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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Oct 26. 2021

등 떠밀려 주주가 된 남편

어울려서 잘 놀기


-그 사람 요즘 어때? 잘 다녀?

-아니, 나갔어. 그만뒀지.


남편과 내가 말하는 ‘다니는 곳’은 회사가 아니라 색소폰 동아리다.


6개월 전 남편은 이사회의 요청에 의해 색소폰 동아리의 주주가 되었다.

이 동아리는 10년 전 열 명의 주주에 의해 창설되었다. 장소는 아파트 건너편 세탁소 이층이다. 열 명의 주주는 거금 40만 원씩을 내어 내부 인테리어를 했다. 소음 공해의 우려가 있기에 내부에 방음 장치를 하고 여섯 개의 독립된 룸을 만들었다.


평온한 나날이 이어지던 5년 전, 어디나 마찬가지인 내분이 일어났다. 인간관계가 금이 가기 시작하는 걸 나는 3년이라고 본다. 그 정도 시간이 지나면 서로의 속내가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모두 상대에게 좋은 면만 보이려 노력한다. 경계해야 할 시기가 이 무렵이다. 적당히 편안해져서 더 이상 관계에 노력하지 않게 될 때 진면목이 드러난다.


다섯 명의 주주가 동아리를 탈퇴했다. 당연히 그들은 투자 금액을 찾아갈 수 없었다. 주주에겐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다. 일반 회원과 같이 매달 회비 5만 원을 내고 룸을 쓸 수 있을 뿐이다. 시설 투자로 들어간 돈은 사라지고 없으니 내놓으라 할 도 없었다.


회원이 확연히 줄자 주주들은 회원 배가 운동을 시작했고, 남편이 그 그물에 걸려들었다. 악기 하나 정도는 연주할 수 있어야지. 그들의 꼬드김에 남편은 소폰을 배우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남편은 오전, 오후 번갈아가며 동아리 방을 드나들었다. 열심히 연습한 덕분에 부는 모습은 어색하지만 연주는 들을만해졌다. 5년간 동아리 회원은 다시 열 명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동아리 방에 돈 들어갈 일이 생겼다. 전기 공사를 하거나 자잘한 수선을 해야 했다. 걷은 회비는 월세로 나가니, 수선충당금이 필요하게 된 거다.


주주들 눈에 두 남자가 들어왔다. 남편과 우리의 대화에 오른 남자. 그를 A로 지칭하기로 한다. 주주들은 회의를 했다. “두 사람에게 주주로 들어오라고 말해보자.”

다시 말하자면 주주는 목돈 40만 원을 낼 의무가 있고 권리는 일반 회원과 같다. 게다가 건물주가 철수하라는 통고를 면 철거비까지 책임져야 한다. 주주가 되어달라는 말에 남편은 고민했다. 어떻게 할까? 우리는 의논 끝에 주주가 되기로 했다. 그간 많이 사용했고, 앞으로도 타 회원보다 비중 있게 쓸 터이니. 그리고 얼마 후 A가 주주가 되기를 거부했다는 말을 들었다.

A는 주주가 되는 대신 회비를 두 배인 10만 원을 내겠다고 제안했다. 주주들은 회의 끝에 A의 제안을 거부했다. 추가로 5만 원을 내면 8개월 후 주주 비용을 상회할 것이고, 계속 수입이 늘 터이니 그리 나쁜 제안은 아닌 것 같았는데, 주주들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회원이 늘자 룸이 부족해졌다. 룸 사용에 대한 규칙이 없어서 어쩌다 사람이 몰리는 날엔 룸이 없어서 헛걸음하는 사람도 생겼다. 남편은 주말에 이용했지만 A는 매일 나왔고 그러다 보니 A가 룸 하나를 용하게 되었다. 짐작해보면 A는 자리를 비울 때도 악기를 정리하지 않고 사용했으니, 회원들은 불만스러웠는지 모른다. 주주들은 수익보다 회원들에 대한 배려를 택했던 것 같다.


남편의 색소폰 동아리 가입은 좋은 선택이었다. 권유한 이의 말에 ‘한 번 해 볼까?’ 시도한 건 퇴직을 앞둔 시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 감염 시기에는 악기 연주가 좋은 에너지를 불어넣어 줬다.

동아리 회원들은 어떤 의미에서 모두 남편의 선배이다. ‘퇴직’이란 인생의 큰 변화를 먼저 맞이한 선배. 이따금 남편이 그들이 한 말을 내게 옮기기도 했다. 교통카드 없이 지하철 타는 법, 운전을 못하게 될 때 버스 타고 다니면 좋은 점 같은 것들.


-퇴직? 당해 봐. 그거 이혼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여.

그들이 남편에게 겁을 주기도 했다.


매번 사람 많은 시간을 피해 다니던 남편이 추석 때 동아리 방에 가더니 금방 돌아왔다. 아무도 없으니 너무 심심하다며. 사람이 그런 존재인지 모른다. 지지고 볶는 게 싫다 하면서도 어울려 살아야 행복한 존재.


한 달 전에 남편 대부님을 만났더니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은퇴한 지 5년, 대학에서 그나마 내주던 작은 사무실이 그예 문을 닫았다. 갈 곳이 없었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이공계 대학에서 몇십 년간 후진을 양성했던 고급 인력인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6개월 전 퇴직한 남편을 물었다. 그는 세계사를 전공한 인문학 자이다.

-매일 집에 있지. 책 읽고 영화 보며.

친구는 남편이 공부한 지식이 아깝다 했다.


그날, 친구와 나는 여러 상상을 했다. 꿈을 꿨다. 유튜브 방송은 어때? 예전 같으면 문화센터의 인문학 강의도 괜찮았는데. 유럽 역사 전공이니, 한 나라씩 천천히 훑어도 좋지 않을까? 외출 싫어하니 집에서 유튜브로 방송하는 거야. 연습해 보렴.


건강할 때, 퇴직하기 전에 미리미리 어디서 무엇을 하며 노년을 살 것인가, 어떻게 사람들과 어울릴 것인가, 고민해 보는 것도 좋겠다.


-노는 거 힘든 거여. 아무나 못해.

다들 이런 말을 한다.  


어느 유명한 요리사가 한 말이 떠오른다.

"사람들이 식당을 가는 이유는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한 것도 있지만,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혼자 살게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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