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인 Sep 06. 2020

토르트가 철학을 만날 때

나훈아의 테스 형


신간 소개글과 칼럼을 좋아해서 토요일 신문을 꼼꼼하게 읽는 편이다. 칼럼 두 곳에서 나훈아의 신곡 테스 형이 언급되어 있었다.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친구들 카톡방 여기저기에 오지랖 넓게 퍼 날랐다.


-테스 형이 바로 그 테스네.

-나훈아 씨가 테스 동생이구나. 대단한 사람이군.

-너무 잼 있어.

웃을 일 없던 차에 나훈아 노래 덕분에 오랜만에 웃었다.


왜, 나훈아가 토르트로 테스 형을 부르니 재미있어하는 걸까?


김영민 교수 같으면 이렇게 물으리라.

토르트는 무엇인가. 테스는 누구인가. 왜 이 시대에 토르트는 철학을 만나는가.


토르트를 위키백과에서 찾아봤더니 이렇게 나와 있었다. 트로트, 뽕짝은 대한민국 음악 장르 중 하나로, 정형화된 반복적인 리듬과 펜타토닉 스케일 음계, 그리고 한국 민요의 영향을 받은 떠는 창법이 특징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토르트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중음악의 장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면 테스 형, 이라 불리는 소크라테스는 어떤 사람인가. 소크라테스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 서양 철학에서 첫 번째 인물로 평가되고 있는데, 그의 목표는 '덕의 실행'이라고 한다. 그는 아테네에서 소위 현명하다는 자들을 찾아가서 대화하고 토론하기를 즐겼는데, 그들의 무식이 폭로되는 과정을 사람들은 지켜보고 즐겼다고 한다. 오늘날 대중들이 가장 쉽게 소크라테스의 명언으로 기억하는 말이 노래 가사에 반복해 나오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다.


나훈아는 경쾌한 박자에 맞추어 소크라테스에게 묻는다.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 형


나훈아는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든지, 사랑은 왜 이런지 모르겠다고 소크라테스에게 고백한다. 또한 너 자신을 알라는데 어떻게 하면 알 수 있는지도 묻는다. 저 세상 천국은 어떤지, 먼저 갔으니 알지 않냐고. 삶과 죽음에 대한 심각한 질문을 가볍게 던진다. 대중들이 가장 익숙하게 부르고 듣는 토르트의 형식을 빌어서.




칠팔 년 전, 철학을 한 학기 공부한 적이 있다. 철학을 왜 낯설게 여기지 않는지, 왜 제대로 알지 못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꺼낸다.

배운 내용은 희미해져 이제 거의 기억하는 게 없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우리가 보는 것은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원동자 같은 것들. 당시에 중간과 기말에 시험을 쳤는데 긴 대학 시험용지에 억지로 외운 것들을 뜻도 모르고 적어냈다. 답안지를 보고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지금 생각하니 부끄럽기만 하다.  


비록 철학이란 학문의 문턱을 잠시 기웃거리다  돌아섰지만 이후에 나는 철학을 나와 관계없는 먼 세상의 학문으로 여기지 않았다. 철학은 인간을, 세계를, 삶을 일반 세상 사람들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학문이다. 근본 원리와 본질을 이성적으로 탐구한다.

철학은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몰려 갈 때,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사람을 이해하고 지지할 수 있게 하는 학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많은 사람들이 외출을 삼가고  집에 머물고 있다. 되도록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니 바깥을 보던 시선이 자연스레 안을 향한다.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일종의 철학 공부인지 모른다.


가톨릭에 '피정'이란 말이 있다. 평소 생활하던 곳을 떠나 조용한 곳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기도하는 일이다.

박완서 작가는 그의 작품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참척의 슬픔을 겪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을 때 이해인 수녀의  권유로 왜관 베네딕토 수녀원에 머물게 된 이야기를 한다.

외부와 차단된 그곳에서 박완서 선생은 기도했을까. 고대하던 하느님을 만났을까.

짐작컨그녀는 거울을 바라보듯 자신을 마주 봤을 것 같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지난 시간을 곱씹으며 세상과 신에 대한 분노, 미움을 쏟아내지 않았을까.

비워진 곳을 다시 채운 건 무엇일까. 선생은 과거의 추억, 사랑했던 느낌,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다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줬다고 말했다.

집에만 있다 보니 피정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 그런 건 아닐 것 같다. 산책하며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다들 분위기가 비슷하다.


오랫동안 나는 내가 꽤 용감한 사람인 줄 알았다. 요즘 들어 나는 내가 소심하고 예민하고 상처 잘 받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잘 웃고 유머러스하고 매사에 대충대충 건성인 나와 심각하고 진지하고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나는 같은 인물이다. 어떤 일에는 용감하고 어떤 일에는 겁이 많아 움츠러든다. 이런 양면성을 가진 게 나라는 걸 요즘 깨달았다.

'과거의 나'가 나인지, '현재의 나'가 나인지, 묻는다면 과거와 현재의 나가 모두 '나'다.

다만 버전만 다를 뿐. 


삶에는 방향을 결정하고 밀고 나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없고, 용기를 내어 돌진하더라좌절할 가능성이 높다.


나는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

그 방향은 나에게 적절한가.

어떤 면을 살리고 어떤 면을 주저앉힐 것인가.


-우울한 게 싫어서 좋은 것만 보고 들으려 해요. 불편한 소식은 애써 안 들으려 하죠.

며칠 전 지인이 말했다.

난, 그런 방법도 좋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반면 '꿈'에 대한 강연으로 인기 있는 스타 강사 김미경은 언택트 시대에 적응해 유튜브 환경 운동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자신의 장단점을 알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깨달아 알면 어떤 방식으로든 이 시기를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을 안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일찍이 겪지 못한 코로나 시대는 모든 걸 뒤흔들어 기존의 가치를 재편했다.

재택근무 같은 경우에는 십 년 걸려 이루어질 점진적인 개혁이 반년 만에 이루어졌다. 학교에서는 전자기기 사용이 능숙한 젊은 교사가 나이 든 교사의 멘토가 되는 역 멘토 현상이 일어났다. 연결고리 없어 보이는 토르트와 철학이 결합했다. 이 모든 게 특별한 시기가 주는 선물 같다.


길가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상의 정교한 짜임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세상의 모든 형상은 그것을 움직인 동력과 그 뒤에 본래의 목적이 있다. 그러고 보면 코로나 바이러스도 여러 요소가 원인이 되어 생겼고, 그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지금까지 진실이라 믿었던 것들이 플라톤이 말한 동굴에 비친 그림자일 수 있다. 일상의 모든 것들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지 말고 끊임없이 회의하고 사고해야 한다. 그림자 반대편의 실재를 보려 노력해야 한다.


나훈아는 소크라테스를 빌려 너 자신을 알라고 노래한다. 2천4백여 년 전 철학자를 불러내 거리낌 없이 '형'이라 부를 수 있는 나훈아의 감각이 놀랍기만 다.




#나훈아테스형

#대한민국어게인

#나훈아고맙습니다https://brunch.co.kr/@bronte/118


작가의 이전글 깨진 그릇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