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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e Mar 11. 2017

이게 나라다

아름다운 경향신문의 1면

그간 "이게 나라냐'는 숱한 질문과 울분에 헌법재판소가 응답했고 경향신문이 이를 기사화했다. 경향신문은 가끔 이렇게 아름다운 1면 기사를 쓴다.

이정미 헌법재판소 소장권한대행이 읽은 판결문은 쉽고, 논리적이며 간결했다. 개인적으로는 역사에 길이 남을 글인 만큼 좀 더 웅혼하고 사색적인 글이면 어땠을까 생각도 했지만 달리 생각하면 대한민국 국민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수한 우리 말글이라는 측면에서는 그 또한 좋다.


박근혜의 파면선고 후 언론이 일제히 쏟아낸 말은 일치, 화해, 분열된 국론 수습 따위의 말들이었지만 대한민국이 북한이나 나치독일 같은 파시스트 국가가 아닌 이상 국민들의 의견이나 국론이 하나로 일치하는 것은 매우 기이하고도 위험하며 실제적으로는 가능하지도 않다.


자유민주주의는 '너와 나는 다르다'는 가장 근본적인 사실을 수긍하는 기초에서 성립되는 것이다. 너는 너의 이익이 있고 나는 나의 이익이 있으며, 너는 너의 사상이 있고 나는 나의 사상이 있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치가 아니라 타협과 공존이다. 그것이 바로 법에 의한 지배이다.


박근혜를 지지한 사람들은 헌재의 결정이 부당하다고 느낄 것이고 그건 그들의 자유이다. 그 자유에 근거해서 시위를 하거나 농성을 할 수도 있다. 나는 박근혜의 파면을 환영하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박사모'의 시위와 농성의 자유는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자유의 행사에는 법적 규범이 따른다. 모든 개인의 자유는 민주주의적, 법치주의적 가치와 규범 안에서 존재하는 것이며 그것을 벗어난 초월적이고 절대적 의미의 자유는 적어도 이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에겐 광화문 한복판에서 오줌을 눌 자유가 없다. 마찬가지로 나에게는 술을 마시고 시속 200km로 운전할 자유는 없다.

냉정하고도 현실적으로 보자면 이 지상의 삶을 사는 나에게 주어지는 자유는 '짜장면을 먹을 것인가, 짬뽕을 먹을 것인가' 하는 수준의 자유밖에는 안된다. 도대체 나에게 무슨 대단한 자유가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일일이 행사하고 산단 말인가.


그리고 실제로는 '이제 우리가 화해하고 일치를 이룰 때'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그 화해와 일치는 그 말한 사람이 희망하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전제를 암암리에 깔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시 진정한 화해와 일치는 가능하지 않다. 아니, 필요치 않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과 생각으로 살면되고 그것을 상호 존중하고 법으로 보호하며 일탈을 방지하면 된다.


나는 '박사모'와 영원히 하나가 되고 싶지않다. 그들과는 철저히 분열하고 싶다. 하지만 그들의 자유와 권리는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뭐 그렇다고 그걸 위해 투쟁할 용기까지 있는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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