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인 Sep 04. 2020

깨진 그릇

가까운 쪽 편을 들게 된다


-정말 지겨워 죽겠어.


올케는 싱크대에 소쿠리를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나는 당황했다. 좀 전에 엄마가 무슨 말을 했지? 올케 눈치를 봤다. 명절 차례 준비 중이었다. 엄마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고, 나는 올케 옆에서 이런저런 부엌일을 거들고 있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올케는 기분이 별로 나쁘지 않았다. 무나물을 볶으며 옆에서 끓이던 탕국 국물을 한 국자 끼얹고 이렇게 해야 맛있다고 내게 가르쳐 주기도 했다.


올케는 음식 솜씨가 좋다. 부추전을 구울 때는 얇게 푼 밀가루 물을 손으로 훑어서 가지런히 부추를 늘어놓는다. 올케가 부치는 부추전은 종잇장처럼 얇다. 쇠고기 육전을 부칠 때는 뒤집기 전에 반드시 달걀 물을 한 숟갈 얹어줘야 전이 부드럽다고 다. 원래부터 솜씨가 좋았겠지만, 결혼하고 맏며느리로 명절과 제사 때마다 음식 준비를 해서 솜씨가 늘었을 것 같다. 집에 와서 나는 올케가 가르쳐 준 대로 만들어보지만 부추전은 두껍고, 육전은 우툴두툴 제멋대로였다.


그날, 소쿠리를 던지더니 올케는 앞치마를 벗고 나가버렸다. 갑자기 무슨 급한 일이 생겼나? 나는 올케가 잠시 후 돌아올 줄 알았다. 다음날 아침, 차례를 지내려고 음식을 차려 놓았는데 올케는 몇 번이나 전화를 받은 후에야 미적미적 나타났다.


동생은 올케와 헤어졌고, 조카들은 출입 금지령이 떨어진 듯 할머니 집에 다시 오지 않았다. 다음 해 설에 성당에서 조카들을 만났는데 슬금슬금 피하는 눈치였다. 엄마 아빠가 그렇게 돼도 할머니에겐 인사하러 가야지, 했더니 아이들은 불편한 표정으로 말없이 가버렸다.


엄마는 말이 억세다. 좋은 점도 많이 있지만, 올케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많이 다. 예전에 올케는 내게 전화해서 엄마 흉을 많이 봤다. 듣다 보니 어느 날은 그래도 내 엄마인데, 이렇게 올케 말에 맞장구 칠 일인가 싶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올케는 피 섞이지 않은 남이었고, 나는 엄마의 딸이었다. 만일 시어머니가 우리 엄마 같았다면 나도 올케처럼 그리 했을지 모른다.

우리가 아무리 말해도 엄마는 고치지 않았다. 올케에게 사랑을 줘야 했는데, 엄마도 잘 안 됐던 것 같다. 엄마는 아들에 대한 집착이 강했고, 그 맞은편에는 올케가 있었다


이제 남동생은 혼자 산다.

조카들은 아버지를 만나러 오지 않는다. 부모의 이혼이 아이들에게 큰 상처를 줬으리라 짐작한다. 어릴 적 엄마 아빠가 싸울 때면 나도 지옥에 사는 기분이었니까. 그 기억 때문에 가능하면 아이들 앞에서 남편과 싸우지 않으려 노력했다. 두 손으로 귀를 막았던 괴롭고 힘들었던 밤들이 지금도 떠오른다.


동생은 엄마가 요양원에 들어간 후 무척 힘들어했다. 전화하니  연락 끊긴 아이들 이야기를 꺼낸다. 나는 무서웠다. 동생이 어떻게 잘못될까 봐. 붙들고 일어설 뭔가가 필요할 때 사방을 둘러봐도 따뜻한 기운을 주는 가족이 없다는 건 끔찍한 일일 테니까.


동생과 전화한 밤, 망설이다 처음으로 조카들에게 연락을 했다. 엄마와 살고 있는 큰 조카에겐 전화할 용기가 나지 않아 문자를 보냈다. 조카의 반응은 어딘지 어색했다.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와 함께 사니, 아빠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가질 리 만무했다. 다급해진 나는 작은 조카에게 전화했다.


-가끔 찾아가 보렴. 아버지 힘들어하신다.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었다.

끊고 나서 바로 후회했다.


왜 이렇게 밖에 말하지 못할까. 좀 더 다정하게 오랜만에 왜 전화했는지, 조카가 궁금해서 물을 때 슬며시 이야기를 꺼냈어야 하는데. 아들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잘 전달하지도 못했다. 그러기엔 나와 조카 사이도 너무 멀리 와 있었다.


부모가 갈라선 이런 관계에서 자식이 부모에게 전화하는 것, 안부를 묻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나는 알고 있는 걸까? 아니, 나는 모른다. 

아버지의 오래전 한 차례의 잘못에도 나는 생전에 전화 한 번 하지 않았다. 아버지 돌아가실 때까지 그걸 핑계로 나하고 싶은데로 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조카에게 전화를 강요하고 있다.


헤어진 후에도 동생은 작은 아들이 고등학교 다니는 3년을 아침저녁 자동차로 통학시켜줬다. 얼마 안 되는 월급 대부분을 올케에게 보냈다. 자식들 눈치 보느라 엄마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지근거리 상가에 작은 방을 얻어 살았다. 엄마가 혼자 밥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자 엄마 집에 들어갔다. 지금 동생은 국민 연금도 없다. 올케가 예전에 자기 앞으로 들었다 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땐 나도 많이 속상했고 슬펐다. 나도 모르게 가까운 쪽 편을 들게 된다.


깨진 그릇에 물을 담을 순 없어도 쓸어 모아 놓고 바라보는 것도 안 될까.


피가 섞이지 않은 가족 관계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웃은, 친구는 헤어지면 그만이지만 한 번 가족의 연을 맺은 관계는 깨지면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 철이 엄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