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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Jun 18. 2020

다음 읽을 책을 떠올리며, 김훈의 『바다의 기별』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는 언어의 훈련



꾸준히 책을 읽기 시작한 게 한 3,4년 전 같은 데, 기억이 정확하지 않아 도서관 대출 기록을 찾아봤더니 2014년 3월이다. 글쓰기를 공부하려고 결심했을 때다. 그러고 보면 나의 책 읽기 이력은 도서관과 떼례야 뗄 수가 없다. 대부분 책을 빌려 읽었기 때문이다.


책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읽은 게 전부다. 이상하게 대학교 다닐 때는 책을 전혀 읽지 않았다. 결혼 후 가끔 읽은 거라고는 좋아하는 탐정 소설이나 단숨에 읽을 수 있는 흥미 위주의 책이 전부였다.


도서관에 간 첫날이 떠오른다. 나란히 늘어선 서가에 많은 책이 꽂혀 있는데 막상 뭘 읽어야 할지 몰랐다. 읽을 책이 없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만큼 적절한 표현이 어디 있을까. 막막하게 서 있다가 천천히 서가 사이로 걸어 들어간 기억이 난다.  


유인경의 『이제는 정말 나를 위해서만』, 위화의 『제7일』, 곽재구의 『포구기행』, 김소연의 『시옷의 세계, 조금 다른 시선, 조금 다른 생활』.

  맨 처음 빌린 책들이다.


얼마 후 도서관 시스템이 바뀌어 다섯 권까지 대출이 가능해졌기에 가족 카드 두 장으로 열  권을 빌렸다. 대출 기간이 2주이니 1주 연장하고 못 읽으면 며칠 연체해 가며 읽었다. 그러니 대략 한 달에 열 권 정도 읽었던 것 같다. 책을 사서 읽는 것보다 빌려 읽는 게 나에겐 더 잘 맞았다. 구입해서 책장에 꽂아둔 책들은 반납의 압박이 없어서 읽기를 미루기 일쑤였기에.


읽다 보니 책이 책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았다. 핸드폰에 깔린 도서관 앱에서 책의 비치 유무와 서가 분류기호를 확인해 메모해 놓으면 대출 시간도 절약되고 헛걸음하는 경우도 없었다.


지난주에는 연체된 책 때문에 다섯 권만 빌렸다.




김훈의 문장에 대해 감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전에 김훈의 에세이와 소설을 몇 권 읽었다. 이번에 읽을 책은 『바다의 기별』이다. 책의 표지를 열자 왼쪽에 작가의 이력이 있었는데, 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첫 번째 이력이  ‘자전거 레이서’였다.

 예전 어느 책에선가, 김훈은 “사꾸라꽃이 피면 여자가 생각난다”는 말을 했다. 아마, 오래전 책 일거다. 겁 없이 쓴 글일 테니. 나는 작가의 가식 없는 솔직함에 절로 입 꼬리가 올라갔다. 이건 마치 ‘그리스인 조르바’ 같잖아, 하며.

 

아내는 울었다. 울면서 “아기가 추웠겠네요”라고 말했다.
춥고 또 추운 겨울이었다. 「1975년 2월 15일의 박경리」 p94


김지하의 출옥 날 손자를 업고 기다리는 박경리를 만난 이야기는 이전 다른 산문집에서 읽었다. 하지만 이런 글은 두 번 세 번 읽어도 좋다. 마음을 울리니까. 글이 따듯했다. ('따듯하다'란 낱말이 처음 나왔을 때 나는 '따뜻하다'의 오기인 줄 알았다. 연이어 나오길래 사전을 찾아봤다. '따뜻하다'보다 여린 느낌을 주는 단어란 걸 나는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회상」에서 작가는 신문사에 들어가 기자가 된 이유를 길바닥을 헤매다가 밥을 벌어먹으려고 들어간 거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20대 초반 우연히 읽은 '난중일기'로 언젠가 '내가 나의 언어를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는 날' 난중일기와 이순신에 대한 쓸 거라는 막연한 소망을 가졌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 『칼의 노래』에 대한 이전의 내 생각은 '읽고 싶지 않다' 였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쓴 책이라… 다 아는 거잖아. 진부한 전쟁 이야기일 테고, 당파싸움에 지지고 볶는 신하들은 텔레비전에서 이미 실컷 봤지. 책이라고 뭐 색다른 게 있겠어.'  


이순신 장군에 대한 나의 존경심이나 김훈 작가와 상관없는 나의 고정관념이었다. 그런데.


내가 쓴 장편소설 『칼의 노래』 첫 문장은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입니다. (…) 나는 처음에 이것을 “꽃은 피었다”라고 썼습니다. 그러고 며칠 있다가 담배를 한 갑 피우면서 고민 고민 끝에 “꽃이 피었다”라고 고쳐놨어요. 그러면 “꽃은 피었다”와 “꽃이 피었다”는 어떻게 다른가. 이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꽃이 피었다”는 꽃이 핀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언어입니다. “꽃은 피었다”는 꽃이 피었다는 객관적 사실에 그것을 들여다보는 자의 주관적 정서를 섞어 넣은 것이죠. “꽃이 피었다”는 사실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이고 “꽃은 피었다”는 의견과 정서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입니다.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나의 문장과 소설은 몽매해집니다. (…)
나는 사실만을 가지런히 챙기는 문장이 마음에 듭니다. 나는 이런 문장을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서 읽었습니다. 「회상」 p140~141


 무인들이 큰 칼을 한 번 휘둘러 사태를 정리해버리는 것 같은, 아무런 수사적 장치가 없는 단순한  문장, 하지만 놀라운 문장.

  37년 전 읽은 난중일기를 떠올리며 작가는『칼의 노래』를 두 달만에 썼다고 한다. 쉬는 날 빼고 사십일.  어느 작가든 그렇게 글을 썼다면 그건 정말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쓴 거다.


사람이 말을 하거나 언어를 사용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글을 잘 쓰고 세련된 수사학을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의견과 사실을 구분해서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말을 할 때, 글을 쓸 때, 내가 말하는 것이 사실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의견을 말하는 것인지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의견인지, 혹은 아무런 사실을 바탕에 두지 않고 그저 나의 욕망을 지껄이는 것인지를 구별하지 않고 말을 하면 이런 말들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에 기여할 수 없습니다.「말과 사물」 p147~148



작가는 이 세상에 언어가 존재하는 목적은 오직 하나라며, 언어는 소통을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요즈음 여러 사회 현상에 대해 사람들 간 전혀 언어 소통이 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불편할 때가 많다.


나는 신념에 가득 찬 사람들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습니다. 나는 오히려 의심에 가득 찬 자들을 신뢰합니다. 내가 신념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로되, 인간의 진실이 과연 신념 쪽에 있느냐 의심 쪽에 있느냐고 묻는 다면 나는 더 많은 진실은 의심 쪽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입니다.「회상」 p135




폭소노미(folksonomy)라는 분류체계가 있다.

이는 folk+order+nomous의 합성어로 '사람들에 의한, 관계에 의한 분류법'이란 뜻이다. 이는 웹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정보나 관련 주제를 키워드에 따라 구분하는 새로운 분류 체계를 의미한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제각각 관심 있는 ‘연관 검색어’에 모여 같은 의견을 주고받다 보면 사실과 의견이 섞여 사고가 굳어 버린다. "모두가 똑같이 생각한다면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월터 리프먼)


신념의 언어보다 더 소중한 것은 자기 주변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태도이다. (…) 세계를 과학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언어의 훈련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세계를 과학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어떤 현상이나 사태를 보고 이것은 무엇이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태도일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제기하고 거기에 대한 대답을 모색하는 태도일 것입니다.「말과 사물」 p149


『바다의 기별』은 2008년에 출간된 책이다. 12년간 우리는 어디로 어떻게 흘러온 걸까?




#『바다의 기별』, 김훈, 생각의 나무

#폭소노미(folksonomy)

#『칼의 노래』, 김훈,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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