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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Aug 03. 2020

과외비가 부담스러워

그녀는 감질나게 얼버무리기만 했다



딸이 다니는 학교 선배 엄마를 만나서 학교 이야기를 들었다. 학교가 뒤숭숭했다. 개혁파가 있고, 기본 보수파가 있단다. 그러니 애들은 뒷전이고 서로 권력을 잡으려는 암투가 치열하다고 했다.


전혀 몰랐다. 그간의 사정을.

학교를 잘 다니고 있는 줄만 알았다. 그러고 보니 그간 시험 성적을 본 기억이 없다.


-요즘 시험 안치니?

딸이 고개를 끄덕였다.


큰일 났다. 난, 선배 엄마에게 납작 엎드렸다.


-어떡해요?

-어떡하긴, 과외시켜야지.


과외? 무슨 과목을. 시키려고 들면 한두 과목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영어, 수학을 시켜야 하고, 거기에 국어와 과학이 따라붙는다. 한 과목에 삼십만 원만 잡아도 백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인데. 과외 선생은 또 어디서 구할 것이냐. 떠오르는 선생이 없다. 그간 왜 신경을 못썼을까.

나는 선배 엄마에게 매달리기로 했다.


-선생님 좀 소개해줘요. 어디가 괜찮아요?


그녀는 느긋한 표정을 짓더니 애매하게 말을 흐렸다.

-그게, 글쎄. 돈만 들인다고 되는 건 아니지. 정말 좋은 선생에게 보내야지. 우리 애는….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감질나게 얼버무리기만 했다


나는 속이 탔다. 과외 선생을 꼭 찾아야 했다.  


-자기 스카프 멋있다.

뜬금없이 그녀는 내가 두르고 간 스카프에 관심을 보였다.


그날 나는 동네 난전에서 산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진한 핑크색이었는데, 눈에 잘 띄어서인지 보는 사람마다 비싼 스카프로 봤다.


-이거요? 언니 쓰실래요?

나는 얼른 스카프를 갖다 바쳤다.


-그럴까? 비싼 건 아니지?


난전에서 샀단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던 걸 나는 얼른 삼켰다.


-우리 애는 태백에 있는 선생한테 다녔어.

-태백이요? 거긴 너무 멀잖아요.


그녀가 달아오른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게 뭐가 멀어. 좋은 선생이 있으면 찾아가야지.


난, 슬그머니 실망이 됐다.


-자기 입은 니트도 이쁘다.


난, 심술이 났다.

-그래요? 드려요? 그런데 결혼식엔 못 갈 것 같아요.


다음 달 서울에서 그녀의 큰 딸 결혼식이 있다.

-아니, 니트는 됐어.


그녀는 결국 애매하게 자랑하던 과외 선생님의 태반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

휴,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도대체 과외비가 얼마나 들건가. 마음이 찌뿌둥하게 어두워졌다.


최소한 매달 백만 원은 들겠다. 초등학교 때는 수영, 피아노, 미술, 이런 걸 과외로 시켰다. 초등학교 전반기에는 남편과 내가 품앗이했고, 곧이어 영어를, 중학교 들어가선 중요 과목 과외를 시켰다. 방학이면 특강까지.


다급해진 나는 늘 궁금한 것 물을 때마다 얼른 대답해주던 친구가 떠올랐다.

걘 가르쳐 줄지 몰라.


-과외하고 있니?

물음에 친구는 선선히 대답했다.


-그럼, 하고 있지.

-무슨 과목?

-거의 다지 뭐. 영어, 수학, 국어, 화학 경시 준비까지.

-소개해줄 수 있니.

-물론이지. 그런데 자리가 있나 모르겠어. 선생님들이 워낙 유명한 사람들이라. 잘 알아봐.


아무리 유명하고 바쁜 선생이라도 들어가려면 어떻게든 들어갈 수 있었다. 선생은 해결됐다. 이젠 돈이 문제다. 또다시 그 돈을 내고 살아야 하나. 모든 것을 줄여야 한다. 외식, 문화생활, 여행마저. 그때까지 나는 제대로 된 정장 한 벌도 없었다. 쪼들리는 느낌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답답해진 마음에 가슴을 두들기다 보니 잠이 깼다.


꿈이었다. 너무나 생생한.


참, 딸은 결혼했지.

나는 지나간, 언제 지나갔나 싶은 시간에 얼른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이젠 더 이상 과외비가 들어가지 않는구나.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아이들 떠난 집이 적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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