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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y 08. 2020

실버타운

“우리 집에 옵소게.” 한 마디만 하면 될 것을.



“여보게, 있는가!”

꼿꼿하다. 늦은 밤, 낯선 집을 들어서는데도 당당하다.


묘를 이장하느라 동원된 트랙터가 남의 무밭을 뭉갰다. 주인에게 알려야 한다며 아버님은 저녁 늦게 부득부득 집을 나섰다.


“내일 고쳐줌수다. 걱정 말게, 원래대로 해놓구다.”

“전화하면 될 걸, 괜한 걸음 했수다.”

아버님의 말에 주인은 머리를 긁으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불빛 하나 없이 캄캄했다. 이따금 차가 멈춰 설 때마다 노란 전조등이 인적 없는 로터리를 어색하게 비췄다.


“봄 되면 갈아엎어야 하는 밭이잖아요.”

따뜻한 아랫목에 다리를 밀어 넣으며 나는 투덜거렸다. 안 가도 될 길을 다녀온 것 같아서.


“그 집이 왜정시대 소리 나게 살았져. 그런데 어떠 갱시냐. 자식은 어렵게 키워야 되여. 너미 돈을 몰르게 키워 노니 삶이 굉장히 힘들어. 오냐오냐 하미 먹는 거 입는 거 다 해 주미 안 되여.”

어머님은 밭주인이 아니라 그 부모를 탓했다.

 

실은 며느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른다. 오랜만에 만나니 하시고 싶은 말씀이 다.


“그때는 자주 도채비가 나왔져. 전기가 없음께로 길 가다 보면 희끗한 게 막 따라오고 해서 정신이 나강께.”

밤길에 도채비를 만난 할아버지가 담배 한 대 피우고 호령하니 도채비가 줄행랑쳤다는 이야기다.


아니, 갑자기 웬 도깨비?

나는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몽롱한 상태가 되었다. 낮에 새로 조성한 묘를 다녀온 탓일까? 추위에 얼었던 몸이 녹아서 인지 모른다.


어머님의 이야기는 매번 옛날로 돌아간다. 허벅을 지고 물을 나르던 일. 바닷가에서 빨래하던 일(당시의 한복 빨래는 일일이 옷의 솔기를 뜯고 빨아서 다시 기워야 하는 고된 신역이었다). 낮이 밤 같고 밤이 낮 같던 제주 4‧3 사건. 만삭의 몸으로 남편을 찾아다닌 이야기. 가슴에 묻은 막내아들….


 


 “아이고야”

어머님은 고개를 저었다. 생각하기도 힘든 눈치다.


고통은 어느 만큼의 무게 일까. 슬픔의 빛깔과 깊이는 저마다 다르기에 나는 어머님을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공감하지 못한다. 단지 들어줄 뿐. 고통은 극복하는 게 아니라 지나가는 거라 했던가. 털실 꾸러미에서 실이 풀려 나오듯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풀어내도 풀어내도 속은 비워지지 않나 보다. 어머님의 한숨은 언제 가실까?  


따뜻한 기운이 온몸에 번지며 눈꺼풀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하게.”

아버님이 어머님의 말을 잘랐다.




시댁은 묘 관리가 항상 힘들었다. 명절이면 오름에 올라 하얗게  표시된 돌을 찾아다녀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 찾지 못할 묘도 생길 것 같아 시댁에선 흩어져 있는 묘를 한자리에 모았다.


새로 옮긴 묏자리는 바다가 훤히 보이는 곳이었다. 관리하기 쉽게 봉분도 없앴다. 세 단으로 층을 만들어 자손들 자리를 예비했다.


“저기가 네가 묻힐 자리여.”

어머님이 둘째 단을 가리켰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제주에 묻힌다는 생각을 난,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여기가 얼마나 좋으냐. 저기 바다도 훤히 보이고.”

어머님 눈에 서운한 기가 스쳐 갔다.


올라가기 전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두 분이 말씀을 주고받는데 어째 우리 들으라 일부러 하시는 것 같았다.


“자식들이 모두 육지에 나가 있는 터라, 둘이 살다 하나 죽으면 어떻게 할지.”

“먼저 죽는 사람이 그래도 낫주게.”

무거운 분위기를 털어내듯 어머님이 가볍게 말을 받았다.


난처해 묵묵히 먹는 시늉만 하는데, 밥이 서걱댔다. 모래알처럼.


“어머니, 요즈음은 실버타운도 시설이 좋고 괜찮습니다.”

뜬금없이 남편이 말을 꺼냈다.

“입소 비용이 일억이었나?”


상 밑에서 눈치를 줘도 남편은 알아채지 못했다. 게다가 내게 묻기까지.


어머님이 물끄러미 아들을 쳐다봤다.


쨍그랑, 숟가락이 어디에 부딪혔는지 날 선 소리를 냈다.

"너들은 돈 마이 모아 그런데 들어가라."


당황한 남편이 실버타운, 요양원, 요양병원의 차이점을 중언부언 늘어놓았지만 어머님은 이미 귀를 닫아버렸다. 


이번에 올라가면 언제 다시 내려오게 될까. 두 분은 건강해 보여도 아흔을 바라보는 연세다. 오래된 집은 낡아서 벽틈으로 바람이 술술 들어왔다. 이불을 목 위까지 끌어올려도 콧등이 시렸다. 바람이 창문을 시끄럽게 흔들었고, 괘종시계는 밤새 울렸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님의 얼굴이 환해졌다. 확답을 준 것도, 어떤 결정을 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형제가 한둘도 아닌데 누가 부모님을 몰라라 하겠냐고 말했을 뿐이다.


쓸쓸한 부모에게는 다정한 말 한마디가 효자 노릇 하는 법이다.


“우리 집에 옵소게.”

한 마디만 하면 될 것을.


“너희 속내 빤한 것 내 다 안다.”

웃으며 속아주실 텐데.


하지만 ‘실버타운’으로 부모님 염장을 지른 남편은 정작 다른 생각이 있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가에 '목수 아카데미'라고 쓰인 간판이 보였다. 대여섯 명의 남자들이 허리에 장비를 찬 채 불가에서 손을 쬐고 있었다. 그들이 짓고 있는 집을 쳐다보느라 차의 속도를 줄이며 남편이 중얼거렸다.


“제주에 집 지으려면⋯ 저런 거 배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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