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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attobroone Mar 13. 2022

복수의 상징으로 박쥐를 선택한 왕자

<THE BATMAN(2022)> 리뷰 


씬시티, 모범시민, 더 이퀄라이져 그리고...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더 배트맨 (2022)> 포스터


DC의 영화가 조커 이후로 확실한 콘셉트를 잡았다. 종전의 많은 마블 영화들이 히트를 쳤지만, 전작의 DC의 영화들은 마블 영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슈퍼히어로 영화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는 현실적이고 음울한 DC 영웅들 특유의 매력을 살리지 못했던 연출 때문이다. 영화 속 마블 영웅들의 모습은 대체로 밝고, 가치 중심적이며, 말 그대로 정의로운 영웅들이다. 그들에게 던져진 상황조차도 세계 평화와 지구 수호와 같은 거대한 정의를 구현하는 과정을 담는다. 영화 속 대부분의 고민은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의 문제이지 개인의 가치관과 철학적인 고민 같은 것은 잘 다뤄지지 않는다. 따라서 '정의(正義)'에 대한 정의(定義) 같은 철학적 물음과 그것을 구현하는 스케일의 차이는 대표적 마블의 작품과 대표적 DC작품의 차이이다.

DC진영의 영웅들 중에서도 이런 성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웅은 '배트맨'이다. 영웅적 행동을 하는 이유도 그의 과거의 개인적인 원한에서 기인하고 있고, 그가 영웅적인 행동을 하는 범위도 도시를 기준으로 한다. 그가 싸우는 악은 다름 아니라 도시 내의 범죄자라는 점에서 현실적인 악과 싸우고 있는 히어로다. 올 상반기에 개봉한 DC의 '더 배트맨'은 이런 매력을 십분 보여주는 작품이다.




<씬 시티 (2005)>  포스터


  영화의 배경을 보여주는 모습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씬 시티(2005)'였다. 암울한 도시의 분위기는 영화 전반을 아예 흑백& 만화적으로 보여주는 씬 시티의 연출이 생각나게 하는데, 이런 도시의 모습은 약 3시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영화 전반에 흐르고 있다. 작은 문제나 사소한 일도 넘어가는 법이 없고, 작은 도시 내의 경범죄부터 도시의 큰 대소사까지 부정부패와 범죄가 만연해 있다. 초반 장면에서 보여주는 도시의 다양한 경범죄를 일으키는 범죄자들이 하늘에 떠있는 배트맨의 사인을 보고 도망가는 장면은 특히 도시 내에서 그의 입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특히 이를 대표하는 씬인 후미진 지하철 역에서의 장면은 영화 '조커(2019)'를 생각나게 한다. 전작인 조커에서는 지하철에서 얻어맞은 조커가 그들을 죽이면서 첫 범죄자로 거듭나는데, '더 배트맨'에서 얼굴에 반만 그림을 그린 소년이 범죄자로 거듭나려 하는 순간 배트맨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범죄자들에겐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배트맨의 공포와 그가 정의를 실현하는 그 만의 방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첫 신이다.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 (2005, 2008, 2012)>  포스터


  'FUXXING Vigilante?' 아직 무르익지 않은 작중 배트맨의 위치를 보여주는 단어다. 이 점은 이번 작에서 '놀란의 배트맨 3부작(배트맨 비긴즈 2005, 다크 나이트 2008, 다크 나이트 라이즈 2012)'에서 '크리스찬 베일'이 보여주는 배트맨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크리스찬 베일의 배트맨은 인격적으로나, 일 처리에 있어서 '완벽'에 가까운 인간이다. 낮 시간 동안에 업무적으로도 완성형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며, 고든 형사와 공조함에도 사실은 공조가 아니라 완벽한 자신의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라지거나 필요한 정보를 교환한 다음 사라져 버리는 모습은 업무적으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대하는 모습에 가깝다.) 또, 그가 성장하는 과정은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는 비밀조직 등에서 교육받았기 때문에 완전하지 못한 모습은 대외적으로는 나타나지 않았다. 즉, 그의 배트맨은 '해결사'이다. 작중에서 그가 나타나면 모든 상황은 종료되고, 괴물 같은 배트모빌이나 글라이더를 타고 멋지게 빠져나간다.


브루스 웨인 (로버트 패틴슨 扮)


  반면 '로버트 패틴슨'의 배트맨은 다르다. 개인의 신분으로 경찰과 공조하고 캣우먼과 공조수사를 하는 그는 아직 완숙하지 않은 영웅이다. 자신의 정의를 실현함에 있어서 개인적인 감정이 앞서 여자 앞에서 약하기도 하고, 대체로 번뜩이는 추리력을 보여주지만, 수사가 틀리기도 한다. 자신을 가슴으로 낳아 기르는 알프레도에게 철없는 소리나 하고, 본업은 태만하며 자경단 활동에 열중한다. 또, 아직 그 이름이 완전히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경찰과 범죄자들에게 '넌 뭐야?' 이런 소리나 듣기 일쑤다. 한 마디로, 아직 영웅으로는 완전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자경단'에 가깝다. 영웅으로의 활동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그는 '비련의 왕자님'이다. 이 표현은 아직 그가 그로서의 정체성을 갖추지 못하고, 대외적인 시선으로는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영화 중반에서 과거 고담의 역사와 부모님의 과거를 알게 된 뒤 본인의 정체성과 영웅적인 모습이 흔들리는 것은 아직 바로 선 '배트맨 자신'의 모습이 없기 때문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다. 또, 영화 후반부 이성을 잃고 범죄자의 안면을 구타하는 장면은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장면이다. 즉, 작 중에서 그는 완전한(perfect) 영웅이 아니라 애쓰는(struggle) 영웅이다.



배트맨 포스터, 극중 리들러의 정체는 비밀이다.


*다음 문단에는 스포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와 대적하는 '더 배트맨'의 악역 '리들러'는 섬뜩하지만 두려운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팔코네가 더 기억에 남았다. 리들러는 머리도 좋고, 영화 내내 배트맨을 가지고 놀듯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존재이다. 그렇지만 그는 악역으로서 주인공의 호적수라기보다는, 배트맨의 서사와 세대교체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고 느껴진다. 결국 리들러의 범죄 동기는 인간 '브루스 웨인'에 대한 질투심과 비루한 자신의 모습에 대비해 본인을 신격화하고 싶은 개인의 욕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가장 그를 '찌질한' 악당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즉, 리들러는 현실적인 면모에서는 팔코네에 비해 미숙하다. 그리고 개인적 차원에서는 조커에 비해 그 광기가 덜하다. 그래서 팔코네는 죽어야 했고, 임팩트는 조커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놀란의 조커'는 달랐다. 이렇게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완성된' 배트맨을 고통스럽게 하고, 비록 전투에서는 졌지만 그가 실현하고자 하는 그의 정의 실현에 뿌리를 흔들어 전쟁에서는 이긴 인물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들러는 참 현실적인 빌런이다. 현실에서 대부분 '놀란의 조커' 같은 혼돈 그 자체이면서도 비상한 인물은 없다. 그러나 리들러 같은 유사 인물은 있을 것 같다는 점, 그의 범죄 동기도 있을 법하다는 점, 그가 범죄에 사용하는 SNS를 이용한 방식,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을 범죄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점, 납치하는 방식도 무척 현실적이라는 점이 특히 그렇다. 또, 리들러 역을 맡은 배우 '폴 다노'의 순둥 하게 생기면서도 변태적일 것 같은 외모와, 사이코패스의 모습을 잘 표현한 연기력이 특히 인상 깊었다.






더 배트맨(2022)는 사운드트랙이나 영상미가 특히 볼 만하다. 감독의 디테일이 느껴진다.


생각나는 몇 가지  처음 지하철의 어둠 속에서 나오는 , 펭귄과의 추격신 이후 불길 속에서 나오는 신,  캣 우먼과 공동묘지에서부터 바이크를 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각자의 길을 가는 신, 홍수가 난 건물 안에서 조명탄을 켜고 가장 앞장서서 걸으며 상황을 헤쳐가는 장면 기억에 남는다. (감독은 이 장면에서 영웅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본인의 결함을 뛰어넘어 남들보다 앞서 걸으며, 용기와 희망을 주는 존재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 부분은 특히 앞서 말한 특별함에 비해 노력하는 영웅인 로버트 패틴슨의 배트맨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완전한 암전 속에서 총구의 빛만 보이며 총든 팔코네의 부하들을 상대하는 신은 특히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를 생각나게 해 배트맨의 위엄을 보여주는 데에는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다.


긴 러닝타임은 제대로 배트맨을 그리기에 충분했지만, 관람객 입장에서는 다소 부담스러운 시간이다. 아무래도 러닝타임이 길기 때문에 관객의 피로감이 있다. 다른 영화 같았다면 작중 '펭귄(오스왈드 코블팟 扮)'과의 추격신 이후 끝났을 서사가 팔코네까지 잡으러 간다. 이때, '또 잡아? 도시 악당 다 소탕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건 비밀...



영화는 전형적인 히어로물이라기 보다는 현대판 누아르물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드라마 같은 연출로 배트맨의 어두운 면은 더욱 강조되어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흐르는 음악과 테마곡이 장면마다 적절하고, 각 신들의 영상미가 상당히 있어서 긴 러닝타임이 지루하지는 않다. 전반적인 구성이 짜임이나 완성도가 있으며, 속편을 염두에 둔 '부르스 웨인'의 배트맨으로의 성장기라는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 상당한 수작이고, 제작 방법이나 영상미, 테마곡 등에서 신경 쓴 느낌이 많이 들고, 상술했듯 일반적인 히어로 상업영화보다는 음모론, 범죄 누아르에 더 가까운 영화다.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 '컨스피러시', '모범시민', '더블 타깃', '씬 시티', '이퀄라이져 시리즈', '맨 온 파이어' 보다는 가볍지만 이와 유사한 범죄 누아르를 좋아하고, 배트맨이라는 IP를 소비하고 싶은 관객. 브루스 윌리스, 러셀 크로우, 조지 워싱턴, 벤 애플렉, 덴젤 워싱턴이 나오는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면 추천하고 싶다.



알프레도 役 (앤디 서키스 扮), 짐 고던 役 (제프리 라이트 扮)


*PS.

고던 형사가 흑인이라는 점도 원작과 놀란의 배트맨과는 다르고, 알프레도 역으로 나오는 배우(앤디 서키스 扮)는 아이러니하게도 '블랙 팬서'와 '어벤저스'의 용병 악역이자 '비브라늄'을 훔치는 '율리시스 클로'이다.

영화 내내 나오는 "나는 복수다. (I'm vengeance)"라는 멘트는 듣는 사람에 따라 다소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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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배트맨 (2022)

감독 : 맷 리브스

러닝타임 : 176분 (3시간 - 4분)

주연 :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154282



그림 및 사진 자료 출처 :

<더 배트맨 (2022)>  포스터, 제작 DC필름스, 배급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출처 워너브라더스 홈페이지

<씬 시티 (2005)>  포스터, 제작 트러블메이커 스튜디오, 국내 배급 쇼이스트, 출처 쇼이스트

<모범 시민 (2009)>  포스터, 제작 필름 디파트먼트 외, 배급 오버추어 필름, 출처 오버추어 필름

<맨 온 파이어 (2004)>  포스터, 제작 스콧 프리 프로덕션, 국내 배급 20세기 폭스 코리아, 출처 20세기 폭스 코리아

<더 이퀄라이져 (2014)>  포스터, 제작 이스케이프 아티스트, 배급 컬럼비아 픽쳐스, 출처 컬럼비아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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