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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Oct 01. 2021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3)

무도광과 두창



죽을 때까지 춤을 추는 병, 무도광


1518년 슈트라스부르그의 거리에서 한 여성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어도 춤을 멈추지 않자 사람들은 이상하게 느꼈다. 그녀는 기절했고 잠이 들었다. 잠이 깨자 그녀는 다시 춤을 췄다. 3일째가 되자 사람들은 공포를 느꼈다. 이상하게 사람들이 그녀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녀가 예배를 올리면 나을지 모른다며 마차에 태워 성지로 데리고 갔다. 사람들은 이타적으로 훌륭하게 행동했다. 


역병 전쟁 기근으로 사람들은 견딜 수 없었다.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술을 마시고 춤을 췄다. 춤은 악몽 같은 현실을 탈출하는 수단이었는지 모른다. 집단 히스테리. 오늘날에는 집단 심인성 질환이라는 용어가 자주 쓰인다. 


사람들은 발목에 뼈가 튀어나와도, 심장 마비가 올 때까지 정신 착란 상태로 춤을 췄다. 이전에도 이런 예가 있었다고 한다. 1017년대에는 춤을 싫어하는 성직자의 저주 때문이었다고 전하고, 1247년에는 100명의 아이가 춤을 추다가 죽은 일이 잇었다. 1278년에는 다리 위에서 춤을 추다가 다리가 무너져 죽었고, 1347년 라인 지역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1518년 여름, 스트라스부르그 시에서는 매일 15명이 죽었다. 목격자들은 그들이 넋을 잃은 채 끔찍한 환상을 보고 미친 듯이 제멋대로 행동했다고 말했다. 

공동체는 이들을  도울 여러 활동을 시도했다. 무도회를 금하고, 역병에 걸린 사람은 다른 사람을 감염시키지 않도록 집에 머물게 조치하고, 드럼과 탬버린을 사용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하인이 감염되어도 자비로 어딘가에 붙들어 두거나 비투스 성지에 보냈다. 믿기지 않게 성지 순례 후 그들이 춤을 멈췄다. 


위대한 믿음으로 치유된다는 믿음이 그들을 낫게 했는지 모른다. 아니면, 일종의 플라세보 효과(효능 없는 약물이나 치료법으로 증세가 호전되는 현상)였거나.





문명을 완전히 파괴한 역병, 두창(천연두)


1519년 코르테스가 이끄는 에스파냐 군대가 아스테카(현재의 멕시코)에 도착했을 때 아스테카의 황제 몬테수마 2세는 이들을 열렬히 환영했다. 온화하고 평화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우연히 신이 재림한다고 기대했던 날에 낯선 무리가 말을 타고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당시 대륙에는 말이 없었다. 이 시기 아스테카인은 식인 풍습이 있었고 산 자를 인신 공양하는 풍습이 있었다. 멜 깁슨 감독의 영화 아포칼립토(2006년)에 끔찍한 이 장면이 나온다. 


아포칼립토



코르테스는 환대하는 왕을 감금했다. 전투가 일어났고 에스파냐 군은 철수했다. 두창에 감염된 군인의 시체를 남긴 채. 


극심한 기침과 타는 듯 고통스러운 부스럼, 엄청난 발진. 두창이 아스테카를 휩쓸었다. 1521년 다시 돌아온 코르테스는 피지배 민족들을 구슬려 아스테카를 쉽게 점령했다. 아스테카는 역병이 돌기 전에 인구가 1만 5천 명에 달했지만 1580년에는 4퍼센트인 600명만 남았다. 


아스테카인들은 에스파냐인들이 금에 집착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금에 열광하는 이유가 뭐냐고 원주민들이 묻자 코르테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와 내 동료들은 금으로만 나을 수 있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오.”  
                                                                             P248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김영사




1493년 와이나 카파크 황제가 지배권을 잡았을 때 아스테카의 아래쪽, 잉카제국(현재의 페루)은 아르헨티나에서 콜롬비아까지 남아메리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왕은 전국을 돌며 관개시설을 감독하고 땅콩 목화 같은 새로운 작물의 재배를 장려했다. 1527년 카파크 황제가 두창에 걸려서 죽었다. 가족 대부분과 장군도 죽었다. 아타왈파 왕이 뒤를 이었다. 


1532년 에스파냐의 피사로는 코르테스를 모방해 잉카인들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잉카제국은 8만의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에스파냐의 군대는 168명이었다(그중 말을 탄 군인은 62명). 첫날밤 전투에서 에스파냐 군대는 7천 명의 잉카 군인을 죽이고 아타왈파 왕을 체포했다. 


피사로는 왕을 석방하는 조건으로 길이 6미터, 너비 5미터의 방을 금으로 가득 채울 것을 제안했다. 이를 믿었던 잉카인들은 평화롭게 금을 준비했다. 에스파냐 군은 화형만 면제해주면 기독교로 개종하겠다는 왕을 죽이고 시체를 불태웠다. 잉카인은 몸이 불타면 사후 세계로 갈 수 없다고 믿었다.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자였던 에스파냐인들은 승리를 위대한 신의 은총 덕분이라고 믿었다. 사실 승리는 에스파냐 군대가 용감해서도 아니었고, 총과 말을 가진 덕분도 아니었다. 단 한 명의 두창에 걸린 에스파냐인이 1525년 경 잉카에 두창을 들여왔다고 추측한다. 2년 사이에 왕과 용맹한 장군들이 모두 죽었다. 


잉카인들과 달리 16세기 유럽인에겐 그런 질병들이 삶의 일부였다. 살아남은 자들은 면역이 생겼고, 면역력은 유전될 수 있었다. 하지만 유럽인의 방문 이전에 아메리카 원주민은 그런 질병에 노출된 적이 없었다. 어느 해에 세계에서 가장 위대했던 문명사회가 이듬해에 아예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두창은 18세기 잉글랜드의 의사이며 과학자인 에드워드 제너가 우유를 자는 여자들이 두창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전기를 맞았다. 1796년 제너는 우두에 걸린 우유 짜는 여자의 부스럼에서 고름을 뽑아 소년에게 접종했다. 소년은 살았다. 제너는 그 기법을 '종두 vaccination'라 불렀다. '소'를 의미하는 라틴어 'vacca'에서 따온 것이다. 이것이 백신의 첫걸음이 되었다. 이후 소아마비, 홍역, 뇌수막염, 디프테리아 백신이 개발되었다. 하지만 당시 종두는 물의를 일으켰고, 많은 이들이 접종을 반대했다. 


1979년 세계 보건기구는 두창이 전 세계적으로 박멸되었다고 공식 선언했다.



그림: 황금에 눈이 먼 피사로에 의해 자행된 잉카 왕 아타왈파의 처형, 페루 쿠스코 박물관(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세계사를바꾼전염병13가지, 제니퍼 라이트, 이규원 옮김, 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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