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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Jul 11. 2020

자두나무

나무는 다 생각이 있었다.



대석, 후무사, 피자두, 추희….


자두 철이다. 6월이면 빨갛고 탱글탱글한 자두가 시장에 쏟아져 나온다.

바라보기만 해도 혀에 신물이 고이는 자두를 나는 이미 한 달 전부터 여러 개 봤다. 물론 크기는 작고 벌레 먹거나 무슨 이유에선지 나무가 일찌감치 손을 털어버린 열매다.

이맘때 산책로에는 곳곳에 붉은 물이 번지고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자두를 쪼아 먹던 어치가 발소리에 놀라 포르르 날아간다.





자두나무가 처음으로 자기의 존재를 알리는 시기는 4월이다. 겨우내 마른 가지에 연두 물이 차오르고 하얀 꽃이 핀다.

정원의 매화, 목련,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벚나무가 묵직하게 분홍 가지를 늘어뜨리면 봄은 절정에 이른다.


아파트의 산책로에 자두나무 일곱 그루가 나란히 서 있는 길이 있다. 곳곳에 눈길을 끄는 나무들이 많이 있지만 -고목 같은 둥치를 자랑하는 매화나무, 늘씬한 키를 뽐내는 메타세쿼이아, 찡한 향기를 내뿜는 라일락 –나는 이 자두나무들을 가장 멋지게 여긴다.


특이하게도 사천 세대가 넘는 아파트 단지의 정원에 이곳에만 자두나무가 있었다. 소나무, 단풍나무를 지나 구비진 길에 자두나무가 모여있다. 담벼락에서 채 일 미터도 떨어지지 않게 세 그루가, 길 가에 네 그루가 어슷하게 서 있다.

나는 마음이 어수선하거나 무거울 때면 이 길을 걷는다. ‘숲은 최초의 사원’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변함없이 한 자리에 꿋꿋이 서 있는 나무를 보면 걱정, 근심이 하찮고 보잘것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마음을 누르던 돌이 어느 틈에 사라지고 없다. 걷다 보면 독일가문비나무가 검은 커튼 같은 잎으로 자두나무 길이 끝났다고 알린다.


처음 이 길을 지나다닐 때는 나무도 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언제부터 나무를 바라봤을까? 꽃에 시선이 머물기 시작한 건 어느 때부터일까?


어느 날 나무는 연둣빛 새순 뒤에 고슬고슬한 꽃을 매단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겨우내 훌쩍 자란 나무는 아파트 2층까지 닿아 있었다. 꽃은 푸르게도 노랗게도 보였다.





자두꽃은 목련처럼 크고 우아하지도, 복사꽃처럼 화려하지도, 순식간에 활짝 펴서 정신을 빼앗는 벚꽃 같지도 않다. 자두 꽃은 눈여겨보지 않으면 피는 줄도 모르게 피었다 잎 속으로 스며들듯 사라진다. 땅에 떨어진 꽃잎은 작아서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사스니, 메르스니 할 때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먼 나라 이야기였다.

바이러스가 대구에 퍼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남의 일이었다. 조카가 열이 나서 자가 격리에 들어가고 공무원인 남편이 역에서 통행인의 열을 체크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제야 바이러스 감염이 내 가족, 내 일이 되었다. 타인의 고통은 어쩌면 그렇게 더디게 다가오는 걸까.


작년에 나는 홍콩으로, 이태리로, 남미로 여행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남편이 은퇴하면 일 년에 한 번은 꼭 외국 여행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해가 넘어가 봄이 되고 여름이 와도 바이러스 감염은 끝나지 않았다. 여행은 고사하고 몇 달째 나는 집에만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이러스는 변종이 나오고 계속 번져만 간다. 일 년 후, 이년 후 일어날 일을 아는 이가 없다. 아니 당장 내일 일도 모른다. 앞으로 우리는 어떤 세상을 맞게 될까?


반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산업과 문화, 사회의 질서와 가치가 급격히 바뀌고 있다. 

우리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바뀐 시대에 적응할 수 있을까?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


『면역에 관하여』에서 율라 비스는 "우리가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을 통제할 순 없지만 그 일에 대한 감정은 통제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바깥으로 향하던 시선이 내면을 향할 수 있다면, 혼자여도 충만한 삶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지 않을까.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게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라 한다. 그러고 보면 한 곳에 뿌리내리고 있는 나무가 부럽기까지 하다.


자두나무는 빛을 받으려고 산책로 쪽으로 가지를 뻗었다. 자두 꽃 아래를 걸으며 나뭇잎 틈으로 스며드는 햇살을 바라보노라면 찬탄이 절로 우러나온다. 행복이 그리 거창한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하얗고 노란 꽃을, 반짝이는 새순을 바라보는 게 행복이다. 떨어져 있는 자두를 몇 알 주웠다. 집에 와서 잘라보니 겉은 멀쩡했지만, 속이 성한 열매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무가 열매를 미리 떨어트릴 때는 다 생각이 있었다.

우리에게는 낯선 봄이지만, 나무에게는 한결같은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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