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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Oct 03. 2021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4)

매독과 결핵


두창이 건너가고, 매독이 건너왔다. 


1493년 바르셀로나에서 발견된 매독은 잉카 제국의 두창 감염과 반대로 신대륙에서 유럽으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유럽 내재설도 대두되고 있지만 대 유행 시기는 콜럼버스 원정대의 귀환 이후이다.


최초에 100만 명의 유럽인이 죽었다. 15세기 말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전쟁할 때 이탈리아와 독일에서는 ‘프랑스 병’이라 불렀고, 프랑스에서는 ‘이탈리아 병’이라 불렀다. 러시아에선 폴란드 병, 네덜란드에선 스페인 병, 서로가 미워하는 국가의 이름으로 불렸다. 현재의 매독, '시필리스 syphilis'라는 이름은 1530년에 등장했다. 매독이 두려운 사람은 성 경험이 없는 신앙심 깊은 사람과 결혼하거나, 배우자와도 섹스를 하면 안 됐다. 과장하자면 당시 거의 모든 사람이 매독에 걸렸다. 나폴레옹, 슈베르트, 플로베르, 콜럼버스. 

링컨과 히틀러도 의심받고 있다. 니체와 고흐의 동생 테오도 매독으로 음울한 최후를 맞았다. 1520년에서 1928년까지 생존한 유명인들은 거의 다 걸렸다고 보면 될 것이다. 


페니실린이 없었던 100년 전의 매독 환자들은 성병에 걸렸다는 낙인이 찍힐까 봐 병을 숨겼다. 환자가 병을 시인하지 않는 매독은 가장 맞서 싸우기 어려운 질병이 되었다. 


어디에서도 그 질병에 관해 읽거나 들을 수 없고, 짐승만도 못한 놈이나 매춘부만이 매독에 걸린다는 생각을 강화하면 사람들은 더 이야기하기를 꺼린다. 두렵다고 입에 담기조차 꺼리면 더 무서워질 뿐이다. 매독을 둘러싼 침묵은 오래 이어졌다. 


1932년부터 1972년까지 미국 알리배마주 터스키기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600명을 대상으로 수치스러운 실험이 40년 간 계속되었다. 그들은 대상자들에게 매독에 걸린 사실도 알려주지 않았고, 1947년 페니실린으로 치료할 수 있게 되었을 때도 알려주지 않았다. 질병에 대한 침묵과 모욕 캠페인이 용인되면 이런 극악무도한 실험이 가능해진다. 

콜슨 화이트헤드의 소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에 불법 의료 실험에 관한 내용이 있다. 농장을 탈출한 흑인 노예 코라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여겨 자리잡은 곳에서 또 다른 형태의 차별과 폭력을 경험하게 된다. 정부에서 파견된 의사들은 매독에 걸린 환자들에게 피를 뽑고, 치료제라며 아스피린과 철분을 나누어 주었다. 


이 사건은 공중 보건국에 근무하던 내부자가 기자에게 제보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실험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는 1997년 클린턴 대통령에 이르러 이루어졌다. 현재 이런 실험을 하려면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동의를 참가자에게 받아야 한다. 


2021년 공화당이 우세한 미국 남부 지방의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50퍼센트를 넘지 못하고 있다. 백신에 대한 흑인들의 거부감은 이런 일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는 견해들이 있다. 


매독에 걸리면 코가 썩어 문드러진다. 삶이 파괴되면서 사회로부터 고립된다. 도움과 존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여겨져 인생이 파괴된다. 저자는 매독의 영웅은 페니실린을 발견한 플레밍이 아니라, 1818년 영국 런던의 <블랙우즈 에든버러 매거진>에  ‘코 없는 사람들의 모임 no nose'd club’이라는 유쾌한 클럽을 소개한 필자라고 말한다. 이전에 매독을 다룬 잡지들은 독자들의 분노로 폐간에 이르렀다. 


필자는 ‘코 없는 사람들의 모임’을 매우 유머러스하게 묘사했다. 동료들과 함께하는 동안 환자들은 수치심에서 해방되었다. 기이하고 새로웠던 이 모임의 설립은 후일 알코올 의존증이나 에이즈 환자 단체의 토대를 만드는 시발점이 되었다. 함께 하는 동안 그들은 수치심에서 해방되었다. 수치심은 질병과의 전쟁에서 싸워야 할 적이다. 병자를 모욕한들 낫지 않고, 침묵 속에 살아간 들 무엇 하나 치유되지 않는다. 


단체에서 그들이 함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잃지 않겠다고 외치는 것이다. 자신은 고통받아 마땅한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 치료법을 찾기 위해 더욱 분발하게 된다. 





17세기에는 결핵이 상사병 때문에 생기는 우아한 질병이라고 생각되었다. 18세기에서 19세기에 들어서면서는 결핵에 걸리지 않은 여성들도 환자처럼 보이고 싶어 했다. 1829년부터 1845년 사이, 미국 대서양 연안 대도시의 죄수 가운데 백인의 10~13퍼센트가 결핵으로 죽었다. 이후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는 약 400만 명이 결핵으로 죽었다. 날씬한 몸매와 창백한 얼굴이 결핵의 매력으로 미화되었다가 1882년 독일의 세균 학자 코흐가 결핵을 일으키는 간균을 발견하면서 사라졌다. 1921년 BCG 백신이 개발되었고, 현재 약 1억 명의 아이들에게 접종되고 있다. 

결핵은 여전히 우리 주위에 있고, 전염성이 강하다. 한국의 결핵 발병률과 사망률은 OECD 국가 중 1위이다.


#세계사를바꾼전염병13가지, 제니퍼 라이트, 이규원 옮김, 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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