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rowne Jul 01. 2016

종교를 창시한 후배에게 주는 글

종교창시연구소장으로부터

K군에게


그토록 오랜 수행과 방황을 거쳐 드디어 자네가 종교를 창시했다니 늦게나마 축하를 보내네. 그간 자네의 열정과 수행과정을 보건데 나는 자네가 훌륭한 교주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네. 그러니 나에게 조언을 해달라는 자네의 청은 부당한 것임에 틀림없지만 거듭 자네가 요청하니 아래의 몇 마디로 갈음하겠네.


먼저, 자네는 그간 예수나 부처도 미쳐 발견하지 못한 우주와 인생의 참된 비밀을 깨우쳤다고 주장해야 할 걸세.

그 비밀은 절대로 종말론적이어야 하지만 또한 대단히 희망적이어야하네. 물론 그 희망의 중심은 자네여야 하겠지. 그리고 거기에 자네가 우주적 존재와 수시로 소통한다는 사실도 덧붙이길 비네. 물론 그 우주적 존재는 자네가 아닌 다른 존재와도 소통하는 멍청한 짓을 해서는 안되겠지.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과정이 유치하거나 과장되어선 안된다는 점이네. 자네의 오랜 수행과 제세구민의 고상한 목적을 강조하게. 어느 정도 교세가 확장되면 커다란 체육관을 빌려 대형 집회도 해야 할 걸세. 병든 사람들을 그 자리에서 고치는 퍼포먼스 정도는 당연히 곁들여야 하겠지. 그 방법은 자네도 잘 알 것이니 여기서 내가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다고 믿네.


자네의 가르침을 하나의 교리로 체계화할 때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의 모호함과 명료함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점이네. 그래서 그 안에서 어떤 모순이 발견되더라도 다르게 해석될 가능성이 열려있어야 하네. 물론 그 해석의 권한 또한 자네에게만 있어야겠지. 자네 주장의 독특함과 우월성, 종말에 대한 예언과 윤리적 요소들을 적당히 섞으면 교리는 그럭저럭 완성되는 것이네. 자네가 문학에 약간의 소질만 있다면 금상첨화겠지. 독특한 주장이 많을수록 위험성과 매력도가 함께 올라간다는 것을 잊지말게. 교리도 차츰 발전하는 것이니 처음 출발할때는 소박하고도 상식적인 내용으로 시작하게.


나는 그 무엇보다 자네가 도덕적이길 바라네. 지금까지 말한 것들은 사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기존의 종교에 있어서도 다 비슷한 것일세. 그러므로 자네 종교의 성패는 교리의 심오함보다는 자네가 보여주는 삶의 태도, 조직을 경영하는 능력, 사회에 대한 긍정적 영향력에 좌우될 것이네.

교리가 좀 황당하더라도 자네가 충분히 도덕적이고 조직관리에 사심만 없다면 자네의 종교는 최소한 밥은 먹을 수 있을 걸세. 만약 거기에 '건강한 가정 만들기' 같은 사회운동이라도 곁들인다면 자네라고 성공하지 말란 법이 있겠나. 신흥종교는 말할 것도 없고 기성 종교에 있어서도 얼마나 많은 종교인들이 부패와 탐욕으로 자신을 망쳤는지 깊이 연구하길 바라네.


이상 두서없는 말이었으니 크게 신경쓰지는 않기를 바라지만 거듭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가르침의 내용보다는 인품과 성실성이 성공을 보장한다는 사실일세. 최소한 돈과 여자만 조심해도 신세를 망치지는 않을 걸세. 끝으로, 유력 정치인들과 판검사 몇 명쯤 후원하는 것도 잊지말게.


이만 건승을 비네.

매거진의 이전글 사실로서의 세계, 혹은 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