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욕과 자존, 삶의 길은 어디인가
눈이 많이 내린 그 해 겨울, 남한 산성에서 신료들이 임금을 사이에 두고 떠든 것은 굳이 살자거나 굳이 죽자는 것이 아니었다. 말(馬)들이 얼어 죽고, 그 얼어 죽은 말들을 먹은 백성과 군졸들이 또 얼어 죽는 동안 그들이 벌인 쟁론은 그 무엇도 지칭하는 바가 없는 모호한 칭얼거림이며 말(言)에 의해 생겼다가 말에 의해 사라지는 추상의 허깨비였다. 성 안에 삶이 있는지, 성 밖에 삶이 있는지는 경전에 잠들어 있는 성현들의 말씀을 끌어들여 판가름 날 일이 아니었다. 그럴 때 만주벌판을 건너와 남면(南面)한 칸은 물었다. 죽든 살든 구체적 실존에 입각하라고. 그렇게 성 밖으로 나와 황은(皇恩)이든 황천(黃泉)이든 선택하라고. 그리고 칸은 수식으로 가득한 조선 왕의 답신을 땅바닥에 팽개치고 그 문서를 수신한 하급 관리의 목을 잘랐다.
임금은 새벽에 성을 나섰다. 신료와 호행의 대열이 행궁 마당에 도열해 있었다.......성 안에 남은 사대부와 궁녀들이 서문 앞에 모여 통곡하며 절했다. 임금은 돌아보지 않았다....... 칸은 구층 단 위에서 기다렸다. 황색 일산이 강바람에 펄럭였다. 칸은 남향으로 앉아서 기다렸다....... 조선 왕이 구층 단 위를 향해 절했다....... 홍이포가 터지고 청의 군장들이 여진말로 함성을 질렀다. 조선 왕은 오랫동안 이마를 땅에 대고 있었다....... 조선 왕이 다시 절을 올렸다....... 칸이 조선 왕을 가까이 불렸다. 조선 왕은 양쪽으로 청의 군장들이 도열한 계단을 따라 구층 단으로 올라갔다. 세자가 따랐다. 조선 왕이 칠층을 지날 때, 강화에서 끌려온 사녀들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울음을 참았다. 조선 왕은 황색 일산 앞에 꿇어앉았다.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칸이 술 석 잔을 내렸다. 조선 왕은 한 잔에 세 번씩 다시 절했다. 세자가 따랐다.(『남한산성』, 352-356 p.)
그리고 어찌 되었나. 치욕을 감당한 것으로 사직(社稷)은 보존되고 강토의 삶은 계속되었다. “민촌의 노인들이 성첩으로 올라와서 봄나물을 캤고, 군병들이 버린 옷가지와 가마니를 거두었다. 빈 내행전 마루에 다람쥐가 뛰어다녔다. 성 안에 봄빛이 가득”할 때(360 p.) 서날쇠는 씨를 뿌렸고 계집아이는 초경을 했으며 짐승들은 흘레붙었다.
<2011, browne>
영화를 보러가면서, 부디 배우들이 김훈의 도저한 대사에 압도되어 주눅들지 않기를 빌었다. 결과는? 이병헌과 박해일은 무난했고 김윤식의 긴장감은 조금 불편했지만 그 정도여서 다행이었다. 김훈의 소설을 입말로 각색하고 그것을 입으로 실제 뱉어내는 건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김훈의 필설에는 말과 말 아닌 것의 경계가 뒤섞여 있고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이 서로를 밀쳐낸다. 그 추상과 구체의 문장어는 애초에 구어의 지경을 넘어서는 것이다.
치욕을 겪으면서라도 백성과 사직을 지키는 것이 왕의 도리라는 최명길의 주장과 치욕을 겪으며 오랑캐의 아가리로 들어가느니 차라리 절개를 지켜 죽는게 낫다는 김상헌의 주장은 서로 정반대의 지점을 가리키지만 그 정반대의 지점은 또 같은 지점이기도 했다.
인조를 욕하기는 쉬울 것이다. 하지만 인조처럼 치욕을 겪으며 사직과 백성을 지켜내는 것도 쉬운 일일까. 치욕을 겪으면서라도 사직을 보존하자는 말이나, 치욕을 겪느니 의롭게 죽겠다는 말이나, 쉬운 말은 하나도 없고 쉬운 행동도 하나 없다.
역사에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을 나는 믿지 않지만 굳이 그런게 있다면 역사는 단순한 권선징악의 반복이 아니라는 것,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이율배반의 지옥에서 어쨌든 기필코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어린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추위에 떠는 사람에게는 가마니라도 덮어주어야 한다는 것... 그 정도의 가르침이라면 마다하지 않겠다. 하지만 국제정치가 어쩌고, 약소국의 외교가 어쩌고 하는게 역사의 가르침이라면 미안하지만 그런건 사양한다. 역사책을 읽은 덕으로 역사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았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는 배움의 대상이라기보다는 풍경이나 상처에 가깝다.
그 갇힌 성 안에서는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이 한 덩어리로 엉켜 있었고, 치욕과 자존은 다르지 않았다... 밖으로 싸우기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글 읽는 자들은 갇힌 성 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쳤다.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 성 아래로 강물이 흘러와 성은 세계에 닿아 있었고, 모든 봄들은 새로웠다. 슬픔이 나를 옥죄는 동안, 서둘러 작은 이야기를 지어서 내 조국의 성에 바친다...
김훈, <남한산성> 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