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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e Feb 29. 2016

달라이 라마, 과학과 만나다

불교와 첨단신경과학의 만남

현대 영미철학(혹은 분석철학)의 분포도를 대략 나열해 본다면 언어철학, 심리철학, 과학철학, 논리철학, 수리철학, 생물학의 철학, 인지과학 등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중에서도 언어철학과 심리철학, 과학철학은 영미철학을 대표하는 핵심 분야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렇게 다양한 분야를 '영미철학'이라는 말로 포섭하고 있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언어'이다. 영미철학의 창시자들이 공통적으로 깨달은 것은 철학의 문제는 곧 언어의 문제라는 것, 언어의 혼란이 사라지면 철학의 문제도 사라진다는 것이 프레게나 레셀,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이었다.

 영국의 철학자 길버트 라일은 <마음의 개념>에서 우리가 개념화하고 실체화하는 심리현상도 사실은 적절한 언어적 표현으로 환원이 가능하고 그렇게 되면 심리현상이라는 유령은 사라진다고 하였다. 즉, 라일에 따르면 심리현상도 결국엔 그것의 존재론적 지위를 다루는 언어의 문제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심리철학에서 다루는 것이 이런 양상이라면 언어철학은 형이상학, 혹은 존재론의 입장에서 언어가 어떻게 존재의 문제를 다루는지, 그것들의 의미론적 문제나 지칭적 문제에 어떤 난점들이 있는지를 다룬다. 이렇게 탐구되는 모든 것들의 중심엔 결국 '언어'가 있고 여타의 분야에 있어서도 추론과 논증에 따르는 형이상학적 문제나 인과적 설명의 문제가 그 중심에 놓여 있다. 이렇게 본다면 영미철학의 모든 관심은 철학이나 과학에서 비롯되는 개념과 현상에 대한 언어적 환원, 설명, 논증 따위의 문제로 귀착된다.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을 비판하는 길버트 라일의 견해와 비트겐슈타인의 사적 언어논증 개념 등으로부터 심리철학의 초기 테제가 형성되었고 현대의 (강한) 물리주의자들은 바야흐로 정신이니 의식이니 하는 것들은 두뇌활동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으며 두뇌의 스위치가 꺼지면 의식이나 정신, 심지어 자아의 스위치도 꺼지는 것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물리주의자들의 견해는 첨단 MRI 장비를 이용하여 두뇌활동을 탐색하는 신경과학자들에게는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심장이나 간과 다르지 않게, 두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있어 두뇌가 의식이나 마음의 고향이니 운운하는 것은 일종의 비유나 은유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입장으로 무장한 과학자들과 철학자가 현존하는 최고의 불교 지도자와 만나면 어떤 대화가 오갈 수 있을까.

이 책은 달라이 라마와 서양의 저명한 신경 과학자, 철학자가 만나 벌인 지적 향연을 일종의 대담집으로 엮은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달라이 라마가 얼마나 열린 사고의 소유자인지를 깨닫게 된다. 또 달라이 라마와 대화를 이어가는 신경과학자, 철학자를 통해 최신의 신경과학 동향과 심리철학자들의 주된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


위에서 상술한대로 이 책에 등장하는 신경과학자들과 철학자는 물리주의적 입장을 견지하는 사람들이다. 즉 두뇌는 정신이나 영혼, 자아의 고향이라고 은유적으로는 표현하는 것과는 별도로, 그것들은 두뇌로 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실체는 아니라는 것, 그것들은 두뇌활동의 부산물이거나 적어도 결과라는 것, 따라서 두뇌가 없는 상태에서 영혼이니 자아니, 의식이니 하는 것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달라이 라마는 윤회의 문제를 거론하며 육체(두뇌)와 무관한, 윤회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 의식의 흐름은 존재한다고 답한다. 하지만 대승불교도답게 달라이 라마는 영속적이고도 실체적인 '자아'나 '영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부언하자면, 불교의 이러한 주장은 삼라만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삼라만상에 내재하는 고유한 본질이나 속성이라고 말 할 만한 것들이 없다는 것이다. 모든 존재들은 연기적 존재, 인과적 존재, 사건으로서의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그것들의 속성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無常).모든 것은 다만 현상(apperance)으로 존재할 뿐 그 현상의 배후에 불변의 실체가 있다고 말 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은 항상 변해가는(生住異滅) 와중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유로 불교에서는 모든 사물(의 본성)이 공空하다고 한다. 이것이 대승불교(반야사상, 중관철학)의 핵심적 관점이다.


이 지점, 즉 고유하고도 실체를 지닌 자아 따위는 일종의 허깨비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면에서 불교와 현대의 신경과학, 물리주의적 심리철학은 의견의 일치를 이룬다. 여기서 우리는 경험주의 전통의 위대한 철학자 D. 흄이 자아란 '관념의 다발(Bundle of Idea)'에 불과하다고 했던 것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거기까지이다. 과학자들의 불교에 대한 무지와, 마찬가지로 신경과학에 대한 달라이 라마의 무지, 여기에 통역의 문제까지 결부되어 이들의 논의는 더 깊이있게 나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만해도 엄청난 성과임에는 틀림없다.

심리철학과 불교철학의 공통점은 바로 '마음'을 탐구의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심리철학이 첨단 신경과학의 성과들을 받아들여 그 철학적 깊이와 넓이를 더해가게 되면 불교와의 대화 또한 더욱 넓고 깊게 이루어질 것이다. 일부 불교 호교론자들이 양자역학등 최신 물리학의 성과들을 비유적으로 이용하여 반야심경등을 해설하기도 하지만 그런 논의들의 철학적 깊이에 대해서는 좀 더 숙고가 필요하다.

달라이 라마는 깊은 통찰력으로 과학자들과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는 철학자나 사상가가 아니라 수행자이다. 수행자답게 달라이 라마는 이 책의 말미에서 불교수행의 본질은 자비심을 얻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끝으로, 번역자가 철학을 전공한 탓에 대체로 무난한 번역이었으나 진화생물학에서 사용되는 '선택압(selective force)'이란 용어를 '선택력'이라고 번역한 것이나 (아마도) '물리주의'라고 번역해야 할 것을 '물질주의'라고 번역한 것은 사소한 문제로 치부해도 괜찮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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