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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attobroone Jul 28. 2021

재즈의 바탕에 클래식으로 풀어낸 서정

 쿨 재즈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 (Bill Evans)




빌 에반스의 독특한 피아노 주법

  피아니스트가 몸을 마치 피아노와 하나가 되려는 듯, 고개를 앞으로 쏟아지게 수그려 앉는다. 그는 ‘티라노사우르스’라도 된 듯 조심스레 손만 그대로 피아노 위에 얹는다. 피아노에서는 맑은 음색이 흘러나온다. 그는 눈을 감고 한 음 한 음 정성껏 연주한다. 왼손으로 단조를 연주할 때마다 아주 낮은 음의 드럼 소리가 곁들여져 심장을 울리는 것 같다. 이 곡은 마치 늦은 새벽 시간 비가 온 후 개어 아무도 없는 가을, 아파트 옆 도로를 차분하게 거니는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재즈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의 ‘Peace piece’다.



  그의 연주를 보고 있자면, ‘자유로움, 내성적, 파고듦, 결여, 다르게 가는 시간, 조심스러운 표현, 예술가, 혼자 핀 꽃 한 송이, 밥벌이’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한 올 한 올 그냥 눌리는 건반은 없다. 모든 음이 촘촘하게 짜여 전체를 완성한다는 점에서 조심스러우면서도 완벽한 표현이 보인다. 그에겐 다른 어떤 것도 들리지 않아 보인다. ‘그’ 만의 세상으로 인도하겠다는 듯, 눈을 감고 숙인 자세에서는 다르게 흐르는 타인의 시간을 엿보는 듯하다. 자유롭다. 서정적으로 흐르는 선율이지만 자유롭고, 동시에 정제되어 있다. 단조의 사용으로 슬픈 분위기가 연출되지만, 침울하기보다는 맑다. 서정과 연민, 두 가지 감정을 깊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내가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 가수 ‘박효신’을 생각나게 한다.



  빌 에반스(1929 ~ 1980)는 재즈계의 쇼팽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낭만주의 피아니스트들의 클래식한 화성을 재즈에 도입하여, 이후의 재즈 피아니스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화성은 운율이 규격화되어있기에 절제되고 정제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재즈의 ‘스윙’ (재즈에서 연주자의 느낌을 리듬감으로 표현하는 것을 뜻함) 은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든다. 그의 연주에서는 그렇기에 규율과 자유로움이 한데 엮여 정제되어 있으면서도 자유로운 서정성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서정 안에서는 시적인 차분함이 느껴진다. 동시에 슬픔과 연민이 느껴진다. 그 배경에는 그의 동료 연주자와 연인의 죽음, 친형의 자살로 불우한 인생을 살았던 그의 삶이 있다. 정신적 동반자였던 친형의 권총 자살 이후 1년 뒤, 그는 마약과 우울증을 비롯한 각종 합병증으로 인해 사망한다. 주변인들은 그의 죽음을 보고 가장 기나긴 자살과 같았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Nv2GgV34qIg


  예술가는 스스로를 표현한다. 그래서 가난하고 그래서 고고하다. 대부분 그들 스스로가 원하는 실험적인 것(Avant-garde: 전위 예술) 보다 그 시대 소비자와 대중의 입맛에 맞출 때 큰 돈을 번다. 우리는 그들을 ‘대중 예술가’라고 부른다. 밥벌이도 마찬가지다. 대체로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남을 만족시키는 일을 할 때 우리는 돈을 번다. 우리는 특히 남을 위해 사는 법에 익숙하다. 내가 느낀 우리나라의 교육은 ‘왜?’와 ‘내가 알고 싶은 것’에 대해 알아가는 공부가 아니었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적의 해를 찾는 연습이었다. 사유(思惟) 하기 위한 공부가 아니었다. 세상을 보는 관점(觀點)을 기르는 공부가 아니었다. 남과 달라지고, 남에게 인정받기 위한, 평가를 위한 공부였다. ‘더 안정적인 밥벌이를 위해, 부모의 욕심을 채워 주기 위해, 더 아름다운 여성과 사랑하기 위해…’ 하는 공부였다. 학업은 이미 스스로를 성장하게 만드는 방법이 아니라, 그 자체가 ‘수단’이 된 지 오래다. 



  우리는 스스로를 깎는다, 오늘도. 세상과 사회에 맞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나를 버리고 지워간다, 당신에게 필요한 내가 되기 위해서. 세상을 우리를 깎는다, 필요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언제부터 대학을 졸업하는 내게 남은 것은 차갑게 적힌 숫자와 희고 검은 한 장 이력서다. 돼지 등급 매기듯 찍힌 학교, 학점뿐이다. 자유롭게 사유하고 공부하며 못 다 핀 봉우리를 스스로 펴지 못한 채, 스스로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도 채 모르고 현실과 타협하고, 취업이라는 하나의 관문을 향해 달려가는지도 모른다. 온몸에 진흙을 쳐 바르고, 위선을 무기 삼아 살아남기 위해 가면을 쓴다. 돈, 명예,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게 된 것은 오래다. 단지, 옆의 친구보다 뒤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하고, 알량한 학벌 따위에 자기 위로하며 나보다 낮은 학벌의 친구를 보며 내가 저들보다 뛰어나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만족하며 사는 것 같다. 사회에서는 서로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구밀복검(口蜜腹劍)하며, 내 잇속 챙기기를 최우선으로 한다. 필요에 의한 관계로 피상적으로 살아간다. 벼랑 끝으로 떨어지는 이에게는 누구도 관심 두지 않는 차가운 세상에서, 그래서 더 강해야 하는 현실 앞에 타인에게 관대하기 어렵다. 스스로의 자유를 억압하고 오늘도 나는 밥벌이를 위해서 집을 나선다. 더 강한 내가 되기 위해 가식 하며 집을 나선다. 서로를 속이고 더 이상 진실은 중요하지 않은, 아니 어쩌면 그것이 진실인 세상으로.



  우리는 세계와 끊임없이 갈등한다. 그것이 나를 성장하게 한다. 맞춰가야 할 세계는 끊임없이 변하고, 그로 인해 나는 변화한다. 그리고 변화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시 적응하고자 애쓴다. 변화 속에 중심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내 삶은 달라진다. 




예술가의 작품은 그 삶의 꽃이다.
 
-모리스 드 블라맹크



https://www.youtube.com/watch?v=a2LFVWBmoiw

  다시 에반스와 재즈를 본다. 재즈는 자유롭다. 파격(破格)할 때 재즈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러나 완전한 자유는 방종이다. 수많은 재즈 연주자들은 마약과 방탕한 삶을 주체하지 못하고 죽었다. 완전한 자유로움과 정형의 괴리는 어쩌면 영원히 풀리지 않는 간극이다. 수준 높은 정형화 없이는 자유로움도 없다. 인간의 창의력은 ‘無’에서 비롯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클래식의 규율과 자유로운 재즈를 서정적으로 표현하는 그의 연주는 아름답다. 표현 방식이 정해져 있긴 하지만, 재즈에서 연주자의 주관과 예술성은 음악을 연주하는 그 순간에도 드러난다. 그래서 그가 연주하고 표현하는 것은 단순히 곡이 아니라 그의 인생이다. 사업가는 그의 업을 통해, 작가는 글을 통해, 그리고 연주자는 그의 연주를 통해 그들의 삶을 세상에 표현하고,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을 사유한다. 



  자유롭고 싶다. 누군가에게 쓰임이 있는 공부가 아니라 알고 싶은 것을 알기 위해 공부하고 싶다. 파격 하고 싶다. 누군가를 따라가는 것에 만족하는 삶이 아니고 싶다. 절제된 규율 위에 자유롭게 선율을 그려, 독창적인 삶을 살고 싶다. 나의 방식으로 세상에 표현하고, 소통하고, 사유하고 싶다. 취업이라는 단 하나의 쓰임을 위해 스스로를 깎고 싶지 않다. 다만 내가 변하는 것은 오롯이 ‘내 의지에 의해서’이고 싶다. 완전한 방종이 아니라 적절한 규율, 거기에 자율을 더해, 한 올 한 올 소중하게 음표를 엮어 누군가가 사랑하게 될 나의 인생이라는 하나의 곡을 멋지게 완성하고 싶다. 


  어느새 집중하고 있던 그의 고개는 더 이상 건반과 수평을 이루지 않는다. 반듯하게 허리를 세우고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표정은 신중하다. 눈을 감은 채, 집중한 듯 입은 굳게 다물고 오므리고 있다. 세션들은 모두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며 끝 음을 맞출 준비를 한다. 드디어 연주는 마지막 음을 향해 간다. 박수소리와 함께 조심스레 손을 내려놓는다. 그는 살며시 눈을 뜨며, 객석을 바라본다. 객석을 바라보는 순간에도 표정은 연주를 시작하는 처음과 같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은 반짝이지만 신중하고 단단한 표정이다. 다시 정면을 바라보고는 연주가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았는지, 스스로와 타협하지 않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곤 세션에게 수고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어선다.












참고자료 및 그림 자료 출처 :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18/11/699341/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gilberto95&logNo=221149018000

https://www.indiepost.co.kr/post/4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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