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먼지, 먼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우주 사진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것이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으로 불리는 지구 사진이다.
1990년 2월14일 미국항공우주국(나사)의 태양계 탐사선 보이저 1호가 지구로부터 60억km 떨어진 먼 우주에서 촬영한 것이다. 이 사진에서 지구는 보이저 1호의 관측장비에 햇빛이 산란돼 형성된 밝은색 띠 안의 아주 작은 점으로 나타났다.
당시 보이저 1호의 사진 촬영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나사 당국을 설득해 보이저 1호의 방향을 지구로 돌려 찍은 사진이다. 그는 그 먼 거리에서 지구를 촬영한 이유에 대해, 지구는 광활한 우주에 떠 있는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함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나사가 이 사진 촬영 30주년을 맞아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좀 더 선명하게 보정한 업그레이드 사진을 공개했다. 제트추진연구소는 "애초 사진 촬영을 계획했던 사람들의 의도와 원래 데이터를 살리면서 현재의 이미지처리 소프트웨어와 기술을 이용해 보이저 사진을 보정했다"고 밝혔다. 원래 사진은 녹색, 파란색, 보라색 3가지 필터로 촬영한 이미지를 합성해 편집한 것이다. 나사는 이미지가 좀 더 선명하게 보이도록 각 필터의 균형을 다시 맞추고, 지구를 통과하는 햇빛 줄기는 우리가 지구에서 보는 것처럼 흰색으로 조정했다. 그 결과 새 사진 속의 지구는 좀 더 밝은 푸른 점이 됐다. 사진을 보면 아래쪽으로 갈수록 밝아지는데, 아래쪽이 태양 방향이다.
당시 보이저 1호가 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건 사실 행운이었다. 이 거리에서 지구의 크기는 보이저 카메라의 화소 한 개보다도 작다. 따라서 카메라에 온전히 포착되지 않는다. 그런데 카메라에 부딪혀 산란된 햇빛 광선 가운데 하나가 우연하게도 지구와 극적으로 교차했다. 게다가 보이저 1호에서 본 지구는 해의 강렬한 섬광에서 불과 몇 도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벗어나 있었다. 이때가 1990년 2월14일 오전 4시48분(세계표준시 기준, 한국시각 오후 1시48분)이었다.
이 사진을 찍으면서 보이저 1호는 다른 5개의 행성(목성, 금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과 태양 사진 60장도 함께 촬영했다. 화성과 수성은 햇빛에 가려 보이지 않는 바람에 찍지 못했다. 이때 찍은 사진들은 `태양계 가족 초상화'(The Family Portrait of the Solar System)로 불린다. 34분 후 보이저 1호는 전원을 아끼기 위해 카메라 작동 장치를 껐다.(2020. 2. 13 한겨레)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봤을 모든 사람들, 예전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삶을 누렸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들,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데올로기들, 경제 독트린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모든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들,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 교사들, 모든 타락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 지도자들, 인간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지구는 우주라는 광활한 곳에 있는 너무나 작은 무대이다. 승리와 영광이란 이름 아래, 이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차지하려고 했던 역사 속의 수많은 정복자들이 보여준 피의 역사를 생각해 보라. 이 작은 점의 한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이, 거의 구분할 수 없는 다른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잔혹함을 생각해 보라. 서로를 얼마나 자주 오해했는지, 서로를 죽이려고 얼마나 애를 써왔는지, 그 증오는 얼마나 깊었는지 모두 생각해 보라. 이 작은 점을 본다면 우리가 우주의 선택된 곳에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암흑 속 외로운 얼룩일 뿐이다. 이 광활한 어둠 속의 다른 어딘가에 우리를 구해줄 무언가가 과연 있을까. 사진을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들까? 우리의 작은 세계를 찍은 이 사진보다, 우리의 오만함을 쉽게 보여주는 것이 존재할까? 이 창백한 푸른 점보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을 소중하게 다루고, 서로를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는 책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창백한 푸른 점>, 사이언스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