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당들에겐 몹쓸 나라
타이페이에서 가장 놀란 것은 시내 어디에도 술집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술집은 술과 거기에 수반되는 안주(개념의 요리)를 파는 곳, 혹은 세계맥주 전문점, 카스광장, 칵테일이나 각종 리퀴르, 맥주 따위를 전문적으로 파는 곳 등등을 말하는데 타이페이에는 놀랍게도 그런 곳이 없었다. 거의없다고 해야할 것이었다. 돌아다니다가 딱 한군데 찾았다. 기쁜 마음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출입문 왼쪽은 술을 파는 공간, 오른쪽은 여자들 머리하는 미용실 공간, 이렇게 나눠져 있었다. 우리는 술을 마시면서 머리에 기계를 뒤집어 쓴 여자들을 쳐다보았다. 화장실은 그 미용실 공간을 가로질러 가야했다. 상상이 가는가. 술을 마시다가 머리카락을 밟으며 미용실을 가로질러 화장실을 가는 느낌이.
그 술집(공간)에는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젊은애들이 담배를 피우며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주 기이한 체험이었다.
물론 많은 음식점에서 술을 팔았고 편의점에서도 다양한 술을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술을 마시는데는 불편이 없다. 하지만 '술집'을 찾는다면 사정이 다르다. 술을 마시기에 적당한 음악과 내부시설, 적당한 왁자지껄함이 있는 그런 술집 -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도 흔한 그런 업소가 대만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왜? 어째서?
우리는 편의점에서 '타이완 비주'를 사서 호텔방에서 마셨다.
음식이나 볼거리, 여기저기 돌아다닌 이야기는 인터넷에 많으므로 생략하고 인상 몇 가지.
1. 불교방송이 많은데 매우 기복적이고 상업적이었다.
2. 티비방송은 전체적으로 재미가 없었다. 더빙된 한국 드라마를 많이 틀었고 안쓰는 가방으로 앞치마 만드는 방법, 아이들에게 우유를 잘 먹이는 방법 등 깨알 같은 주제들로 끝도없이 시간을 채우고 있었다.
3. 거리나 건물, 시설의 청결도, 공중도덕은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대륙보다는 훨씬 낫지만 일본에는 많이 못 미친다.
4. 전체적으로 대만문화에는 일본색이 많았다. 일본에 호의적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5. 대륙보다는 권설음이 적어서 말이 매우 편안하게 들린다. 한국사람들이 중국어를 구사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글자도 번체를 쓰니 훨씬 읽기가 편하고 이해가 쉬웠다.
6. 거기도 겨울이라고 패딩에 목도리를 하고들 다니는데 나는 반팔을 입고 다녔다. 기온이 15~20도 정도였다.
7. 나라 전체가 묘하게 고립되고 정체된 느낌이었다. 몇 번을 더 가봐야 그 느낌의 정체를 알게 되지않을까.
8. 고궁박물관에서 북위시대의 불상을 보았다. 국내에서 보았던 것들과는 사뭇 모양이 달랐다. 중국이 실감되었다. 타이페이 시립도서관엘 갔는데 책이 많지 않았다. 시내 대형서점도 책들이 많지는 않았다. 한나 아렌트 책이 보여 반가왔다.
9. 동경이나 서울에 비하면 타이페이의 지하철 노선은 무척이나 간단하다. 몇번 타보면 금새 파악이 된다. 근데 요금체계는 아직도 아리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