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가 무슨 소용
지구가 공(globe) 모양이 아니고 평평(flat)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장난이나 조크가 아니라 아주 진지한 수준에서 말이다. 21세기에 설마 그런 미친 놈들이 있겠나, 하지만 사실이다.
http://www.theflatearthsociety.org/home/index.php/about-the-society
만약 나에게 시간과 호기심이 충분하다면 저 자들의 주장을 세밀히 살펴보았겠지만 다행히 나는 그럴 시간이나 호기심이 충분하지 않다.
어떤 인간들은 지난 세기에 나치가 유태인들을 학살했던 홀로코스트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위의 '지구 평평론'은 그냥 개또라이들, 하고 말면 그만이지만 '홀로코스트 부정론'은 그 주장의 해악이 심대할 수 있어 많은 유럽국가들이 그 주장 자체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우리의 다정한 이웃국가도 남경대학살, 관동대학살, 생체실험, 위안부 따위는 존재하지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홀로코스트 부정론은 아주 새로운 것도 아니다.
회의주의(懷疑主義 Skepticism)는 철학적 사유의 한 방법이다. 알려진 가장 유명한 회의주의자는 데카르트일 것이다. 그는 진리를 찾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회의를 제안했다. 그의 생각은 이렇다. 무언가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우선 그 존재를 의심해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의심을 해도 의심해서는 안될 상황이라면 그건 더 이상 의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게 그의 기본적 아이디어였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은 그래서 생겨났다. '나'라는 존재를 아무리 의심해도 그 '의심하는 존재로서의 나'는 부정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지금 무언가가 의심하는 행위를 하고 있으니까. 그러므로 '나'는 존재할 수 밖에 없는거 아닌가, 하는게 데카르트의 생각이었다. 일종의 귀류논증법(전제를 부정했을 때 모순적 결론이 도출되면 전제를 부정한게 틀렸다는 것)과도 비슷해 보이는 이 '방법론적 회의'는 근대적 사유의 한 전형이 되었다.
하지만 극단적 회의주의 - 그 어떤 증거를 들이밀어도 그 증거는 모두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는 회의주의는 합리적 사유를 원천 봉쇄한다. 누군가가 '모든 증거는 조작되었으며 진실은 신만이 아신다'라고 말한다면 그런 자를 설득하거나 승복시킬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증거가 조작되었다'는 것의 증거를 대라고 말해 보았자 그들은 '너에게 그 증거를 보여준들 너는 안 믿을 것이다' 혹은 '그 증거는 나만 알 수 있다(혹은 신만이 아신다)' 등등으로 말한다.
내 눈앞에 토끼가 한마리 있는데 이 토끼는 투명하고, 무게도 없으며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고, 만져도 전혀 질감이 없으며 그 어떤 전자적 계측장비로도 감지되지 않는다면 결국 거기에 토끼가 있기는 한건가. 그 토끼의 존재는 어떻게 증명될까. 그럴때 그 존재를 주장하는 자는 말한다. '나는 토끼가 있음을 알겠는데 왜 너는 모르겠다고 하느냐' 혹은 '믿음의 눈이 아니면 그 토끼는 보이지 않는다'.
"우린 그 분이 죄가 없다고 믿어요. 모든건 언론의 조작이고 검찰과, 특검, 국회, 헌재가 서로 짜고 엮은거에요.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거에요"
이제 그 여성은 종교적 신념의 반열에 들었다. 아무리 검찰이, 국회가 국민이 뭐라해도 다 짜고치는 고스톱일 뿐이다. 심지어 구속이 되고 법정에서 판결이 나도 그건 다 음모이고 모략이다. 그들에겐 아직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 심지어 대법에서 최종 판결이 나고 형이 확정돼도 그들은 '역사의 법정은 달리 판단한다'고 주장할 것이다.(이 주장은 실제로 그 분을 누나라고 부른다는 모 의원의 주장이다)
이제 그들의 인지부조화를 해결하기위해 검찰이, 특검이, 국회가, 헌재가 그리고 대다수 국민이 좌빨이 되고 음모꾼들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끝내면 좋으련만 진실은 인지부조화도 아니고 무슨 믿음도 아니고 그저 그 여자를 평생 이용해먹고 한심해진 처지를 또 이용해 먹으려는 주변 정치인들의 책동일 뿐이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