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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y 09. 2020

브런치, 나의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어느 길로든 광장에 도달할 수 있다.


 


글을 모아 책을 한 권 만들겠다고 결심한 게 작년 봄이다. 저장해 놓은 글들을 다시 들여다볼 때마다 고쳐야 할 것이 눈에 띄었다. 퇴고를 거듭하다 보니 지쳤다. 책으로 엮고 나면 이제 그만, 덮고 새로운 글을 쓸 수 있을지 몰랐다. 글쓰기의  시기가 정리될 것도 같았다.


하지만 해를 넘기고 다섯 달이 지나도 나는 책을 완성하지 못했다.




게을러서도 아니다. 사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집에만 있었던 지난 두 달은 더 열심히 책을 만들려 노력했다. 그런데 출판사로 넘기기 전, 내 발목을 잡는 게 있었다.


작년 가을 친구들을 만났을 때 나는 책을 만들려 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 책 나오면 꼭 한 권 줘야 해.”

다정하게 말한 친구도 있었지만, 지나칠 만큼 솔직한 친구도 있었다.

 “시답잖은 책 뭐 하러 만들려 하니? 널린 게 책인데.”

 

친구 말이 맞았다.

 

그게 작년부터 차일피일 미룬 이유였고, 올해 계속 원고를 만지작거리면서 출판사로 넘기지 못한 이유였다. 그러던 중 브런치 작가를 대상으로  EBS 공모전이 있다는 기사를 봤다. 글공부하는 친구에게 권하기도 했다. 계속 집에서 글을 퇴고하다 보니 브런치에 궁금증이 생겼다. 이따금 들어가 읽었더니 문자로 글이 날아왔다.


지난 주말 아들이 휴가차 집에 왔다. 책 편집한 것을 보여줬더니, 아들은 이참에  브런치 작가에 도전해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책을 만들어 읽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보다는 누군가 한 명이라도 읽는 글을 쓰는 게 좋지 않겠어요?”


난,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알았다. 지인들이 준 시집과 수필집을 다시 펼쳐봤다. 그중 몇 권이나 제대로 읽었을까?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하고 그동안 써놓은 글 두 편을 올렸다. ‘자기소개’는 쓰기가 힘들었다. 누구에게 나를 알린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앞으로 쓸 글에 대한 목록은 만들려던 책의 차례를 그대로 넣었다.


“될 것 같은데요.”

“그럴까?”


그리고 오늘 축하 메일을 받았다.


솔직하게 말해 준 친구 덕분이기도 하고, 두 달간 글을 붙들고 씨름하게 한 코로나 바이러스 덕분이기도 하고, 도전할 용기를 준 아들 덕분이기도 하다.


그동안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소신이 뚜렷하다는 평을 받았다. 뒤집어 보면 고집 세고 완고하다는 흉이다.


“eBook은 어딘지 집중이 되지 않아. 글은 종이책으로만 읽어야 해.”

말하고 다니던 내가 이제 웹에 글을 올리게 됐다. 




유럽 여행을 가면 도시 중심에 광장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산타마리아 대성당 앞의 광장은 사방으로 뻗은 골목이 여섯 개다. 광장은 각 골목을 연결하는 뼈의 관절 같았다. 사람들은 어느 길로든 광장에 도달할 수 있다. 광장에서 사방을 바라보면 각 골목에서 광장을 향해 걸어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제는 글도 한 방향의 통로만 있는 게 아니게 됐다. 저자는 좀 더 쉽게 발표할 기회를 가지고, 독자는 좀 더 쉽게 글을 접할 수 있다. 시, 수필,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길을 걸어서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은 저서 《티핑포인트》에서 신발 브랜드 ‘허시파피’를 예로 들었다.

별로 인기 없던 허쉬파피 신발을 뉴욕의 청년들이 신기 시작했다. 그걸 지켜본 유명 디자이너들은 허시파피를 패션쇼에서 부각했다. 톰 행크스는 영화〈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 1994)〉에서 허쉬파피를 신었다. 이듬해 허쉬파피의 매출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뉴욕의 청년들이 허시파피를 신은 순간이 매상 증가의 티핑 포인트가 되었다지 않은가.


티핑 포인트는 단어 그대로 풀이하면 ‘갑자기 뒤집히는 점’으로, 엄청난 변화가 작은 일에서 시작되어 확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코로나 사태는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집에만 있었던 두 달이 나의 생각을 바꾸었다. 굳은 사고가  말랑말랑해지니 시야도 조금 넓어졌다. 망설이며 손에 쥐고 있던 걸 내려놓으니 다른 게 보였다.


 나는 글을 발표할 다른 통로로 발을 내밀었고, 생각을 쏟아낼 공간, 브런치를 얻었다. 브런치는 내   글쓰기의 티핑 포인트가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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