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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Aug 20. 2020

마음속에 미운 사람 하나

키친 싱킹(kitchen sinking)



며칠 전 밤에는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낮에 만난 친구의 냉담한 표정이 떠올라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녀를 친구라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결국 참지 못하고 한 소리하고 말았다. 참고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전 달에도 그녀는 비슷한 말로 나를 힘들게 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데 느낌이 남아 있다. 잊어버리고 흘려보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녀는 앞으로도 그럴 것이, 나는 어느 순간 꾹꾹 눌러 놓았던  이전 것까지 갑자기 쏟아낼지 몰랐다. 그런 걸 키친 싱킹(kitchen sinkin)이라 한다지. 만남을 계속 이어가려면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지기 전에 마음말해야 했다.


되돌아보니 내 마음속에는 늘 미운 사람 하나가 들어 있었다. 초등학교 다닐 적 날 괴롭히던 남자애, 사춘기 시절 학교 선생님, 직장 동료, 결혼 후에는 때때로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지금은 수시로 친구들이 그 방을 들락거린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가족은 그 방에 아주 짧은 순간 머물다 사라진다는 거다.


가끔 말갛비어 평화로운 시기도 있다. 하지만 곧 다른 이가 찾아온다. 나란히 두 사람 있을 때도 있고, 새로 온 이가 먼젓번 이를 밀어내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내가 문제인 것 같다. 나는 마음속에 미운 사람 하나를 담고 사는 걸까. 나만 그런가?




후배와 차를 마시다 문득 생각이 나서 물어봤다.


-넌, 어떠니?

-다들 그렇지 않나요.


머뭇거리더니 후배는 시어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얼마 전 시댁에 갔는데, 어머님이 저를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거예요. 고개를 야릇하게 기울이고 유심히. 어머니가 왜 저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실까, 생각했죠.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늘 ‘난, 널 딸처럼 생각한다.’라고 말해요. 집에 돌아오면서 차 안에서 이상하다고 말했더니, 아들이 불쑥 말하는 거예요. ‘엄마, 할머니는 엄마를 한 번도 딸처럼 여긴 적이 없어요.’


친구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에고, 갑자기 왜 눈물이 날까.


'며느리를 어떻게 딸같이 생각하니?우린 그런 말 아무도 안 믿는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딸은 딸이고 며느리는 며느리였다. 딸 같은 며느리라니. 딸과는 싸워도 쉽게 풀어지지만, 며느리와 싸우다간 관계가 끊어진다.  지내려는 섣부른 기대가 더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다.


후배와 나 사이에도 세대차가 있었다. 요즘은 한두 살 사이에도 자잘한 세대차가 존재하니 그럴 수 있다. 그녀도 오 년 정도 지나면 나랑 같은 생각을 하게 될지 모른다.


카톡방에서 한 친구가 연휴에 아들 내외가 온다고 바짝 얼어 있었다. 우리끼리 하는 말이지만, 친구는 집에서 공주고 여왕이다. 이젠 드디어 다른 공주에게 자리를 내놓을 때가 온 거다. 며느리의 첫 방문이라니. 부엌에서 일하다가 나는 문득 친구가 떠올라 웃음이 났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심각한 표정이 됐다.


남의 일 같지 않아서다. 언젠가 나도 며느리를 맞게 되겠지. 나는 며느리의 눈으로 부엌을 훑어봤다. 혼자 드나드는 부엌은 편리함을 핑계로 어수선했고 반짝이는 살림에 비중 두지 않는 대범함(무관심의 긍정적 표현)으로 묵은 때가 깔려  있었다.


며느리가 온다면 냉장고 청소부터 해야겠네. 제대로 청소하려면 하루 날을 잡아야겠어.


처음 시댁에 갔을 때 나는 어머님이 부엌을 청소해 놓았으리란 생각을 하지 못 했다. 이제 나이 드니  입장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며느리를 맞는 시어머니나 시어머니를 맞는 며느리나 긴장하마찬가지다.


제일 조심스러운 게 혈연으로 묶어지지 않은 가족 관계다. 한 번 틀어지면 가슴속 구겨진 방에 상처로 머물게 된다. 사위를 백년손이라 하지만 요즘은 며느리도 그렇다. 마음 속에 미운 사람 하나가 그나마 가족이 아니라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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