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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Aug 04. 2020

엄마를 보러 가야 하는데

예전 모습을 지우고 싶지 않아


-일부러 오지는 마세요.


아들의 문자에 나는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침묵에 빠졌다.

무슨 뜻으로 아들이 말하는지는 알지만, 일부러 가지 않고서야 내가 경기도 고양에 갈 일이 있을까 싶어서다.


두 달 전에 고양에 취직한 아들을 보러 가려는 게 우리 부부의 숙제였다. 그러다 지난주에 서울에 갑자기 진짜 볼일이 생겨서 겸사겸사 아들 집에 다녀왔다. 아들은 우리가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아기자기하게 작은 아파트에서 예쁘게 살고 있었다.



엄마가 요양병원에 들어간 지 한 달이 되었다. 2주가 지나자 면회 금지가 풀려서 일주일에 하루 날짜를 정해서 한 명씩 엄마를 보러 갈 수 있게 됐다. 지난주에 언니가 다녀왔다. 나도 가봐야 한다. 그런데 이게 마치 하기 싫은 숙제 같다.


평생 남편을 지극 정성으로 대하던 시어머니가 요양병원에 들어간 남편을 보러 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들었다. 가족들은 당황해서 우리 엄마가 왜 저러지 한다고 했다. 친구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부부가 사이가 좋지 않았나 보다고 생각했다. 뭔가 남편이 흉 잡힐 일을 한 거지, 추측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 엄마는 화장을 곱게 하고 목에 스카프를 두른 채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적당히 꼬불거리는 머리도 잘 부풀어 어디 결혼식장에 가도 될 정도였다. 엄마는 우리와 식사하러 나간다고 한껏 꾸민 상태였다. 엄마는 늘 멋쟁이였다. 색 감각이 좋아서 파스텔 톤의 세련된 옷을 자주 입었다. 목욕탕에 걸어놓고 파는 옷을 사 입어도 엄마가 입으면 바닷물 건너온 옷 같았다. 입고 싶으면 가져 가, 잘 던져 줬는데 집에 와서 입으면 이상하게 나한테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날 엄마는 머리를 만지며 파마기가 벌써 사라져서 미장원에 또 가야겠다고 말했다.


남편을 만나러 요양 병원에 가지 않는 시어머니의 마음을 이제 나는 어렴풋이 짐작한다. 일부러 대구에 갈 일은 없다. 오로지 엄마를 보러 가야 한다. 불편하겠지. 나는 엄마를 보는 순간 울지 모른다. 그래서 또 달력을 본다. 다음 주에 갈까? 아니, 그다음 주?


신문에 대구미술관 그림 전시회 소식이 실려 있었다. 독일 출신 화가 팀 아이텔의 개인전‘무제(2001-2020)가 열리고 있다. 이전에 두어 번 관련 기사를 봤다. 지방의 미술관 전시회를 이렇게 중앙지에서 여러 번 소개하는 건 드문 일이다. 대구에 가서 남동생과 같이 엄마를 만나고, 미술 전시회를 갈까? 생각이 스쳐갔다. 동생이 미술관에 가려할진 모르겠지만, 다녀오면 동생에겐 아주 도움이 될 것 같다.


엄마를 병원에 보내고 동생은 무척 힘들어했다. 엄마가 죽고 나면 나도 그만이지, 라는 말까지 할 정도였다. 급격히 진행된 엄마의 치매를 옆에서 지켜보는 게 동생은 무척 힘들었다. 엄마가 무너지기 두 달 전에라도 요양 병원에 보냈으면 엄마도 병원에 어느 정도 적응했을 터이고, 동생도 못 볼 것 덜 봤을 텐데 싶었다.


-여보, 나는 그나마 정신이 살아 있을 때 내가 찾아서 병원 갈게. 골라서 갈 거야.

요즘 나는 남편에게 말한다.


하지만 이건 겪어보지 못해서 하는 말인지 모른다. 막상 닥치면 나도 엄마와 별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침에 눈 뜰 때마다 엄마가 간밤에 자다가 죽었으면 하는 생각을 아들이 하게 만들고 싶진 않다. 강하게 애착이 형성된 관계에서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상황은 서로의 자존감을 순식간에 무너트릴 것 같다.


대구 미술관 전시회 안내를 보니 예약을 해야 한다. 하루에 200명만 볼 수 있다. 나는 동생을 설득해 그날 대구 나들이를 할 예정이다.


바뀐 엄마 모습을 담담히 바라볼 수 있을까?

자신은 없지만, 돌아서 울지 모르지만, 엄마를 만나야 한다.


잘 만나고 돌아서 동생과 미술관 나들이를 할 생각이다. 화가가 20년간 그린 그림이라 했다.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그림을 모았다 하니, 미술관을 들어갔다 나올 무렵이면 우리는 다른 세상을 바라보느라 구겨진 마음이 펴져 있을지 모른다. 엄마의 바뀐 모습을 밀어내고 작년 모습을 곱게 머릿속에 되살려 놓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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