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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Oct 06. 2021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6)

장티푸스 메리와 스페인 독감


장티푸스 메리


아일랜드계 이민자인 메리 맬런(1869~1938)은 탁월한 요리 실력으로 주로 상류층 가정의 요리사로 고용되었다. 그녀의 시그니쳐 메뉴는 아이스크림이었다. 그녀는 51명에게 장티푸스를 감염시켰다. 


사망자가 나온 주택의 주인은 조지 A 쇼퍼라는 위생 기사를 고용했다. 

무엇이 원인일까? 오염된 물? 조개? 왜 이 집에서만 감염자가 나올까? 당시 장티푸스에 걸리면 60퍼센트가 사망했다. 소퍼는 첫 감염자가 나온 날짜 전후 이 집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살펴봤다. 3주 전 요리사 메리가 고용되었다. 그녀의 직장 경력을 조사해보니 그녀가 간 곳마다 발병률이 유난히 높았다. 샘플을 달라 했지만 메리는 거절했다. 소퍼는 뉴욕 주 보건국에 호소했다. 경찰에 의해 그녀는 병원으로 끌려가 검사를 받았다. 그녀의 검체에선 장티푸스 균이 바글바글했다. 


그녀는 미국에서 최초로 발견된 장티푸스 무증상 보균자였다. 이후 그녀는 ‘장티푸스 메리’라 불렸다. 보건국은 메리를 뉴욕시 이스트 강의 작은 섬에 격리했다. 그녀는 3년간 갇혀있었다. 인권 문제가 계속 대두되자 당국은 그녀를 풀어줬다. 그녀는 잠적했다. 요리밖에 할 줄 몰랐던 그녀는 다시 음식을 만들다가 주변을 감염시켰다. 그녀는 다시 격리되었고, 나중에는 연구실의 조수로 일했다. 이 직업이 그녀의 적성에 맞았다. 그녀는 30년간 격리된 후 사망했다. 그녀가 무죄인지, 유죄인지,격리가 타당한지에 관해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확진자가 왜 돌아다녔어?"

"걸리면 직장 잘린데."

현재의 코로나19 확진자에 대한 사회의 낙인과 혐오도 이와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 





'아무것도 왜곡하지 않고 숨기지 않고 누군가를 조종하려 하려 들지 말고'


스페인 독감은 1918년 3월 미국 캔자스주 해스컬에서 발병한 20세기 최대의 역병이다. 초겨울 해스컬 지역의 건강한 20대 수십 명이 독감을 앓다가 폐렴으로 죽었다. 보건국에 보고했지만 아무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지역의 젊은이들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인근 훈련소로 이동했다. 다닥다닥 붙은 침상이 있는 훈련소의 환경은 역병의 전파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최초의 환자가 보고된 후 3주 동안 천여 명이 독감에 걸렸고 38명이 죽었다. 스페인 독감은 사토카인 폭풍을 촉발시켰다. 이는 많은 면역 세포가 감염 부위에 몰려들어 주변에 염증을 유발하는 증상이다. 


군인들을 죽이는 이상한 신종 질병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기자들은 보고하지 않았다. 1917년 미국은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고, 정부는 전시 사기 진작을 위한 법을 통과시켰다. 

'미국 정부에 관한 불충 하거나 모독적이거나 악의적이거나 독설적인 표현을 발언, 인쇄, 집필 혹은 출판하면' 20년 동안 수감될 수 있었다. 연방 법원은 ‘사회에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될 만한 것을 말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따라서 북적이는 극장에서 “불이야” 외치거나 무서운 질병이 퍼지고 있어도 “정부는 대책이 없다”라고 말해서는 안 되었다. 기자들은 감옥에 가기 싫었다. 


미국에 유리한 기사만을 보도하는 보도국이 신설되었다. 정부는 국민을 어린이로 간주했다. 영국은 더 엄격했다. 국토방위법을 위반하면 처형될 수 있었다. 그 사이 스페인 독감은 급속히 퍼졌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중립국이었던 스페인은 미국 영국과 달리 보도 검열에 자유로웠다. 

1918년 5월 스페인의 신문들은 일제히 신종 질병에 대한 기사를 내보냈다. 축제를 지낸 5월 말 국왕을 비롯한 800만 명이 감염되었다. 7월에는 런던으로 퍼져 첫 주에 287명이 죽었다. 영국의 신문들은 이를 단순히 전쟁 피로, 재채기라고 보도했다. 인도와 북 아프리카에서도 환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가을에 2차 확산이 일어나자, 더 많은 미군이 필요해졌다. 몇몇 부대에서는 80퍼센트의 군인이 스페인 독감으로 죽었기 때문이다. 10월에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아무런 죄의식 없이 (인플루엔자에 대한 농담을 하면서) 죽을 가능성이 가장 큰 연령대의 군인 25만 명을 파병했다. 그는 모든 미국인은 평등하지 않다는 믿음을 근거로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려 했다. 4만 명의 미군이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다. 베트남전에서 전사한 미군이 4만 7천 명이었다. 해군은 전염병을 은폐하기 위해 군인들에게 집에 편지를 보내 ‘질병 확산 이야기는 걱정할 것 없다’고 전하라고 지시했다. 


9월 초, 당시 가장 붐비는 도시였던 필라델피아에 유행이 시작되었다. 보름 만에 600명의 군인이 입원했다. 당국은 이를 은폐하고 위협을 경시했다. 의사 하워드 앤더스가 9월 28일 열리는 퍼레이드의 위험성을 알려 달라고 기자들에게 간청했다. 사기 저하를 우려한 신문은 이를 거부했다. 

그는 수천 명이 인플루엔자에 걸릴 것이라고 확신했고 이는 맞았다. 10월에만 만 천 명이 죽었다. 치사율이 15퍼센트에서 40퍼센트로 치쏟았다. 마차가 거리를 누비며 썩어가는 시체를 수거했다. 관이 모자라 아이들의 시체는 마카로니 상자에 담아야 했다. 이 무렵 뉴욕에서 두 달간 3만 명이 사망했다. 





10월 한 달 19만 5천 명,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죽었다.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었지만, 사람들은 예방책으로서의 가치에 의구심을 가졌다. 11월에 사람들은 질병과 싸우기를 포기한 듯 보였다. 유행이 가속화된다면 문명은 지구 상에서 사라질 거라 말하는 이도 있었는데, 그 무렵 기적적으로 유행이 멈췄다. 보편적인 설은 숙주가 너무 많이 죽어서다. 다음 해 3차 확산이, 1920년에 주기적으로 유행이 왔지만 치명적인 시기는 지나갔다. 스페인 독감으로 2500만 명에서 1억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 미국인만 67만 5천 명이 죽었다. 4년 동안 지속된 남북 전쟁의 사망 자수보다 많았다. 


존 베리는 『지독한 인플루엔자』에서 이렇게  말한다. 

“당국은 대중의 신뢰를 유지해야 한다. 그 방법은 아무것도 왜곡하지 않고 숨기지 않고 누군가를 조종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리더십을 발휘해 어떤 공포든 그 존재를 구체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공포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p233,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


#세계사를바꾼전염병13가지, 제니퍼 라이트, 이규원 옮김, 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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