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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Oct 04. 2021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5)

콜레라와 나병


"브로드 스트리트 펌프의 손잡이는 어디에 있나?"


19세기 중반 런던은 인구가 250만 명으로 세계 최대의 도시였다. 하지만 도시의 폐기물 시스템은 200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거리는 오물로 가득했고, 가옥에선 악취가 풍겼다. 콜레라가 번졌을 때 당국은 공기 중 냄새를 통해 질병이 퍼진다고 여겼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질병의 원인이 악취 때문이라고 여겼다. 

콜레라는 대변에 오염된 물을 마시면 감염된다. 치사량의 콜레라 군이 들어 있어도 물은 탁해지지 않는다. 깨끗해 보인다. 콜레라로 죽은 사람의 변이 근처 상수도로 방류되었고 그 과정이 반복되었다. 1854년 콜레라가 유행할 때 런던의 양조장에 근무하는 80명의 노동자는 감염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술만 마셨다. 


소호에 ‘존 스노’라는 의사가 살고 있었다. 그는 인근에 사는 베이비 루이스의 죽음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은둔형이고 매사에 비판적인 약간 괴이한 인물이었다. 이 이름이 익숙한 건 미드 <왕좌의 게임>의 '존 스노' 때문일지 모른다. 





1854년 8월 28일, 아기가 죽은 지 5일 만에 인근 주민 74명이 죽었고 수백 명이 빈사 상태에 빠졌다. 일반적으로 수백 명이 죽는데 수개월이 걸리는데 이는 예외적인 경우였다. 존 스노는 감염자를 추적해 최초의 감염 지도를 작성했다. 지도를 꼼꼼히 들여다보던 그는 브로드 스트리트 펌프에 가까울수록 환자가 많다는 걸 발견했다. 당시 도로에는 펌프가 군데군데 있었고 주민들은 아침저녁으로 펌프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다. 스노는 결과를 당국에 보고했고, 9월 8일 물의 공급을 막기 위해 펌프의 손잡이가 제거되었다. 


하지만 ‘더러운 물’에 대한 스노의 견해에 많은 의사와 성직자들이 반발했다. 유독한 냄새가 병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이후에도 한참 동안 이어졌다.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믿었던 것처럼. 

1866년 콜레라가 다시 창궐했을 때 당국은 시민들에게 물을 끓여먹으라고 지시했다. 혹시나 존 스노가 옳을지 모르니까. 이후 런던에 콜레라가 유행한 적은 없었다. 스노는 자신의 이론이 공인되는 걸 보기 전에 죽었다. 


존 스노가 만든 콜레라 발생 통계지도



오늘날 존 스노는 의학계의 전설이 되었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 관계자들은 의학적 수수께끼를 풀려고 할 때마다 이렇게 농담한다. 

“브로드 스트리트 펌프의 손잡이는 어디에 있나?”


<브로드 스트리트에 복원된 펌프. 건너편에 술집 ‘존 스노’가 있다.



그의 신앙심이 지시하는 만큼, 몰로카이섬의 다미앵 신부


 1865년 하와이 정부는 나병 확산 방지법을 제정해 몰로카이섬을 나환자들에게 배정했다. 나환자로 의심되는 자를 정부가 색출해 강제로 격리시켰다. 사람은 괴물 취급을 받으면 괴물처럼 행동한다. 나환자들이 모인 몰로카이섬은 범죄, 음주, 모든 종류의 악폐로 넘쳐났다. 여성과 아이들은 병에 걸리면 그대로 버려졌다.


1840년 벨기에에서 태어난 다미앵은 18세 되던 해 선교사를 자원했다가 떨어졌다. 이후 형의 도움으로 성가대로서 수도회에 들어갔다. 수도회에서 그는 예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성취를 보여 사제가 되었다. 몰로카이섬의 나환자들은 계속 사제를 보내달라고 교회에 요청했다. 하지만 위험하고 매력 없는 임무에 자원할 사람이 없었다. 다미앵 신부는 봉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873년 다미앵이 출발한 후 주교는 편지에 다미앵이 ‘그의 신앙심이 지시하는 만큼’ 머물러도 된다고 썼다. 다미앵은 이를 16년간 머물러도 된다는 허가로 받아들였다. 


다미앵 신부는 모든 고아에게 농사와 요리를 가르쳤으며 성인이 되었을 때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라고 격려했다. 나병은 쉽게 전염되지 않지만 다미앵은 나환자들과 완전히 섞여 함께 살았기  때문에 그의 운명을 예상했으리라 본다. 지옥 같았던 섬은 쾌활한 사람들, 아름다운 풍경으로 가득 찼다. 

1888년 몰로카이섬을 방문한 이들은 크게 놀랐다. 환자들에게 어쩌면 그리 행복할 수 있냐고 물으니, 그들은 우리의 사제 덕분이라고 말했다. 1년 후 다미앵 신부는 죽었다. 


2009년 다미앵 신부는 시성 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미앵 신부보다 더 영웅적인 인물은 없다”라고 말한다. 데레사 수녀를 포함해 미래의 많은 영웅들이 한센병 환자의 목자인 다미앵 신부를 삶의 롤모델로 삼았다. 




#세계사를바꾼전염병13가지, 제니퍼 라이트, 이규원 옮김, 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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