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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Oct 08. 2021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7)

기면성 뇌염, 전두엽 절제술


기면성 뇌염


기면성 뇌염은 졸음 뇌염이라고도 불린다. 1915년부터 1926년까지 10년간 맹위를 떨친 이 병은 스페인 독감과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였다. 100만 명이 걸려 50만 명 이상이 죽었다. 


1917년 빈에 살던 과학자 콘스탄틴 폰 에코노모는 클리닉에서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식사 도중, 혹은 의사와 상담 중에 잠이 들었다. 깨우면 잠시 찡그리다가 다시 잠에 빠져 들었다. 

그가 연구한 열한 명 중 네 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회복한 듯 보였다. 하지만 그들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온순했던 아이들은 성인이 된 후 범죄자로 변했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이들은 사이코패스와 달리 자신의 충동을 무서워했다. 자신을 가둬달라고 요청해 대부분 보호시설이나 감옥에서 여생을 마쳤다. 성인의 경우에는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해 자활이 불가능했다. 환자들은 시설에서 보살핌을 받았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백설공주 같은 민담에서 이 병의 흔적을 찾기도 한다. 


폰 에코노모에게는 다행히 현미경이 있었다. 그는 사망한 환자의 뇌막 샘플에서 세균을 발견했다. 원숭이의 뇌에 세균을 주입하니 질병이 전염되었다. 그는 환자의 뇌가 손상된 부위, 시상하부가 수면을 조절한다는 걸 추정했다. 70년 후 그 가설이 증명되었다. 

뉴욕에서 한 신경과 의사가 10대 소녀의 가족을 만났다. 소녀는 두 달 동안 계속 잠들어 있었다. 의사가 아무런 방법이 없다고 말하자 소녀가 울기 시작했다. 백신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1927년 위원회가 발족했지만 1942년 자금 부족으로 종료되었다. 


“우리가 암흑 속에서 더듬고 있는 것이 다음 세대에는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A.J. 홀이 한탄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집필한 올리버 색스는 『깨어남』에서 기면성 뇌염을 앓고 있는 환자를 깨운 이야기를 한다. 이 일을 색스는 ‘인생에서 가장 뜻깊고 놀라운 사건’이라 회상했다. 

1969년 항 파킨슨병 약물의 대량 투여를 시험했더니, 몇 년 동안 반응이 없던 환자들이 친척의 방문 같은 외부의 자극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깨어난 환자의 대부분이 3,40년 전의 20대로 자신을 기억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약의 효과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환자들은 다시 잠들었다. 그들은 깨어있었던 하루, 며칠을 기뻐했다. 『깨어남』을 원작으로 로버트 드 니로,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 ‘사랑의 기적 Awakenings (1990)’이 만들어졌다. 


기적은 일어났지만... < 사랑의 기적>


기면성 뇌염의 치료법은 아직 없고 그 발생과 소멸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스페인 독감의 바이러스가 부적절한 면역 반응을 유발했다는 가설도 있다. 






인간의 어리석음이 낳은 역병, 전두엽 절제술.


20세기, 의학이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면서 환자의 안녕보다 자신의 명성을 중요시하는 선동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의학은 부도덕한 인간이 환자를 죽이지 않고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힐 수 있는 지점에까지 도달했다. 치료법이 없는 데 있다고 주장하는 사기꾼은 늘 있어 왔다.


1935년 최초의 전두엽 절제술이 포르투갈의 신경과 의사 안토니우 에가스 모니스에 의해 실시되었다. 인지 능력을 담당하는 전두엽과 뇌의 나머지 부분을 단절시키는 위험하고 비인간적인 수술인데, 발작을 일으키거나 폭력적인 환자가 수술 후 얌전해진다고 알려졌다.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 <한니발>에 이런 장면들이 나온다.


당시만 해도 정신 질환에 대한 제대로 된 치료법이 없었기에 전두엽 절제술은 최고의 치료법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우울증 환자들은 수술 후 불안에서 해방되었다. 하지만 잡지를 넘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여동생인 로즈메리 케네디는 출생 때의 의료 사고로 다른 형제들보다 조금 뒤처져 있었다. 그녀가 23세였던 1941년 아버지는 혹시 집안의 명예에 해를 입할 까 봐 그녀에게 전두엽 절제술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수술 후 그녀는 걷거나 말하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0년대 후반, 미국은 정신적 고통을 앓는 이들이 많았다. 약물 요법이 등장하기 전이라 환자를 가두어 놓거나, 전기충격 요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내과 의사인 프리먼과 동료 와츠는 더 짧은 시간에 수술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수술은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1949년 그들은 수술도구를 차에 싣고 다니며 5주간 8개 주를 다니며 수술을 111차례 실시했다. 그들은 쇼맨이었다. 사람들은 수술을 받으려고 줄을 섰다. 하루에 거의 2건씩 수술을 했다. 1947년부터 1950년까지 1464명의 재향군인이 전두엽 절제술을 받았다. 프리먼은 언론을 다루는데 선수였다. 


모니스는 이 수술의 업적으로 1949년 노벨 생리 의학상을 받았다. 그 여파로 같은 해 미국에선 5천 건의 수술이 실시되었다. 1960년에는 심지어 열두 살 아이도 계모에게 끌려왔다. 밤에 잠을 잘 안 잔다는 이유로.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총 약 4만 건의 수술이 실시되었고 그중 프리먼 혼자 한 수술이 3500건이었다. 프리먼은 1967년에 한 환자에게 세 번 수술을 실시해 그를 죽게 한 이유로 의사 면허가 취소되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기 중 하나였다.


점차 수술의 부작용에 대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1950년 소련은 이 수술이 인도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금지했다. 수술의 인기가 사라지게 된 계기는 1955년 토리진 같은 향정신성 의약품이 개발되었기 때문이었다.


#세계사를바꾼전염병13가지, 제니퍼 라이트, 이규원 옮김, 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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