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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Jul 16. 2020

시간의 강을 건너며

엑서터, 산티아고에서 친구들은 원하는 걸 얻었을까?


“나, 엑서터에 와 있어.”


이른 아침 친구 남희가 서클 밴드에 글을 올렸다.


나에게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만나는 친구들이 있다. 남녀 합해서 열 명 정도인데 대학 다닐 때 서클이 계기가 되어 만난 친구들이다. 제법 거창한 이름을 가진 학술토론 서클이었는데 은근히 중독성이 있어서 강의는 빼먹어도 서클 집회를 빠지면 큰일 나는 줄 알 정도였다. 구성원이 다양해, 사범대, 인문대, 자연대, 공대, 의대생이 섞여 있었다. 같이 어울려 등산도 다니며 즐겁게 지냈는데, 결혼 후 소식이 끊어졌다.

밤늦게 전화를 받았을 때는 얼마나 반가웠던지. 다음 날 서울의 한 식당에서 삼십 년 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식당을 찾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머리 희끗한 남자가 걸어왔다. 나는 알아볼 수 있었다. 어떤 시간은 흐르지 않고 고여있는 법이다.

이름을 불렀더니, 그들은 너무 오랜만이라 존댓말을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순식간에 벽이 허물어졌다고 했다.


"어떻게 너희들을 존대하니?" 

웃었지만, 사실 옛적의 나는 지나가던 남학생이 말 한마디 걸면 사귀자는 줄 알고 얼음이 되는 숙맥이었다.


나이가 쉰 초반인 그들은 대부분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 있었다. 그들과 서울, 대구, 대전에서 일 년에 한 번 정도 만났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대부분 퇴직했거나 직장에서 한직으로 밀려났다.




남희는 몇 년 전 모임에서 경수 딸이 영국 옥스퍼드 엑서터 칼리지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말을 듣자 자기도 거기 다니고 싶다고 했다. 모두 왁자하니 웃었고, 얼마 후 남희는 병에 걸렸다. 지난번 만났을 때 남희는 통통하던 얼굴이 반쪽이 되어 나타났다. 수술을 받았고 항암 치료를 마쳤다 했다. 그런데 지금 엑서터에 있다니⋯.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려고."


남희는 주변에서 말릴까 봐 정기 검진 전에 비행기 표부터  끊어놨다고 했다.


인수가 “아모르파티!”를 외쳤다.


“그래, 이제는 우리에게 뭔가를 선물해야 할 나이야.”


아래에 혜영이 댓글을 달았다.

“남편이 퇴직했어. 우린 다음 주에 스페인 산티아고에 갈 거야. 그동안 꿈에 그리던 도보여행을 하려고 해. 미루면 내년에는 못 가게 될까 봐 용기를 냈어.”

 




나는 가슴이 떨렸다. 마치 내가 엑서터에 가 있는 듯, 내가 산티아고를 가려고 배낭을 꾸리는 것 같았다. 다들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 내년에 뭐가 달라지는데. 넘지 못할 강이라도 건너는 거니?

사실 우린 자고 나면 허리가 아프고 무릎 관절이 쑤시는 나이다. 그런 나이로 보이지 않는다고 서로 추켜세우지만, 이미 속은 시원찮다. 그러니 나이의 앞 숫자가 달라지는 내년에 모험을 시작하는 건 부담되는 일 아니었을. 


우리는 마음이 있어도 몸이 따라오지 못하는 시간의 강을 건너고 있었다.


부러워진 마음에 나는 손자를 돌보고 있고, 나름 즐거움을 찾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사실 별로 내세울 것도 자랑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친구들은 나를 격려했다. 그야말로 소확행 이라며⋯.


저녁에 부엌에서 아기 먹일 죽을 저으면서 나는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해 본 게 없었다. 대학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 핑계를 대지만, 사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몰랐다.


엑서터, 산티아고에서 친구들은 원하는 걸 얻었을까?


남희는 수술 후 상상했던 것보다 기억력이 나빠져 꿈꿨던 엑스터 대학 언어 연수원엔 못 들어갔다. 하지만 코츠월드에 서너 달 기한으로 작은 집을 얻고, 사설 어학 연수원에 등록했다. 30대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는 사진들이 블로그에 올라왔다. 가기 전엔 벌벌 떨었는데, 나이 먹은 내공 탓인지 잘 버티고 있다고 했다.


혜영은 산티아고 출발 전에는 체력과 능력에 대해 실의에 빠져 있었는데, 하루하루 몸을 괴롭히면서 많은 것을 내려놓고 되찾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 나이는 무엇이든 도전하고 시작하기에 딱 적당한 시간이야!"

친구들은 두 번째 인생을 잘 맞이하고 있었다.


일 년 만에 인수를 서울에서 만났을 때, 그는 육 개월 전 심장마비로 쓰러져 며칠 만에 깨어났다 했다. 그는 승용차를 버리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녔고, 소장하고 있던 수천 권의 책은 대학 도서관으로 보냈다. 얼굴이 맑아 보였다.


인수가 동창 밴드에 루미의 시를 소개했다.

나는 그때까지 이슬람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기에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루미를 계기로 나는 이슬람의 다른 시인들, 사디와 하페즈시도 찾아보게 되었다.



13세기 이슬람 시인, 잘랄 알 딘 알 루미(1207-1273)의 시 ‘봄의 과수원으로 오세요’를 소개한다.


봄의 과수원으로 오세요.
꽃과 술과 촛불이 있어요.
당신이 안 오시면
이것들이 무슨 소용 있겠어요.
당신이 오신다면 또한
이 모든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나는 시간의 강을 건너도 함께 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 서로 나눌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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