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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Aug 05. 2020

낀 세대

회의적으로 검토하고 새로운 것에 마음을 열기


신문에 성 인지 감수성 테스트가 있기에 한 번 해 봤다.

다섯 문항이었는데, 두 문항은 다음과 같았다.  


-1번. 넌, 치마 입어도 예쁘구나.


음, 이 정도야, 문제 될 게 없지.


-2번, 마스크 쓰니 얼굴이 더 작아 보이는구나.


이건 칭찬 아닌가. 이게 왜?


문항 체크를 마치고 보니 나는 성 인지 감수성이 최하였다.

당황했다. 솔직히 나 정도면 깨인 사람이지, 자부심을 은근히 가지고 있던 터였다.


친구들과 이 문제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남자들은 다들 이게 뭐가 문제냐 해요.

오십 대 초반으로 식당을 하는 친구가 말했다.


-이젠 접촉하면 안 돼요, 칸막이하고 살아야죠.

그녀는 40대 후반, 중학생 엄마다.




남편이 너무 요리를 못해서 요즘 하나씩 가르쳐주고 있다. 지난번엔 김치볶음밥과 국수의 지단 만드는 했다. 지단용 달걀은 대충 부쳐도 썰면 괜찮아진다는 것, 볶음밥 위에 올릴 달걀은 찢어지면 안 된다는 걸 남편은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고 구시렁거렸다. 하지만 남편은 대체로 음식 만드는 걸 흥미로워한다.


 2 주일에 한 번씩 반찬을 만들어 부산에 들고 가는 친구가 있다. 홀로 계신 시아버지 반찬이다. 투덜대지도 않고, 묵묵히 일이 년째 하고 있는 친구가 대견하다. 우리는 몇 번 그녀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했다. 가정부를 들이라든지, 기타 등등. 시아버지가 모두 고개를 저으니 친구는 별도리가 없었다.

친구를 보면서 나는 남편에게 요리를 가르쳐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나, 누가 오래 살지 모르지만, 최소한 자기 먹을 것은 만들 줄 알아야 될 것 같아서.


이런 이야기를 두서없이 하는 이유는 내 나이 또래가 낀 세대 같아서다.


얼마 전 선생님인 B 작가를 만나러 간 친구는 함께 간 40대 친구 때문에 놀랐다고 했다.


-전, 선생님 책 한 권도 안 읽었어요.

순식간에 분위기가 서늘해졌다.


B 작가는 순간 당황한 눈치였지만, 온화하게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어느 작가를 좋아해요?

-전, ㅇㅇㅇ작가를 좋아해요.


B 작가는 핸드폰을 들더니 ㅇㅇㅇ작가를 불러 그녀와 통화하게 연결해줬다.  

-야, 여기 너 좋아하는 팬 있다. 한 번 통화 해.


나는 전날부터 혹시라도 B작가를 만나게 되면 책에 대한 이야기 한 마디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 그의 작품을 기억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읽긴 했는데,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녀의 솔직함이 부럽고 신선했다.

우린 그녀 때문에 많이 웃었다.


음식을 주문할 때 당당하게 자기가 먹고 싶은 걸 이야기하고, 싫으면 싫다고 말하는 것이 그들이다. 배불러도 음식을 남기지 못하고, 내키지 않지만 만든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좋아하는 척하는 게 우리다. 그 차이는 크고 깊다.


 정재승은 책『열두 발자국』에서 칼 세이건의 패서디나 강연, '회의주의가 짊어진 부담'(1987)의 한 대목을 소개한다.

상충하는 두 가지 욕구 사이에 절묘한 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 앞에 놓인 모든 가설들을 지극히 회의적으로 면밀히 검토하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생각에도 크게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뭐든지 의심하기만 한다면, 어떤 새로운 생각도 보듬지 못할 것입니다.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비상식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괴팍한 노인네가 될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귀가 가볍다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마음을 열면, 그래서 회의적인 감각을 터럭만큼도 갖추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가치 있는 생각과 가치 없는 생각을 구분하지 못하게 됩니다.


편견과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기.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기.

항상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존재일 것.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열린 마음을 가질 것.


양쪽과 소통이 가능한 낀 세대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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