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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e Dec 20. 2018

스토너

어떤 인생, 혹은 모든 인생..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빌리다가 언젠가 읽은 서평 생각이나서 같이 빌렸는데 정작 빌린 후에는 대출연장을 하면서까지도 읽지않고 버티다가 반납기한이 닥쳤다.

  그냥 반납할까 하다가 앞부분 만이라도 잠깐 살펴볼 생각으로 잠자리에 들기전 책장을 펼쳤다. 그게 11시쯤이었다. 그리곤 새벽 3시까지 읽었다. 도저히 중간에 덮을 수 없는 흥미진진함 때문은 아니었다. 이 소설은 그런 종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평균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평범한 삶을 산 어떤 남자. 굳이 불행한 것도 아니고 행복한 것도 아닌, 어느땐 잠깐 행복헸고 어느땐 잠깐 불행했던 남자, 그런 삶. 그의 부모가 그랬듯이 흙에서 와 흙으로 돌아간 삶.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이 서로를 갉아먹어 종국엔 모자란 것도 남는 것도 없는, 그 총량이 제로인 삶.


  "넌 무엇을 기대했나"


  죽음을 앞두고 주인공이 스스로에게 던진 이 질문은 "넌 누구냐"를 묻는 존재론적인 질문도 아니고 "넌 어떻게 살았느냐"를 묻는 실천이성적 질문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깊은 어둠 속에서 솟아나 다시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질 이 삶에 어떤 목적이 있었던가, <전도서>의 허망한 탄식과도 같은. "Ash to ash, dust to dust..."


  이 삶은 과연 무엇을 바랐던 것일까. 그 본말을 그저 허망함이라고만 말해야 할까?


  삶은 허망한 것이지만, 그리고 대체로 불행한 것이지만 그것을 그냥 허망한 것이라고만 말해서는 산은 산이고 강물은 강물이며 바람은 불고 꽃은 핀다는 말들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럼 무엇? 뭐? 존 윌리엄스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그냥 그것이었나? 중서부의 황량한 흙에서 태어나 다시 황량한 흙으로 돌아 간 어떤 남자?


질문을 여기서 멈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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