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토란이 맛있는 계절이다. 토란만 그럴까. 어제 식당에서 내놓은 우엉조림에도 친구들 젓가락이 분주히 오갔다. 풋고추 넣고 연하게 조린 우엉은 간이 슴슴했다. 오물오물 먹으며 나는 여기에 무엇이 들어갔을까 상상했다. 들기름, 맛간장, 다시마...
추운 계절이 다가오면 뿌리채소들은 얼른 캐가라고 한껏 맛을 끌어올리는지 모른다.
어릴 적에 토란을 먹은 기억이 없다.
아들이 중학교 다닐 무렵 이웃에 살던 과외 선생 집에 잠깐 들른 적이 있는데, 그 집에서 토란국을 처음 먹었다. 그녀는 너무 맛있게 됐다며 꾸역꾸역 토란국을 한 그릇 내놓았다. 식사 시간도 아니었는데. 쇠고기와 무, 도톰하게 썬 토란이 들어간 국을 그때 처음 먹었다. 다음 장날에 나는 토란을 사러 갔다. 나도 끓여보리라.
토란을 물로 씻은 후 감자 채칼로 껍질을 벗겼다. 상황을 짐작하는 이는 부엌살림을 좀 아는 이라고 인정하겠다. 팔 전체에 독이 올라서 며칠을 엄청 고생했다. 벗기는 도중에 조짐이 보여서 고무장갑을 끼고 했는데도 마찬가지였다. 독성이 있다는 걸 어찌 알았겠는가. 다음에 유심히 살펴보니 난전 아주머니들은 맨손으로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물어보니, 토란에 물만 닿지 않으면 상관없다고 했다. 물이 잠자는 독을 깨우는 건가? 활성화시키는 모양이었다.
중국에 갔을 때 아침식사로 삶은 토란이 나온 적이 있었다. 다들 이게 뭘까? 궁금해했는데 나는 단박에 알아봤다. 삶은 토란은 밤 같았다. 무미하면서 푸근한 맛. 고요한 땅 속 같은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