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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Jul 20. 2020

부부, 함께 걷는 사이

가깝거나 멀거나



 남편과 아내의 마음을 비교해 놓은 만평을 신문에서 읽었다.


아내의 마음에 들어있는 것은 아이들, 명품 가방, 돈, 여행, 친구, 좋은 옷. 남편의 마음에 들어있는 것은 아내, 마누라, 여편네….

아내의 마음 어느 한구석에도 자기는 없다는 남편의 자조적인 불평이었다. 과장되긴 했지만, 은퇴 후 집에 있으며 여전히 바쁘게 생활하는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오늘은 그녀를 두 번 봤다. 오전, 오후 산책로에서. 그녀는 오늘 이 길을 몇 번 다녔을까? 개도 한 마리 있었는데, 골든 레트리버 종으로 장애인 보호견이다. 덩치 큰 개를 그녀는 버거워했다. 끈을 꽉 움켜쥔 채 끌려가다시피 하며 여자는 남편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오, 육십 대 나이에 염색 안 한 하얀 커트 머리를 한 여자는 미모에 자신이 있거나, 속이 꽉 차 있거나, 남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을 만큼 무심하거나 셋 중의 하나일 테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그녀는 날씬하고 지적으로 보였다. 이사 온 옆집이라고 인사를 하자, 마지못해 고개를 숙였지만 웃지는 않았다. 그녀의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부부는 지나치게 덤덤해서 어느 순간부터 우리도 하는 둥 마는 둥 목례로 그들을 대하게 되었다. 부부는 서로 말도 잘 주고받지  않는 것 같았다. 차가웠다.


   년을 이웃으로 살았을까. 어느 날 옆집 문이 활짝 열려 있어 들여다보니 주인이 바뀌어 있었다. 며칠 후 그녀가 다시 보였는데, 알고 보니 이사 간 곳은 아파트 옆 동이었다. 그리고  년 정도 지나, 산책로에서 그들을 다시 만났다. 부부는 옷차림도, 자세도, 분위기도 전과 달랐다.

  뇌졸중이 온 것 같았다. 남자는 지팡이를 잡고 주춤주춤 발을 힘들게 옮겼고, 여자는  남편을 부축하며 쉼 없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부부는 바짝 붙어서 걷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과 남편의 등이 닿을 정도로 가깝게. 거의 뒤에서 밀듯.

고개를 돌리지 못하는 남편의 말을, 의사 표시를 여자가 알아 들으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요즈음.

그들은 떨어져 각자 걷는다. 남자는 엉거주춤 걷지만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지난밤에는 책을 읽다가 갑자기 잠이 쏟아졌다. 얼른 책을 덮고 잠을 청했는데 차츰 정신이 말똥말똥해졌다.

 낮에 친구 어머니의 임종 장면을 들었던 탓인지 별 생각이 다 났다. 남편과 나, 누가 더 오래 살까. 배우자의 임종을 맞으면 어떻게 될까.


며칠 전 일본 영화를 한 편 봤다. 죽음을 앞둔 젊은 엄마는 유치원 다니는 어린 딸에게 된장국 끓이는 법을 가르친다. 된장국만 끓일 줄 알면 굶지는 않는다고. 나는 딸이 안쓰러웠다. 차라리 남편을 가르치지. 일본 문화라 그런 걸까?


  결혼한 지 삼십 년이 훌쩍 지났다. 사이좋을 때는 ‘이만한 남자 없지’ 하다가 좋지 않을 때는 ‘뭐 이런 남자가 다 있나’ 하며 살았다. 오르막 내리막을 걷듯 관계는 쿨렁거렸다. 아이들을 키울 때는 괜찮았다. 각자 맡은 역할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아이들이 자라서 집을 떠나고 주위가 적막해지자 다시 갈등이 도드라졌다. 남편과 나는 성격, 자라온 환경이 너무 다르다. 그러기에 서로의 장점을 알고 인정하지만, 단점도 그만큼 잘 보인다. 제발 좀 고치라고 잔소리 하지만 내가 고칠 수 없는 만큼 남편도 그렇다는 걸 안다. 오래 살다 보니 남편이 거울 앞의 ‘나’ 같을 때도 있다.


  남편은 손빨래와 청소를 잘한다. 다림질은 아예 남편이 담당이다. 하지만 남편은 음식 만드는 것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남편은 당면과 국수를 구별 못하고, 냉장고에 넣어둔 음식이 익힌 것인지, 날 것인지도 잘 모른다. 가끔 상한 음식도 구별 못하니 걱정이지만, 이건 내 기우일 것 같다.

막상 닥치면 밥 한 솥에 된장국 한 냄비 끓여놓고  살지 모른다. 어쩌면 우렁각시 한 명 데려다 부엌일 시키고 “진정한 행복을 이제야 찾았다.”웃을누가 알겠어.

어느 스웨덴 작가는 아흔 넘은 아버지가 비서와 동거를 시작한 지 칠 년 되었는데 평생 가장 행복해한다고  말했다. 우리 남편이라고 별 다를까 싶다.





   유난히 사이좋아 보였던 젊은 부부의 갑작스러운 사별 소식을 들었다. 믿기지 않아 이게 꿈인가 했다. 그녀의 고통을 어떻게 짐작할 수 있을까. 우울증, 공황장애, 온갖 약을 먹으며 버티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그러던 그녀가 얼마 지나지 않아, 채 일 년도 되지 않아 새 배우자를 맞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간은 고무줄 같이 늘어나기도 줄어들기도 한다. 행복한 시간의 길이와 고통스러운 시간의 길이는 같지 않다. 타인에게는 짧은 시간이지만 본인에게는 무척 긴 시간일 수도 있겠다. 옆의 빈자리를 견딜 수 없었던 건 유달리 애정이 깊어서일지 모른다. 혼자 지내기 힘들었으리라.


  “어떻게 그렇게 안 싸우고 걷니?”

  저녁마다 남편과 사이좋게 걷는 친구에게 비결을 물었다. 친구는 나란히 옆에 서서 걸으면 쳐다볼 필요가 없어서 싸울 일이 없다고 했다.


부부는 평생을 함께 걷는 사이다. 서로 마주 보기보다는 한 방향을 바라보며 걷는 사이. 부부는 아프고 힘들면 가까워지고, 편안하고 무탈하면 멀어지는 이상한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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