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맹자>
<맹자>는 춘추전국시대(더 구체적으로는 전국시대(BC 403년 ~ 221년))에 지어진 책이다. 이 시대는 <맹자> 에도 언급되고 있듯이 피의 강에 방패들이 떠내려가고 구덩이마다 사람들의 시체가 뒹구는 전쟁의 시대였다.
청동기 시대가 끝나고 전국시대에 들어 철기가 보급되면서 철제 농기구 덕분으로 농사가 집약적으로 발전, 그 결과 인구증가와 부의 축적이 이루어져 전쟁의 대형화가 가능해졌다. 철제 무기의 발전 또한 전쟁의 대형화를 더욱 부채질했다. 이에 각국의 왕들은 이웃나라를 집어삼키기 위한 부국강병책에 골몰했고 국가간의 합종연횡이 횡행했다. 국가간의 분쟁을 중재할 국제기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고 그야말로 나라와 나라가 먹고 먹히는 시대였다. 아들이 아버지를 몰아내고 왕을 참칭했고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고 왕을 참칭했다. 그러자 왕을 참칭한 놈을 벌준다는 명목으로 딴 놈이 그 나라를 쳐들어 갔다.(그래서 쫓겨난 놈이 이웃나라로 도망가 이를 갈다가 나중에 또 쳐들어 온다.)
제자백가라 불리는 유세객들은 각 나라를 유랑하며 자신의 경륜과 지식을 팔았는데 맹자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결국 가장 성공한 이론은 법가(法家)였지만(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잖아) (이런 이야기는 인터넷에 널렸고 길게 하자면 끝이 없으니) 더 이상은 생략하기로 한다.
<맹자>라는 책은 여러가지 이유로 주목받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성선설'과 '역성혁명(易性革命)'이 가장 알려져있지않을까 싶다.
역성혁명이란 성씨를 바꾸는 혁명, 즉 김가(金家)가 왕노릇하다가 똑바로 못하면 천명(天命)이 다른 사람(李家)에게 넘어가 왕이 바뀔 수도 있다는 개념이다. 옛 사람들은 왕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 하늘로부터 '네가 왕을 하거라' 하는 명을 받아야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누가 천명을 받는가. 순천자(順天者)가 천명을 받는다. 뻔한 말이다. (역설적으로 이 개념은 역대 중국에서 쿠데타를 합리화시키는 진부한 클리쉐로 쓰였다. '천명이 나에게 와서 나도 어쩔 수 없었노라') 지도자를 교체한다는 개념은 작금에는 하품이 날 정도로 당연하지만 (정말?) 2천년 전의 상황에서 보자면 이는 초-슈퍼-울트라-급진-과격 개념이 아닐 수 없다. 왕을 교체하다니...
하지만 여기서 키워드는 '왕'이 아니라 '천명'이다. 이 말은 얼핏보면 꽤 추상적으로 느껴지는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매우 단순하고 분명한 개념이다. 천명은 민심을 떠난 곳에 있지 않으니 바꿔 말하면 민심이 천심이고 그것이 천명, 곧 하늘이 명하는 바이다. 민위천(民爲天)이란 말이 그 말이다.
천명이 머물면, 즉 민심이 함께하면 왕노릇하는게 당연하지만 천명이 떠나면, 곧 민심이 떠나면 왕노릇하는게 당연하지 않다 - 어려울 것도 없고 심오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민심이 함께 하는가. 맹자가 말한다,
"백성이 슬퍼하는 것을 함께 슬퍼하고 백성이 기뻐하는 것을 함께 기뻐하고도 왕노릇 못하는 이는 아직 없었습니다"
齊宣王問曰:「湯放桀,武王伐紂,有諸?」
孟子對曰:「於傳有之。」
曰:「臣弒其君可乎?」
曰:「賊仁者謂之賊,賊義者謂之殘,殘賊之人謂之一夫。聞誅一夫紂矣,未聞弒君也。」
제 선왕이 묻기를 "탕왕이 하나라 걸왕을 죽이고 은나라를 세웠고, 무왕이 주왕을 죽이고 주나라를 세웠다는데 그렇습니까"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렇죠." "신하가 왕을 죽이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
맹자가 이르기를 "아무리 임금이라도 인을 해치면 도적이요 의를 해치면 악당인데 도적이나 악당은 (군주가 아니고) 일개 필부일 따름입니다. (저는) 필부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죽였다는 말은 못들었습니다"
<맹자>, 양혜왕 하 15
이런 내용 때문에 <맹자>는 대대로 성인의 말씀이면서도 불온한 책이었다. 하지만 그 가르침이 지금엔들 틀리겠는가.
인의(仁義)를 헤치는 인간은 군주가 아니라 도적이요 악당이니 그런 자를 죽이지 못할 이유가 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