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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Aug 17. 2020

장식장에 넣어둔 접시

변화가 필요해



연휴 사흘 동안 집에만 있었다.


가까운 곳으로 드라이브라도 하려다 점차 심각해지는 코로나 감염 탓에 움츠러들고 말았다. 다행히 남편이 색소폰을 연습하러 음악실에 갔다. 혼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오후에 남편이 오면 옥수수나 감자, 미숫가루 정도를 챙겨주면 됐다.


저녁 식사에 우리는 자주 맥주를 곁들인다. 냉장고에 맥주가 없으면 적당히 이것저것 섞어서 칵테일이라 이름 붙여 마시기도 한다. 어제는 탄산수에 오미자청과 양주를 조금 섞었다. 반주로 마시면 기분도 좋고 말도 많아져 식사가 흥겨워진다. 하지만  많이 마시진 못 한다. 키 큰 맥주 한 캔이면 우리는 만족한다.


집에만 있으니 작은 변화라도 필요했다. 나는 변화가 필요할 때면 여행을 하거나, 옷을 사 입거나,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잘랐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게 모두 소용없다. 외출이 힘들고, 입고 나갈 곳이 없고, 새 옷을 봐줄 사람도 없다.

코로나 시대에 인테리어 용품과 부엌살림이 인기라는 뉴스를 들었다. 변화를 주려면 커튼을 바꾸거나, 테이블보라도 바꿔야 한다. 오래전 아이들이 자라서 집을 떠났을  울적해서 식기를 새로 샀다. 파란색 여름 그릇으바꾸니 기분이 좋아졌다.


며칠째 저녁 메뉴가 야릇하다. 점심때 만들어놓은 볶음밥에 파스타, 샐러드를 함께 먹기도 하고, 어제는 부추전에 메밀 소바를 곁들여 먹었다. 늘 먹던 밥과 국, 반찬에서 벗어나고 싶어서다. 사진을 찍고 보니, 접시가 들쭉날쭉했다. 좀 전에 친구가 카톡에 올린 정갈한 한식 상차림과 너무 비교됐다.


식사 후 나는 그동안 쓰던 그릇을 모두 집어넣고, 장식장에서 아끼느라 안 쓰던 그릇을 꺼냈다. 하루 종일 그림 그려서 만든 접시. 삼십 년 전 결혼할 때 가져온 접시. 뭣 하러 쓰지 않고 넣어만 뒀을까.




예전, 딸이 결혼할 때 나는 신이 났다. 집이 좁아 살림살이를 많이 사주진 못했지만, 지갑 들고 다니며 이것저것 사는 게 무척 재미있었다. 갖고 싶었지만 비싸서 사지 못했던 커피 잔, 도자기 장식이 된 수저, 알록달록한 냄비, 크고 작은 접시. 공식적으로 써도 되는 돈이라 아낄 필요가 없었다.


그때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딸이 셋이라 엄마는 돈이 생길 때마다 다락방에 차곡차곡 혼수로 보낼 살림을 사 모았다. 곗돈을 타면 얼마 후 멜라민 그릇, 크리스털 컵이 집으로 왔다. 상자에서 꺼낸 물건을 조심스레 들여다보지만 집에서 쓰는 법은 없었다. 엄마는 포장된 물건을 그대로 다락으로 올려놓았다.


딸들이 모두 두 살 터울이라 혼수 물건 사모으기에 좋았다. 언니가 시집가는 날, 다락에서 쏟아져 나온 물건을 보고 다들 깜짝 놀랐다. 둘째 언니가 시집갈 때는 물건이 조금 줄었다. 집안 형편이 기울 때였다. 내 몫으로 장만한 혼수에선 마지막에 이불 한 채가 빠져나갔다. 그 무렵 나비 백 마리 이불 해가는 게 유행이었는데, 어느 날 엄마가 내게 살짝 물었다.


-저건, 아빠 줄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연이어 세 딸 혼수를 준비하면서 엄마는 은근히 아빠 눈치를 봤던 것 같다. 결혼 후 친정에 오니 아빠는 내 혼수였던 노란 나비 이불을 잘 덮고 계셨다.



요즘은 아무도 그렇게 준비하지 않는다. 얼마 전 딸을 결혼시킨 친구는 자기가 준비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둘이 알아서 한다고 해서 돈만 줬지. 내가 사주는 것 마음에 안 들어해. 요즘 좋은 게 얼마나 많은데. 돈만 있으면 돼.


양가에서 일정한 돈을 주면 거기에 맞추어 모든 걸 아이들이 알아서 준비한다고 했다. 결혼식 장소, 살 집, 살림살이까지.





아침 식사를 하면서 나는 삼십 년 된 접시를 물끄러미 봤다. 엄마는 한 번도 써보지 못한 접시. 저걸 사면서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처럼, 사는 것만으로 마음이 채워졌을까. 장식장에 고이 모셔둔 접시를 나는 모두 꺼내 쓰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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