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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e May 12. 2016

어떤 풍경들, 혹은 부처님 오신날

죽음에 관한 몇 개의 장면

#1
열려진 커튼 틈으로 가늘고 창백한 발이 보였다. 얼마 후 중년의 여자 하나가 달려오더니 커튼 틈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아이고 아부지"하는 오열이 터져 나왔다.

열에 들뜬 아기가 엄마 품에 안겨 몇 시간째 칭얼댔고 눈을 감고 있는 노인 옆엔 모니터가 달린 조그만 기계가 사인파 곡선을 그리며 비프음을 냈다. 젊은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분주한 걸음으로 병상의 환자들과 컴퓨터 사이를 오갔다.


커튼 너머, 죽어서 떠난 누군가의 병상에 다시 누군가가 눕혀졌다. 피범벅인 초로의 남자였다. 술냄새가 진동했다. 젊은 인턴과 간호사가 커튼을 치고 들어갔다. 남자를 데려온 구급대원은 간호사에게 무슨 설명을 했고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발을 굴렀다. 응급실 출입문 밖에선 같이왔던 구급대원이 담배를 피웠다. 그가 담배를 다 피워갈 무렵 또다른 앰뷸런스가 당도했다.


#2
수북한 국화 틈에서 망자는 웃고 있었다. 절을 마치자 와줘서 고맙다며 상주가 아이들을 소개했다. 물러나 소줏잔을 들이킬 때 상주가 맞은 편에 와서 앉았다.

사슬에서 풀려난 듯 상주는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오랜 병수발의 질곡이 끝났다는 뜻일까. 하지만 사슬에서 풀려난 것이 망자인지 상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인접 상가에서 찬송가가 들려왔다. 이승의 요단강이 저승에도 있는지, 이승에서는 이별이지만 저승에서는 해후가 있을 것인지 내 머릿속은 아득했다. 산 자들은 먹고 마시다가 시간이 되면 분분히 일어섰다. 늦은 시간의 상가는 고요했고 유족들이 모여 음식을 먹으며 잡담을 했다. 뛰어다니던 아이들은 구석에서 잠이 들었다.


#3
화장장은 북새통이었다. 망자들은 화덕에 누워 마지막 육신을 태웠고 산자들은 식당에 몰려가 밥을 먹고 이빨을 쑤셨다. 망자의 육신이 한줌 재로 돌아오자 산자들은 또 오열했다.

이 하얀가루가 나의 아버지였고 나의 어머니였나. 이 하얀가루가 사랑을 했고 나를 낳고 먹였나. 이것은 본래 무엇이었고 이후엔 무엇이 되나. 아무리 들여다봐도 알 도리가 없었다. 일대사 인연 운운하던 성인들의 가르침이 모두 거짓처럼 느껴졌다.


마지막 산골(散骨)터로 향하는 버스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파란 하늘엔 뭉개구름이 부풀었다. 집에 우두커니있을 멍멍이 얼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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