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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Aug 08. 2020

파스칼 키냐르『은밀한 생』

소설이라기엔 너무 무거운


파스칼 키냐르의 장편소설 『은밀한 생』을 읽었다.


이전에 그의 소설 『세상의 모든 아침』을 읽었을 때 비올라 다 감바의 연주 때문인지 로맨틱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느꼈다. 책의 맨 뒷장을 덮었을 때 후일 그의 다른 책을 읽어보리라 마음먹었다.


시, 소설, 산문의 구분이 점차 없어지는 추세이다. 최근 상을 탄 젊은 작가의 소설은 이게 소설인지 수필인지 혼돈스럽기만 하다. 파스칼 키냐르(1948~)가 1998년에 출간한 이 책은 자유롭게 스쳐가는 생각을 기록한 일기, 명상집 같아서 나는 이 책을 소설의 영역으로 분류해도 되는지 알지 못하겠다. 소설은 인물과 배경 서사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글이란 게 꼭 어느 영역에 속해야 하는지도 나는 확신하지 못한다.


‘모든 강물은 끊임없이 바다로 휩쓸려 들어간다. 나의 삶은 침묵으로 흘러간다. 연기가 하늘로 빨려 들 듯 모든 나이는 과거로 흡수된다. 1993년 6월 M과 나는 아트라니에 살고 있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초반에는 소설의 서사 같은 흐름이 이어진다. 잠시 후 흐름은 뚝 끊기고 작가의 자유로운 사고의 향연이 이어진다. 대체로 독서와 사랑에 관한 담론이다. 작가의 사고 수준은 높고 난해해서 누구에게 함부로 책을 소개하지는 못 하겠다.


그만 덮을까? 읽을 책도 많은데 왜 이렇게 어려운 책을 갖고 씨름하나. 모든 책을 다 읽을 필요는 없지. 생각하면서도 어려운 데로, 이해 못하는 데로, 눈으로 훑으며 책장을 넘긴 이유는 내 손에 닿은 인연 때문이었고 어떤 책이든 읽으면 얻는 게 있어서다. 지지부진하게 며칠 째 책장을 넘기다가 한 부분에 눈이 머물렀다.


‘매혹에 관해서’
귀는 음악을 가지고 있다. 눈은 화화를 가진다. 죽음은 과거를 가진다. 사랑은 타인의 벌거벗은 육체를 가진다. 문학은 침묵으로 환원된 개인의 언어를 가진다.


아, 이런 글을 읽으려고 내가 이 책을 끌어안고 있었구나.


말없는 세계의 총체가 문학이다. 독서는 죽은 자들과 더불어 사고하는 기쁨이다. 독서하다, 죽은 자들과 함께 가다, 삶 이전의 삶과 함께 가기.  


고요한 가운데 나는 글을 쓰고 있다. 타닥타닥, 자판기 두들기는 소리만 들린다. 침묵 안에서 나는 책에 관하여, 작가가 한 말에 대해, 거기서 뻗어나가는 나의 생각을 쓴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도 누군가 내가 쓴 글을 읽고 나와 소통하길 바란다.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한 철학자이며 첼로 연주자이며 작가인 파스칼 키냐르는 정작 신은 ‘독자’라고 말한다.

“평생의 열정인 독서가 마법의 양탄자여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 수 있게 해 준다. 나는 매일 글을 쓰지 않지만 매일 책을 읽는다. 어떤 것도 내게 독서를 포기하게 만들지는 못 한다."


이 책은 그가 심각한 출혈로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다가 돌아온 후 쓴 글이라 한다. 이전까지 쓰던 모든 것을 관두고 총체적인 모든 것(사상, 소설, 삶, 지식)을 포함한 단 하나의 육체와도 같은 책을 쓰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이 책을 썼다고 옮긴 이는 전한다.


사회의 그리고 시간의 사각지대에서 살아가기. 이 세계의 모퉁이에서 살아가기.

모든 독서는 출애굽이다. (…)

책 읽기는 영혼을 놀라게 한다. 책 읽기는 자신의 내부에 등록된 모국어, 그곳에서 속삭여지며 의식의 형태로 감시하는 반향 효과를 흐트러뜨린다. 책 읽기는 사고의 시공을 확장시킨다.




사랑은 무엇인가? 그것은 성적 흥분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육체가 아닌 한 육체와 매일 함께 있고자 하는 욕구이다. 자신의 시선이 미치는 곳에.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리 안에.(…)

사랑에 빠진 사람은 자신이 느끼는 것을 자신에게마저 털어놓지 못한다. 사랑은 영혼에 기댄 영혼이다.


사랑에 대한 담론이다. 나는 꼭꼭 들킬세라 눌러 놓았던 첫사랑을 떠올려 봤다. 오랜 시간 누구에게 한번도 말하지 못했던 감정. 이젠 너무 시간이 흘러 희미하게 빛바래 버렸지만, 당시 나는 자신에게조차 그 감정에 대해서 말하길 두려워했던 것 같다. 나를 빠져나간 영혼은 그를 찾아 그렇게 사방을 헤매고 다녔던 것일까. 사랑은 원시적이고 동물적이다. 이성적이지 않고 감정적이다.


나체로 몸을 내맡기지 않는 여자에게 남자는 속내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 나체로 몸을 내맡기지 않는 남자에게 여자는 속내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


아벨라르에 대한 엘로이즈의 반론이 나온다.

아벨라르(당시 39세)와 엘로이즈(당시 17세)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아들을 둔다. 그러나 엘로이즈의 숙부에 의해 아벨라르는 거세되어 둘은 각기 수도 생활로 들어간다. 두 사람의 교류는 12통의 서신으로 이어진다. 둘 사이 오간 서신을 동의 없이 아벨라르가 1132년 출간하자 엘로이즈는 다섯 가지 논거로 반론을 제기한다. 사랑, 결혼, 기억, 고백, 결합에 대하여.


사랑하는 여자는 자신의 육체에 관련된 것에 대해 강요받아서 안 되고, 자신의 인격에 관련된 것에 대해 종속되어서도 안 된다. 부부간의 성적 의무(로마시대 부인들이 비굴한 아첨이라 불렀던 것들)도, 경제적 예속도, 법적인 속박도 사랑의 관계를 억누를 수는 없다.
"내가 당신을 잃었다는 사실 자체와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당신을 잃은 방식 때문에 고통을 느낍니다. “
“나의 정신은 이미 저를 떠나 당신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파라클레 수녀원장의 다섯 번째 논증은 결합, 즉 단일성으로 변모하는 성의 혼합에 관한 것이다.  


에도 시대의 무사 야마모토 쓰네모토가 구술시킨 하가쿠레는 사무라이의 윤리(무사도)를 이렇게 규정한다.

“사랑의 궁극적인 형태는 비밀의 사랑이다. 살아가는 동안 줄곧 사랑으로 자신을 태우고, 사랑하는 자의 이름을 입 밖에 내지 않은 채 사랑으로 인해 죽는 것, 그러한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사무라이는 그 말할 수 없는 이름을 무덤까지 가져가야 한다.


작가란 가슴속에 담긴 말을 세상에 꺼내놓아야 하는 사람들인지 모른다. 그러지 않으면 병들 것이기에. 시로, 소설로, 산문으로 발현의 방식은 다양하다. 키냐르는 소설을 쓰려다, 접었는지 모른다. 소설로 말하기엔 가슴에 담고 있는 것, 내놓을 것이 너무 많았기에.


수박 겉핥기식이지만 책을 붙들고 있은 인내의 대가로 나는 작가의 소중한 통찰의 일부분을 얻었다. 나의 깨달음은 책의 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하지만 간직하고, 나누고 싶었다.



# 『은밀한 생』 파스칼 키냐르, 송의경 옮김,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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