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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Jul 27. 2020

리더의 결단

드래프트 데이 Draft Day (2014)



어떤 단체의 책임을 잠시 맡은 적이 있었다.


구성원 이래야 네 명 정도였는데, 사이좋게 지내며 즐겁게 일을 했다. 팀이 깨지게 된 건 복잡하게 얽힌 어떤 사건을 해결해야 는데, 구성원 중 한 명이 반발해서였다. 그간 일의 전후 사정을 지나칠 정도로 계속 의논하며 진행해 왔기에 어느 틈에 우리 단체엔 리더도, 책임자도 없어져 버렸다.

각자의 역할과 책임질 부분을 명확하게 금을 그었다면 팀은 깨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당시 나는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미국 최대의 스포츠, 미식축구의 ‘드래프트 데이’를 앞두고 그저 그런 중간 순위의, 아니 우승이 절박해 보이는 클리블랜드 구단의 단장 써니에게 제안이 들어온다.


'가장 인기 있는 쿼터백 캘러한을 지명할 수 있는 드래프트 1번 순서를 줄 테니 다음 해와 그다음 해의 1번 지명권을 넘겨 달라.'


이미 써니 단장은 심사숙고했다. 메모지에 무언가를 적어뒀다.

그런데 갑자기 1번이라니. 누구든 원하는 선수를 뽑을 수 있다. 횡재 같다.

써니는 제안을 받아들인다.

메모지는 얼떨결에 주머니로 들어가고, 오래 숙고한 결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구단에서의 위치도 불안정하니 내년, 후 내년을 생각할 것 없이 하루라도 빨리 우승해야 한다. 당연히 쿼터백 캘러한이지! 어느 구단이나 탐내는 히어로 아닌가.

그런데 구단의 분위기가 묘하다. 캘러한을 받고 다음 해 지명권을 넘겼다고 말하니 다들 원망한다. 심지어 감독은 선수들 뽑는 일이니 같이 의논해야 한다고 대들기까지.


"이건 내 일입니다. 당신 일이 아니고."

써니는 감독의 의견을 묵살한다.


쿼터백도 반발한다.

“걔가 오면 제가 나갑니다.”

써니는 부상당한 널 데려와 낫기를 기다린 건 어느 누구도 아니고 바로 나, 단장이라고 믿음을 심어준다.


캘러한을 뽑는데 무슨 문제가 있을까?

써니는 혼란스럽다. 그러던 중 한 선수가 귀띔한다.


“경기 장면을 잘 살펴보세요. 특히 태클당한 후”


캘러한은 태클을 당하면 쉽게 흥분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침착해야 할 선수로선 약점이다. 써니는 캘러한이 어딘지 미심쩍어 몇 번 통화를 시도한다. 인성을 파악하고 싶다. 구단에선 자료를 찾아본다. 몇 년 전 캘러한의 뻑적지근한 생일파티에 문제가 생겼는데, 경찰이 보고한 출입자 명단에서 이상한 걸 발견하게 된다.


파티에 동료 선수가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게다가 거짓말쟁이라는 소문도 들린다. 선수 행동 매뉴얼을 나눠주고 읽으라 했는데, 대부분 선수들은 읽지 않았다. 다들 읽지 않았다고 실토했는데, 캘러한은 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사소하지만, 써니는 꺼림칙하다.


“솔직하게 말해줘요. 우리가 이 선수에 대해서 뭔가 알아야 할 게 있나요?”

구단의 단장들은 선수를 뽑기 전에 서로 꼭 묻는다. 이런 질문은 신뢰가 없으면 나오지 않는다. 이해가 갈리는 긴박한 결정의 순간에도 반드시 묻고 넘어간다. 키가 작아서 문제가 있을 겁니다. 달리는 속도가 느립니다. 솔직하게 말하고 알면서 감수하고 서로 데려간다. 물론 써니도 캘러한에 대해서 묻는다. 하지만 속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한다.


결정의 순간, 드래프트 데이 마지막 순간에 써니는 캘러한에게 직접 전화로 묻는다.


“너의 생일 파티에 동료들이 왔니?”

캘러한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실력을 우선할 것인가, 품성을 우선할 것인가. 써니는 실력보다 품성을 선택한다. 얼마나 정직한가, 얼마나 진실한가. 이건 팀이야.

클리블랜드가 의외의 선수를 뽑자, 캘러한은 뒤로 뒤로 순서가 밀린다. 다들 꺼림칙해한다. 써니는 다시 딜을 시작한다. 물밑 작업과 심리전이 총동원된다. 시간이 촉박하니 누구랑 의논할 수 없다. 순서를 바꾼 후 다시 캘러한을 사고 판다. 결국 클리블랜드는 완벽한 팀을 구성한다. 누구랑 의논했다면 써니는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생각할 시간은 짧았고, 마지막 결정은 순전히 본능에 의지해야 했으니까.


사람들 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의논은 하지만 결정의 부담은 혼자 짊어지는 게 리더다. 섣부른 친절,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으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리더는 모든 일이 끝난 후 결과를 책임지는 사람이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본테 맥’


메모지에 쓴 글은 써니가 오래 숙고한 결심이었다.

그는 갑자기 상황이 달라졌다고 덥석 물지 않았다. 자신의 결정을 존중했다.





#드래프트 데이 Draft Day, 아이번 라이트먼 감독, 케빈 코스트너 주연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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