋은 궁수는
거리와 바람을 수락한다.
그러니 네가 과녁을 때 나는 조금 위를 겨눈다.
-울라브 하우게, 「조금 위를 겨눈다」 전문
하우게는 노르웨이에서 태어나 농업학교를 나와 전문 정원사 노릇을 하며 시를 썼다. 그는 노르웨이 서부지역인 울빅을 떠나 산 적이 없다. 이 장소에의 고착은 어려서 정신 질환을 앓은 것과 상관있을 테다. 나고 자란 고향 땅에 머무르면서 묵묵하게 정원사 일을 하며 시를 쓰고 시집을 펴낸 하우게는 1994년 고향 울빅의 집에서 제 의자에 앉은 채 평화롭게 죽었다. 사람들은 하우게를 노르웨이의 국민 시인으로 꼽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
그는 ‘매일 시 한 편을 쓰고 싶다 “고 소박한 갈망을 표현한다. 시는 엄청난 영감이나 고매한 착상이 아니라 날마다 ”떠오르는 생각, 일어난 일, 무언가 주의를 끄는 것“에서 시작한다. (…)
한 편의 시가 태어나는 데는 사소한 사건이 일어나는 찰나를 목격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시는 그토록 작은 진실만을 머금기 때문이다. 173p
시인은 자기 세계의 한 복판에서 산다는 점에서 농부다. 어디에 살든지 농경시대의 농부들은 대지의 자식들, 기후의 예측자들, 씨앗의 수호자들이다. 그들은 자연 세계의 중심에서 제 삶을 꾸리는 탓에 ‘풍경’의 중심을 꿰뚫어 본다. (…) 보통 사람들은 그 모름 속에서 혼란에 빠질 수도 있지만 농부들은 모르는 것 속에서 사라지는 세계의 모든 사물에 감응하고, 그것을 감각적 명증화 속에서 포착해낸다. p85~86
삶이 끝날 때
나는 말하고 싶다
평생 나는 경이와 결혼한 신부였노라고.
평생 나는 세상을 품에 안은 신랑이었노라고.
-메리 올리버, 「죽음이 찾아오면」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