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게 오해
1859년에 출간된 <종의 기원>이 인류에게 던진 충격은 아직도 온전히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첨단 유전학이나 인접 학문들(고생물학, 지질학 등)의 발달은 다윈의 발견이 의심의 여지가 없는 과학적 진실임을 입증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더 나아가 자기가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그것이 과학이 아니라고까지 주장한다.
내가 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화론의 골자를 전혀 모르고 있거나,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다'는 식으로 전혀 엉뚱하게 알고 있거나(차라리 모르는게 낮지), 결국 이를 근거로 진화론은 불완전하거나, 가설이거나, 심지어 엉터리라고 믿고있다. 하지만 진화론이 참된 과학임은 현대의 생명공학, 물리학, 수학, 통계학, 지구과학 등등이 입증한다.
<종의 기원>이 출간되고 당시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오해되고 있는 개념 하나만 생각해보자. 다윈이 발견한 것을 네 글자로 요약하자면 그것은 바로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다. 진화론이란 말은 잊어도 좋지만 '자연선택'을 잊으면 안된다.
적자생존(suvival of the fittest)이란 말은 자연선택을 부언하는 개념쯤으로 이해하면 되는데 이 개념으로부터 진화론에 대한 뿌리깊은 오해가 시작된다.
간단히 말해 적자생존은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것, 더 나아가 그것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지금도 오해받고 있다. 진화론이 나치의 우생학이나 제국주의 침략의 근거로 악용된 연원도 이 오해에서 비롯한다. 그토록 간단한 개념이 그렇게나 오해를 받고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흰 설원에 검은 곰, 흰 곰 두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다고 하자. 곰을 잡아 먹는 포식자의 눈에 어느 곰이 더 잘 보일까. 어느 놈이 더 사냥감이 되기 좋을까. 당연히 눈에 잘 띄는 검은 곰이 잡아 먹히고 흰 곰은 살아남았다. 그렇다면 흰 곰이 검은 곰 보다 강한 놈이었나. 그리고 그 두 곰은 생존을 위해 서로 각축과 경쟁을 벌였나. 아니다. 단지 검은 놈이 사냥꾼의 눈에 잘 띄었을 뿐이다. 그 뿐이다. 곰들은 서로를 알지도 못했다. 자연은 흰 곰을 선택했다. 그리하여 설원엔 흰 곰들만 살게되었다. 이것이 초초간단 진화론의 원리이자 적자생존의 개념이다.
이런 다윈의 발견은 지극히 상식적이며 그 어느 부분에서도 강자가 약자를 잡아 먹는 것을 옹호하고 있지 않다. 진화론은 도무지 그런 것과는 관계가 없다. 더 나아가 사자가 토끼를 잡아먹는 행위는 강자가 약자를 잡아 먹는 행위와는 무관한 일이고 그것이 제국주의적 침략을 정당화해주는 것도 아니다. 사자가 제국주의자라면 약육강식의 논리가 정당화 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무지의 소치이고 거듭된 오해일 뿐이다. 이렇게까지 무지하다는 것은 실로 경이로운 일이다. 마치 찰스 다윈 오해하기 대회라도 열린 것 같다.
환경에 적응한 개체가 번성했다. 이것이 진화론이고 적자생존의 간단한 테제이다. 여기엔 강자-약자, 제국주의, 우생학 따위는 없다. 민주주의도 없고 공산주의도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강자가 약자를 부당하게 괴롭히는 것이 옳다는 법은 자연에는 없다. 아니, 자연에는 옳고 그른 것 자체가 없다. 오해하는 인간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