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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Aug 09. 2020

아들만 찾는 엄마

동생과 함께 하는 우중(雨中) 나들이



큰 언니가 제일 먼저 엄마를 보러 요양 병원에 갔다. 지난주 금요일.

코로나 때문인지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언니는 엄마를 만났다. 엄마 얼굴은 생각보다 괜찮아 보였다. 머리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정신도 온전한 것 같았다. 귀가 잘 안 들려하면 간호사가 귓전에 바싹 붙어서 친절하게 말을 옮겨줬다.

이걸 어떻게 봤냐 하면 언니가 엄마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가족 카톡방에 올렸기 때문이다.


-얘들아, 자주 오너라.

한 마디 하고 엄마는 뭔가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언니가 형제들 이름을 차례로 대면서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하자 엄마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다섯 남매다. 엄마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엄마가 기억하는 건 오직 맏아들, 내 남동생 밖에 없었다. 엄마는 걔가 왜 안 오냐고 물었다. 그러더니 눈을 한 번 찔끔 감았다 떴다. 슬픈 것 같았다. 동생은 아직 엄마를 보러 가지 않았다.


언니가 엄마의 동영상을 올렸을 때 나는 보지 않았다. 하루가 마칠 무렵에야 톡방에 들어가 영상을 틀어봤다. 처음엔 서운했다. 여전히 아들만 찾는구나 싶었다. 옛날 감정이 되살아났다.


-올 필요 없다. 뭐 하러 차비 들여 고생하며 오니? 동생 있으니 됐다.

뚝 끊어지는 전화. 신호음 울리는 전화기 들고 눈물 삼킨 게 어디 한두 번이었나.


하루가 지나서야 설운 마음이 사라지고, 이제 엄마는 아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참 나잇값을 못 하는구나, 이런 상황에서도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있구나, 싶었다.


사랑은 공평하게 흐르는 게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더 아픈 손가락이 있다. 손자를 각각 맡아서 키운 어느 집에선 손자들 싸움이 사돈 싸움이 됐다지 않은가.

그제야 엄마를 보러 갈 용기가 났다. 그간 어떻게 변했을지 몰라 엄마를 만나는 게 두려웠다. 영상을 보고 나니 조금 안심이 됐다.


하지만 내가 갈 게 아니라, 동생이 가야 했다. 동생은 엄마를 보려 하지 않는다. 나는 동생을 엄마에게 데리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지난번에 생각한 대로 동생을 우울의 구덩이에서 빠져나오게 해야 한다.


-담 주에 내가 엄마 보러 갈게.

늦은 밤 동생에게 전화했다.


면회는 일주일에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간에 한 명만 가능하다.

동생은 흔쾌히 그러라고 대답했다.


-너도 같이 가자.

-왜? 한 명 밖에 안 돼.

-난, 밖에 있을래. 너만 들어가. 엄마가 보고 싶어 하는 건 너야.

-… 아니야. 엄마는 자기를 집에 데리고 가라고 나한테 말하려는 거야.

-그래도.

-….

동생은 잠시 말이 없었다.


우린 그날 만날 시간을 정했다. 잠시 후 나는 엄마를 만나고 나서 미술관 가자는 말을 꺼냈다.


-미술관은 무슨. 요즘 그렇게 다니면 안 돼. 조심해야 해.

동생은 한 마디로 내 제안을 거절했다.




나는 동생이 그러리라 짐작했다. 어떻게 할까.

대구미술관 관람은 미리 예약해야 한다. 우선 예매 사이트를 들어가 보기로 했다. 관람료는 무료였다. 두 사람 예약도 가능했다. 입장 시간에 50명만 받는다. 이런 분위기라면 충분히 여유 있게 동생과 관람하며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다. 엄마 때문에 움츠린 동생에게 화가는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어 주겠지. 문화가 주는 위로가 있다는 걸 나는 믿는 편이다. 상황 봐서 어떻게든 동생을 미술관으로 끌어내야지 마음먹었다.


열심히 예매 사이트를 들락거리는데 동생이 카톡을 보냈다.

‘매그넘 인 파리’ 사진전이 대구에서 열린다는 내용이었다.


-이거 갈까?

내가 물었다.

-좋지.

나는 얼른 이 표도 두 장 예매했다.


 



‘파리’라….

나는 몇 번 다녀온 곳이지만, 동생은 한 번도 가지 못한 곳이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사진에 관심이 있는 걸까?

내가 좋아할 줄 알고 가자고 한 걸까?


예매했다고 하니, 동생은 내가 하려 했는데, 말꼬리를 흐렸다. 아무려면 어떠니.


그날 우리는 엄마를 보러 갔다가 '매그넘 인 파리'사진전을 보고 오후에는 ‘팀 아이텔’ 전시회를 기로 했다. 하루에 전시회를 두 곳 간다는 게 무리라는 걸 알지만, 동생이 움직이는 게 어디냐 싶어서 나는 고민하지 않았다. 지치도록 돌아다니는 게 좋을 때도 있다.



엄마를 만나는 시간은 5분이라 했다. 칸막이가 없으면 안아줄 텐데. 손 잡고 뺨에 뽀뽀해줄 텐데. 그러면 엄마는 늘 얘가 왜 이러냐, 밀어내면서 웃었다. 싫어하지 않았다.


내려가긴 쉽고 올라가긴 어려운 게 사랑이라던가. 나는 요즈음 엄마보다 동생이 더 걱정이다.

엄마가 이리되고 나서, 형제들 중 형편이 바닥을 치는 사람이 생기고 나서, 우리는 전보다 더 애틋하게 가까워졌다. 흥부 가족 같은 느낌도 든다. 말없이 서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한다. 돈으로, 몸으로, 마음으로.

작은 언니는 천 마스크를 열 장씩 만들어 형제들에게 보냈다. 막내도 일정 부분 병원비를 부담했다. 큰 언니는 선뜻 엄마를 찾아갔다.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말하는 이 없이 우리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한다.


‘은밀한 생’에서 파스칼 키냐르는 위기 상황에서 세 남자 중 어느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면 누구를 고를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남편과 아들, 남자 형제 중 고르라 한다. 파스칼의 대답은 ‘남자 형제’이다. 남편은 다시 만나면 되고, 아들도 다시 낳을 수 있는데, 어릴 적 같은 시기를 보낸 남자 형제는 다시 만들 수 없다나.

 

지친 중년 남자의 모습서 나는 하얀 교복을 입은 사춘기 싱그러운 학생을 떠올린다. 몰래 담배 피우다 들켜서 멋쩍은 표정을 짓던 때를. 머리가 여물기보다 키가 훌쩍 자라던 . 누나 손을 잡고 걸어가던 초등학교 2학년 남자 아이를.


우중(雨中) 나들이가 되겠네.

기차표를 끊으며 나는 동생과 만날 날을 기다린다.





#'매그넘 인 파리' 대구 사진전

#'팀 아이텔 전' 대구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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