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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e May 17. 2016

한국문학이 해냈다고?

노노노, 한강이 해낸것 뿐이다

한강이 쓴 소설 <채식주의자>가 결국 맨부커상을 받았다. 대략 뉴스의 헤드라인을 살펴보니 어김없이 '한국문학의 쾌거'라는 기사가 올라왔다.


우리는 오랫동안 저 짓을 해왔다. 개인의 영광을 국가의 이름으로 가로채는 짓을.


라면을 먹으며 달리기를 했고 상을 받았더니 '대한의 딸'이라고 추켜세웠다. 뭐가 제일 먹고 싶냐고 물으니 그녀는 '우유'라고 답했다. 국가는 고사하고 심지어 (가난한) 가족조차 그녀에게 해준게 없다. 그런데도 그녀는 대한의 딸이 됐고 영예를 조국에 바쳐야만 했다.


김연아도 마찬가지다. 발에 맞는 스케이트를 구할 수 없었고 그걸 감당할 경제적 형편도 되지 않았다. 일반인들이 실컷 놀고 돌아간 (다 망가진) 빙판에서 밤늦게 연습해야 했다. 그러는 동안 아사다 마오는 자신만의 전용 링크에서 여왕처럼 연습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국가가 그녀에게 해준게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그녀는 영예를 국가에게 바쳐야했다. 아니, 알아서 국가가 영예를 채갔다. 역시 '대한의 딸'이라는 명목으로.


조국이 나를 낳았다면, 그래서 내가 대한의 딸이라면 조국은 나를 먹이고 돌보아야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돌본건 나의 부모이고 나 자신이다. 조국이 나에게 한 일은 세금을 걷어간 것 뿐이다.


물론, 내가 이 영광을 조국에 바칠 수는 있다.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이 영광을 바치듯이. 하지만 조국이 스스로 이 영광을 가져갈 근거는 없다. 그건 일종의 강탈이다. 언론이 크게 기여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심지어 국가는 싸이에게는 훈장을 수여함으로써 싸이를 국가 앞에 무릎 꿇게했다. 개인의 사적인 성공을 국가의 업적으로 완벽하게 승화시킨 아주 특이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미국사람 그 누구도 마이클 잭슨을 '자랑스런 미국의 아들'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싸이가 훈장을 받을 정도면 마이클 잭슨은 훈장으로 집을 지었겠다. 이건 싸이가 훈장을 받은 일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판단은 별도의 문제다.)


한강은 한국(문학) 대표로 소설을 쓴 것도 아니고 그녀의 소설이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기에는 문학이 다루는 것들이 너무도 개별적이다. 한강의 문제의식은 지극히 사적인 것이고 소설은 그 결과일 뿐이다. 물론 '폭력과 인간성의 탐구'라는 그녀의 소설의식이 문학적 보편성을 띠고 있음은 맨부커상이 입증했다. 그렇지않다면 지구 반대편에서 그녀에게 상을 줄 리가 없다. 철저한 개인의식은 훌륭한 보편성의 출발이라는 평범한 인식을 또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다. 


그러니 부디 한국(문단)은 해준 것도 없으면서 한 개인의 영예에 편승하려는 짓 따위는 하지 말길 바란다. 언론도 상투적 인식을 버리길 바란다.

김연아의 은퇴 이후로 한국 피겨스케이팅 수준은 국제적으로 하위권 수준으로 돌아갔다. 그게 원래 수준이다. 번역의 문제는 제외하더라도 한국문학은 그 담당자들의 수준과 의식을 볼 때 결코 세계적 수준이라고 떠들 정도는 아니다. 설령 한강이 세계적 수준의 작가이고 몇몇 작가가 그런 수준이라고 하더라도 그게 한국문학이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건 절대 아니란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유치하고 조잡한 표절문제 하나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뛰어난 작가에 묻어가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채식주의자>를 번역했던 데보라 스미스조차 '한국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접근하면 안된다. 뛰어난 몇몇 작가들에 집중해야한다'고 말했다.


한강에게 축하를. 거기서 그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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