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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Aug 01. 2020

페르소나 persona



문창과를 졸업한 친구가 옛 선생님이 휴가차 내려왔다며 카톡방에 소식을 전했다.

친구의 선생님은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과거에 한두 권 정도는 읽었을, 한때 제법 유명했던 B 작가이다.


“같이 뵈러 갈 분?”


갑작스러운 제안이어서인지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호기심에 만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는 게 어쩐지 부담스러웠다. 사람 만나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는 주의이긴 하지만, 요즘은 만남을 접는 경우가 잦아졌다. 젊지 않은 나이를 의식하게 된 게 의지적 생각과 달리 본래의 성향을 드러내는지 모른다.




작년 이맘때, 어느 회사의 창립기념일에 초대받아 갔다가 K 작가를 만났다. 식이 끝난 후 뷔페로 식사하는 자리, 두세 사람 앞에 그녀가 서 있었다. 반가웠다. 얼마 전 그녀가 쓴 책을 읽은 터라 기회만 된다면 짧게라도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아주 짧은 순간 어떤 생각 -지나고 보면 절대 무시해서 안 되는, 후회에 대한 예감 -이 스쳐 갔지만, 나는 그녀와 말하고 싶은 욕구가 너무 강렬했기에 주저할 수 없었다. 이런 자리에서 누구의 소개도 없이 다가가서 말을 거는 게 실례되는 행동이라는 거, 자신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태도라는 걸 깨달은 건 말을 나눈 후였다.


나는 사람들을 조심스레 헤치고 K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녀가 음식을 접시에 덜고 있을 때였다.

안녕하세요? 인사했고, 지난번에 쓰신 책을 읽었는데 참 좋았어요, 했다.


그래요? 그녀는 힐끗 쳐다보더니 시선을 바로 음식 접시로 돌렸다.

멀어지는 그녀에게 나는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저, 글 쓰고 있어요.


얼마나 서툴고 조심성이 없었는지⋯ 나는 곧바로 후회했다.

K는 눈을 내리깔았고 나를 보려고 얼굴도 들지 않았다. 다만 작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접시에 눈을 고정한 채 이렇게 말했다.


"그러세요? 열심히 쓰세요."


무안하다기보다는 마음이 상했다. 무척이나, 나는.


붉어진 얼굴로 자리에 돌아온 나는 이 불편한 상황을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에 사람들은 대부분 두 가지 방법을 쓴다. 상대를 이해하던지, 자기를 합리화하던지. 나는 전자를 택했다.


수없이 만났을 거야, 나 같은 사람들을. 귀찮았겠지. 예의 없는 상대가 다가오자 당황해서 방패를 세운 거야. 그동안 얼마나 많았겠어. 글 쓴다고, 글 배우겠다고 다가온 사람들이. 그렇게 그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찜찜하고 불쾌했던 기분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마치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상대를 밀어내는 것 같은 표정과 낮게 깔린 말투.


그날 모임이 끝나자 모처럼 만난 친구들과 나는 카페로 자리를 옮겨 차를 마셨다. 자연스레 그녀 이야기가 나왔다. 식장에 늦게 도착한 나와 달리 친구들은 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주최 측이 만들어 놓은 대기실에서 그녀와 합석하게 되었다. 친구들은 그 자리에 내가 없던 걸 무척 아쉬워했다. 다들 그녀가 얼마나 친절했는지, 얼마나 다정다감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해줬는지, 그녀와 나눈 이야기를 자랑스레 늘어놓았다. 나는 내가 만난 그녀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책을 통해 만나는 작가의 모습과 실제 작가의 모습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작가를 책의 주인공과 동일시했던 건 아닐까? 좋은 글을 쓴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격이 좋으리란 법은 없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데이비드 셀린저(D. Salinger)는 철저하게 은둔 생활을 한 사람이다. 독자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자유롭고 싶어서였을까? 사람들 앞에선 늘 책의 저자라는 가면을 쓰고 있어야 했을 테니.


페르소나(persona)는 고대 그리스 연극배우들이 썼던 가면으로 다른 사람 눈에 비치는, 실제 개인의 성격과 다른 모습이다. ‘사람(person)’이라는 단어에는 '연극의 역(役)을 하는 사람'이라는 '페르소나'의 뜻이 들어있다.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역할을 연기한다. 아내, 어머니, 선생님, 작가. 역할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알린다.

작가는 글을 통해 자신을 알리는 사람이다. 작가는 독자를 알지 못하지만, 독자는 작가를 안다고 느낀다. 책을 통해 저자의 가치관을 공유하니 마치 저자가 직접 말을 건 것처럼 여기기도 한다. 독자는 책에 드러난 작가의 모습이 독자에게 보이고 싶은 작가의 페르소나란 생각을 하지 못한다.


만일 그런 상황을 다시 맞게 된다면 나는 조금 떨어져서 먼저 그녀를 관찰하리라. 무엇보다 그렇게 급히 상대가 가면을 쓰고 역할을 준비하기 전에 다가가지 않으리라.




B 작가를 만나러 함께 가겠다는 이가 아무도 없자, 친구는 풀이 죽은 것 같았다.


“혼자 가야 되나?”

그녀의 문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혼자 갈 친구도 마음에 걸리고 B작가도 만나고 싶어서 마음이 왔다 갔다 했지만, 결국 사양하고 말았다.


다음날 카톡에는 우리 모임의 제일 막내가 따라가서 B 작가와 좋은 만남을 가졌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모르는 사람 엄청 챙겨주시더라고요. 언니가 데려가 줘서 그런 거겠죠. 애제자인가 봐요.”


부러워서 나는 씁쓸하게 대답했다.

“인품이 좋으신 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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