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과 사실을 구분하는 언어의 훈련
아내는 울었다. 울면서 “아기가 추웠겠네요”라고 말했다.
춥고 또 추운 겨울이었다. 「1975년 2월 15일의 박경리」 p94
내가 쓴 장편소설 『칼의 노래』 첫 문장은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입니다. (…) 나는 처음에 이것을 “꽃은 피었다”라고 썼습니다. 그러고 며칠 있다가 담배를 한 갑 피우면서 고민 고민 끝에 “꽃이 피었다”라고 고쳐놨어요. 그러면 “꽃은 피었다”와 “꽃이 피었다”는 어떻게 다른가. 이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꽃이 피었다”는 꽃이 핀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언어입니다. “꽃은 피었다”는 꽃이 피었다는 객관적 사실에 그것을 들여다보는 자의 주관적 정서를 섞어 넣은 것이죠. “꽃이 피었다”는 사실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이고 “꽃은 피었다”는 의견과 정서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입니다.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나의 문장과 소설은 몽매해집니다. (…)
나는 사실만을 가지런히 챙기는 문장이 마음에 듭니다. 나는 이런 문장을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서 읽었습니다. 「회상」 p140~141
사람이 말을 하거나 언어를 사용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글을 잘 쓰고 세련된 수사학을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의견과 사실을 구분해서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말을 할 때, 글을 쓸 때, 내가 말하는 것이 사실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의견을 말하는 것인지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의견인지, 혹은 아무런 사실을 바탕에 두지 않고 그저 나의 욕망을 지껄이는 것인지를 구별하지 않고 말을 하면 이런 말들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에 기여할 수 없습니다.「말과 사물」 p147~148
나는 신념에 가득 찬 사람들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습니다. 나는 오히려 의심에 가득 찬 자들을 신뢰합니다. 내가 신념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로되, 인간의 진실이 과연 신념 쪽에 있느냐 의심 쪽에 있느냐고 묻는 다면 나는 더 많은 진실은 의심 쪽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입니다.「회상」 p135
신념의 언어보다 더 소중한 것은 자기 주변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태도이다. (…) 세계를 과학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언어의 훈련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세계를 과학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어떤 현상이나 사태를 보고 이것은 무엇이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태도일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제기하고 거기에 대한 대답을 모색하는 태도일 것입니다.「말과 사물」 p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