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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attobroone Jul 24. 2021

트럼펫과 함께한 위태로운 천재의 삶

<Born to be blue (2015)> 리뷰




그는 마지막 공연 이후 유럽으로 건너갔고, 
1988년 암스테르담의 작은 여관에서 추락사로 인생을 마쳤다.
죽는 날까지도 헤로인을 끊지 못했다고 한다.

Chet Baker, 제임스 딘을 연상시키는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쿨 재즈를 대표하는 뮤지션.



  쳇 베이커 (체스니 헨리 베이커 주니어, Chesney Henry Baker, Jr., 1929~1988.)는 쿨 재즈를 대표하는 재즈 뮤지션 중 한 명이다. 쿨 재즈는 1940년대 스윙 재즈나 핫 재즈 이후 부흥했던 재즈의 종류다. 쿨 재즈는 빠른 템포를 주로 하는 스윙이나 핫 재즈와는 다르게 느리고 차분한 음악이 특징이었다. 느린 재즈의 분위기는 도회적이고 감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쳇 베이커는 웨스트코스트의 인물로 쿨 재즈와 흥망성쇠를 같이 한 인물이다. 혹자는 음악적 시도 자체는 불충분한 그가, 많은 사랑은 받은 이유는 매력적인 외모와 쿨 재즈의 전성기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그의 인생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난잡한 여자관계와 마약 때문에 중년 이후 그의 커리어에서 음악적으로는 찾아볼 것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성기 시절,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자유로운 연주와 차분한 그의 목소리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특히, 느리고 차분한 목소리와 뒤이어 나오는 트럼펫의 높고 맑은 음 처리는 재즈를 처음 접하는 사람의 귀조차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영화 본투비블루



  Born to Be Blue (2015, 드라마/ 로맨스, 미국)는 쳇 베이커의 인생을 그린 영화다. 극 중에서 그의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 'Born to Be Blue'는 실제 '뮤지션' 쳇 베이커의 노래이기도 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마약과 난잡한 여자 문제는 영화에 잘 반영되어 있다. '에단 호크(극 중 쳇 베이커 분)'의 연기를 보는 재미, 또 다른 시대를 대표하는 뮤지션 '마일즈 데이비스'와의 관계, 쳇이 마약을 이겨내는 과정과 '제인'과의 러브스토리도 볼 만하다. 그러나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쳇 베이커의 실제 앨범 가사를 극 중 상황과 음악을 통해서 섬세하게 표현하는 몇 가지 장면을 위해서다. 


욕조에서 트럼펫의 기본음을 연주하는 장면.


  길거리 폭력배들에게 무참히 안면을 얻어맞고, 이빨이 대부분 부러져 악기를 연주할 수 없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욕조에서 트럼펫을 연주한다. 연주할 때 입 속의 압력으로 인해 찢어지고 빠지는 이빨과 피를 뱉어가며, 제대로 연주할 수 없는 트럼펫의 기본적인 음을 연주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다. 남과 다른 천재성과 우울이 함께하는 그의 삶에서, 누구도 옆에 있지 않고 이뤄놓은 모든 것이 무너졌을 때, 그가 가진 가장 순수한 열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 하나 '연주하는 것'이다. 약을 끊고 예전의 기량을 되찾게 되면서, 이후 영화에 등장하는 노래들은 그의 감정과 영화의 상황에 점점 더 잘 들어맞는다.


아무것도 없는 그 옆에 남아준 '제인'과 그녀를 위해 노래하는 쳇. 삽입된 노래는 'Chet baker - My funny Valentine'


  쳇을 이용하기만 했던 그의 삶에서 만난 다른 여자들과는 달리, 어려울 때 옆에서 마지막까지 함께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 '제인'에게 바치는 'My funny Valentine'을 노래하는 씬은, 또 다른 명장면이다. '게으른 천재'에서 '노력하는 천재'가 된 쳇에게 전설적인 아티스트와 프로듀서들 앞에서 공연하며 녹음하게 되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는 아버지에게 처음 받은 '밸브 링'(트럼펫의 부품으로 쳇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물건)을 선물하며 청혼한, 제인을 위해 노래를 시작한다. 

 

Chet baker - My funny Valentine


My funny valentine Sweet comic valentine
You make me smile with my heart
Your looks are laughable Unphotographable
Yet you're my favorite work of art  
Is your Figure less than Greek?
Is your mouth a little weak?
When you open it to speak
Are you smart?  
But don't change a hair for me
Not if you care for me
Stay little valentine stay
Each day is Valentines day

  

  쳇의 노래와 흰색 드레스를 입은 제인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노래 뒤에 이어 나오는 공간을 찢는듯한 맑은 트럼펫 소리가 인상 깊다. 값 비싼 보석 반지나 목걸이를 선물할 수도 없고, 약에 빠져 인생을 허우적대는 그 이지만, 그녀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건 트럼펫과 목소리에 진심을 담아 표현하는 쳇이었다. 그렇지만 이후 이어지는 장면에서 버드랜드에서 공연이 성사된 후, 그녀에게 중요한 오디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버드랜드에 같이 가자고 졸라대는 그의 모습 역시 영화 내내 보여준 철없는 쳇의 모습이어서 웃음이 나왔다. 


헬로 디지, 헬로 마일즈, 웨스트코스트의 풋내기가 너희를 잡아먹어 주마.

영화의 마지막 장면, 곡 정보는 'Chet baker -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


  버드랜드에서 쳇의 마지막 공연은 다시 제목으로 돌아오게 만든다. 버드랜드에서의 공연 직전, 쳇에게는 마약 치료용 약물이 모두 떨어진다. 프로듀서이자 오랜 비즈니스 파트너 '딕'은 서둘러 치료용 약물을 구하러 나가지만, 딕이 돌아왔을 때 쳇은 이미 헤로인을 꺼내놓고 준비하고 있다. 딕은 그에게 모든 결정을 맡기고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간다.


  "여긴 아직 너 같은 애송이에게는 너무 버거워, 인생 더 살아보고 와라 애송아"

라는 말을 들었던 마일즈의 앞에서 연주하는 지금의 쳇은, 예전의 쳇보다 서투른 연주지만 자신의 색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전성기 시절 그 이상이다. 어느새, 오디션 때문에 오지 못한다던 제인도 입구 좌측에서 딕과 함께 공연을 감상하고 있다.


Chet baker -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
Now all at once it's you
It's you for evermore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
I thought my heart was safe
I thought I knew the score
But this is wine
It's all too strange and strong
I'm full of foolish song
And out my song must pour
So please forgive this helpless haze I'm in
I've really never been
In love before
But this is wine
It's all too strange and strong
I'm full of foolish song
And out my song must pour
So please forgive this helpless haze I'm in
I've really never been
In love before


So please forgive this helpless haze I'm in. 



  "무력하게 껴안은 이 몽롱함을(So please forgive this helpless haze I'm in)" 대목에서, 그가 투약한 건 치료용 약물이 아니라 헤로인임을 알 수 있다. 그가 약을 했음을 보자마자 알아챈 제인은 그가 청혼할 때 선물했던 '밸브 링'을 딕에게 건네준 뒤, 쳇에게 전해주라는 말을 남기고 버드랜드를 나간다. 그리고 영영 그를 떠난다. 어쩌면 그의 인생에서 다시없을 버드랜드에서의 공연에서, 최고의 연주를 위해 그녀가 떠나갈 것을 알고도 헤로인에 손은 대는 그의 마음은 영화의 제목인 'Born to Be Blue' 그 자체다.  

   영화는 버드랜드에서의 마지막 공연으로 끝이 난다. 그의 인생은 곧 'Blue'이자 (재즈) 연주이다. 실제 그의 인생에서 '제인'과 같은 여자는 없었다고 한다. 어쩌면 너무 이른 나이의 성공 때문에 스스로를 연주가 아니라 다른 것에 물들게 했는지 모른다. 혹은, 연주에 대한 순수한 사랑 그 자체로 더 높은 경지에 이르기 위해 마약을 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영화는 그의 연주에 대한 사랑과 여자, 마약에 대해서 초점을 맞췄다. 그가 진짜 그런 삶을 살았는지와는 별개로 적어도 대중의 인식과 실제 그의 삶이 적절히 결합된 영화였다. 다만, 중반에 늘어지는 전개는 내용이 없어 지루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전술(前述) 한 두 장면만 빠져들어 볼 수 있다면 충분한 영화이다.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재즈를 좋아하고, 쳇의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P.S. 영화를 보고자 한다면, 영화에 등장하는 쳇 베이커의 노래들을 먼저 들어보고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영화를 감상한 이후에 들어도 좋다. 

https://www.youtube.com/watch?v=flRDnTaotb0




그림 및 사진 참고자료 출처 :

https://www.messynessychic.com/2018/09/13/who-was-chet-baker/

https://celiamour.tistory.com/69 

https://lee-nerd.tistory.com/entry/%EB%B3%B8%ED%88%AC%EB%B9%84-%EB%B8%94%EB%A3%A8-BORN-TO-BE-BLUE-2016

https://www.fotogramas.es/noticias-cine/a13850699/ethan-hawke-canta-my-funny-valentine-en-el-trailer-de-born-to-b e-blue/

https://hes212.tistory.com/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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