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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e Jul 28. 2019

유가(儒家)의 관점으로 <라이언 킹>을 본다

각자의 자리, 각자의 소명

"세상의 평화는 어떻게 얻어지는가"

"나는 누구인가"


개별적 사물/사태의 본질에 집중하는 서양철학적 사고로 본다면 위의 두 질문은 서로 무관해 보인다. 하지만 유가적(儒家的) 사고방식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저 두 질문은 긴밀하며 실상은 하나일 수 있다.


영화의 서사는 전형적인 신화 구조를 따른다. "집(고향)을 떠나 고난을 겪다가 자신의 소명을 깨닫고 다시 돌아 온 영웅의 이야기" 이 모티브는 예수의 이야기, 부처의 이야기, 모세의 이야기, 헤라클레스의 이야기, 고대 중국의 신화, 그리스 신화 등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다. 이 모티브의 핵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깨달음이다.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 것, 그것은 곧 자신의 소명을 깨닫는 것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그의 삶은 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예수가 그랬고 부처가 그랬으며 모세 또한 그러했다. 한때 말썽꾸러기였던 영웅들은 이 전철을 더욱 혹독하게 밟는다.


영화 <라이언 킹> 또한 '(철없는 행동으로 아버지를 잃고) 자신이 속했던 공동체를 떠나 삶의 의미도, 목적도 없이 살다가 어떤 계기, 혹은 숙명적 계기로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이를 실천에 옮긴다'는 전형적인 서사구조를 반복한다. (중간에 샤만이 신탁을 전하며 주인공을 돕는 설정이나 그 과정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얻는다는 아이디어도 흔히 등장하는 옵션이다)


하쿠나 마타타, 될대로 돼라. 인생은 그저 무심히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 거기에는 아무런 의미 따윈 없다네... 하지만 그럴까. 인생이 그렇게 무위(無爲)의 덧없는 것일까. 하늘의 별들이, 선왕(先王)의 영령(英靈)이 언제나 내려다보고 있는데 인생은 정말 무내용한 것인가.


맨 위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사물의 본질에 대한 오래된 질문이다. 서양철학적 논의는 별도로 하더라도, 유가적 입장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 어렵지 않다. "개인의 정체성은 그 개인이 속한 공동체에서의 역할(소명)에 다름 아니다"

이 삶에서 나는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아버지이며, 누군가의 이웃이고, 누군가의 동료이다. 그러니 임금은 임금의 자리에, 신하는 신하의 자리에, 아버지는 아버지의 자리에, 자식은 자식의 자리에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 올바로 포지셔닝할 때 각자는 비로서 각자일 수 있다(各得其所). 그것이 곧 평화이며 그런 삶은, 그런 세상은 무내용하지도 않고 무의미하지도 않다. 공자는 그것을 이름과 소명의 일치(명분;名分)라고도 했다.


왕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그 자리(직분/소명)에서 떠날 때 왕은 더 이상 왕이 아니며 평화는 흔들린다. 맹자가 말한 역성혁명의 근거가 거기에 있다. 그러니 수신제가와 치국평천하를 연속적으로 파악하는 유가의 사유로는 세상의 평화와 개인의 정체성이 결코 둘일 수 없다.

이 로직은 자연세계로까지 확장된다. 고래는 바다에, 호랑이는 산에, 수레는 길에, 배는 바다에 있는 것이  곧 질서요, 평화이며 세상의 마땅한 모습이다. 그러므로 돌고래를 풀에 가두고 구경거리로 만드는 것은 유가적 세계관에는 맞지 않다. 풀은 돌고래가 원래 있던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가는 이 세상의 질서(천도;天道)와 인간의 질서(인도;人道)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스카가 자기의 자리에 그대로 머물렀다면, 어린 심바가 자신의 자리로 부터 너무 멀리 벗어나지 않았다면, 하이에나들이 사자들의 영역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비극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선을 넘는 것, 선을 벗어나 자신의 자리를 이탈하는 것, 항상 문제는 그렇게 시작되지 않던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왔을 때 비로서 심바는 심바가 되었고 세상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새들은 새들의 자리, 코끼리는 코끼리의 자리, 물고기는 물고기의 자리에 있는 것이 이치요, 질서요, 평화다. 만물의 낳고 낳는(生生之理) 생명의 순환(Circle of Life)은 그렇게 지켜진다. 옛 성인들이 하신 말씀이 다 그런 말들이다.


이제 마지막 물음이 남았다.


"나의 자리와 소명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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