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rowne Apr 03. 2018

J 형님께

무탈하신지요

J 형님,

무탈히 지내시는지요. 형님 뵌지도 오래됐네요. 전 늘 그럭저럭 지냅니다.


모두들 꽃 얘기만 하는 요즘입니다. '우리 동네엔 이제 벗꽃이 피었다', '우리 동네엔 진달래도 피었다' 사람들이 이렇게 꽃을 좋아하는지 몰랐습니다. 우리 동네에도 개나리, 벗꽃, 진달래가 장관입니다. 매번 봄이 오고 매번 꽃은 피건만 그때마다 이렇게 새로우니 그래서 사람들은 꽃을 좋아하는 것일까요.


요즘엔 <논어혹문>을 보고 있습니다. <집주>의 주석이 간결하면서도 핵심만 짚은 것이라면 혹문은 집주의 핵심만으로는 아쉬워서 주절주절, 중언부언, 가르쳐주려는 주자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지는 듯도 싶습니다. 어려운 대목이 자주 나와 곤란을 겪지만 <논어대전>에서 또 인용해서 설명하는 부분들이 종종있어 그럭저럭 넘어가기도 합니다. 내용이 어렵고 분량이 방대해서 다 볼 자신은 없지만 죽기전에야 한번 완독할 수 있지는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새삼 느끼지만 주자의 집주(와 그 해설서인 혹문 따위)는 주석의 형태를 빌어서 공맹의 사유를 철저히 자기 방식으로 뒤집은 일종의 혁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어떻게 논어의 첫 구절, '학이시습지..'에 '사람의 본성은 모두 선하니..'라는, 원 글의 문맥과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주석(물론 맹자에서 비롯한 아이디어)을 붙일 생각을 했을까요. 그리고 혹문에서 '배움이란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라고 했으니 이게 과연 공자의 생각인가, 하는 의문마져 듭니다. 사실 그것은 공자의 말씀에 주석을 붙인 것이 아니라 공자의 말씀을 빌어서 철저히 자기 생각을 쏟아낸 것이 아닐까요. 실로 오랜 세월 동안 동아시아를 지배한 것은 공맹이 아니라 공맹을 등에 엎은 주자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다들 주자학, 주자학 하는 것인가 봅니다. 이렇게 본다면 '공자가 죽어야...' 운운할게 아니라 '주자가 죽어야...' 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사실을 지금에야 깨닫고 있으니 철들자 망령이 따로 없습니다.


오늘 새벽에는 비몽사몽간에 <중용>의 첫구절을 이해할 단서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이게 화두일념이라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제게 자주 하셨던 말씀대로 '소가 웃을 일'입니다.


오늘같은 밤은 꽃그늘에 앉아 형님과 술을 마시고 싶습니다.


다음엔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형님 건강하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스티븐 호킹을 추모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